"난독증 환자인 저를 '공부의 신'으로 만들어 준 것은 아내의 신뢰와 격려 덕분이었습니다"
'행복한 공부 전도사', '공부의 신'으로 불리는 노태권, 최원숙씨 부부는 강원 CBS 시사프로그램인 '포커스 937 목요초대석'(연출 최원순, 진행 정예현)에 출연해 아토피와 게임중독에 빠진 자녀를 비싼 교재나 사교육 없이 아빠와의 공부만으로 명문대에 수석 입학한 가족의 감동적인 사연을 밝혔다.
다음은 일문 일답.
-아내가 노태권씨의 스승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만났나?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지인분이 갑자기 당시 일하고 있는 공사장에 와서 선을 보라고 해서 억지로 따라갔다. 너무 급한 나머지 작업복을 입고 갔다. 그땐 결혼할 생각도 하지못했다. 하지만 커피숍에 들어가 아내를 본 순간에 첫눈에 반했다.
앉자 마자 나는 나이는 36살, 중학교 졸업, 직업은 막노동이다. 그대와 결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의 순수하고 청순한 눈매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중학교뿐이 졸업하지 못한이유?
난 난독증 환자다. 난독증은 글자를 읽고 쓰는데 어려움이 있다. 대부분 난독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약간의 장애가 있다. 에디슨, 아이슈타인 같은 사람들이 모두 난독증이다. 나 빼고 천재이다. 어렸을때 그래서 공부를 포기했었다.
-어떻게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됐나?
아들만 둘 두고 있는데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무렵 나의 꿈을 물어봤다.
중졸에 막노동꾼인데 무근 꿈인가 싶었다. 시간이 얼마 흐른 후 초등학생 아들이 글씨를 잘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때 아내에게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아내는 단숨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뒷바라지 하겠다고 말했다.
아내에세 6개월동안 글씨를 배우고 2000년부터는 독학으로 수능공부를 했다. 당시 부산에 살았는데 부산에는 아는 사람도 많고 친구들도 많아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아내가 춘천으로 무조건 이사를 가자고 했다. 춘천에는 연고가 없다. 아내가 23살때 한번 여행왔는데 물과 공기가 좋아 공부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라고 했다.
-남편분이 난독증 환자라는 것을 알고 계셨나?
난독증이라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조금 지내보니까 알았다. 큰 고민은 없었다. 남편이 공부를 하고싶다고 해서 공부를 시켰고 연상이 잘 될 수 있도록 그림책부터 시작했다.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 가르치면서 아빠도 같이 공부를 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면 습득 능력이 빨라진다. 환경이 좋으면 본인 스스로 의욕이 더 생기는 것이다. 편하게 해줬더니 습득이 생각보다 빨랐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글씨를 A4용지로 3천만장을 썼다. 300만원을 가지고 14년전 부산에서 춘천에 왔다. 너무 가난해 전기도 수도도 없어 집에서 촛불을 켜고 살았다. 아내는 닭갈비 식당에 낮 1시에 나가 새벽1시까지 나가 일을 했다. 아내는 퇴근 후 공부를 시켜줬다. 그때 부둥껴 안고 많이 울었다. 마음이 추웠다. 그래도 4식구가 같이 살고 남편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대학을 가려고 했다. 2006년 시험을 치려고 했고 7번 모의고사를 풀었다. 신기하게도 모두 만점이었다. 또 행정고시 1차 시험 기출문제를 풀었더니 295점이 나왔다. 합격선이 220점 정도 였다. 어떤 문제도 한번에 맞혔다. 대학을 가고 행정, 사법 고시를 다 보려고 했다.
-그런데 아직도 학력은 중졸?
공부를 한창 진행하고 있을 때 즘 중 1, 중3 아들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성적표를 매번 위조해 집에 가져다 줬다. 나는 공부에 빠지고 아내는 생계만 걱정하다보니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잘 하고 있는 줄 알았다. 우리에게 기쁨을 선사 하기 위해 1등으로 위조 했나보다. 공부를 계속 할수 없었다. 당시 아이들이 고등학교 진학을 못했고 집을 뛰쳐 나갔다.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내 공부를 중단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자녀들이 마음의 문을 바로 열었나?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고 참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이었다. 큰 아들이 중 3 겨울방학 때 매일 집에서 3일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고 매일 게임만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제안을 했다. 아빠와 운동만 하면 게임을 하던 밖에서 뭘 하던 신경 쓰지 않겠다고.
하지만 대답 조차 하지 않았다. 보름만에 나의 질문에 대해 고개를 끄떡였다. 이후 소양강을 따라 오르내리면서 하루 25KM씩 행군을 했다. 내가 앞에 가면 5M뒤에 아이들이 뒷따라 왔다. 운동하는 동안 대화를 한번도 안했다. 운동을 한지 2년 8개월만에 아이들이 말을 걸었다 "아빠 밥안먹어? 라고 말을 했다. 행군하고 돌아오니 아내가 일하는 식당에서 가불을 했는지 밥상을 차려 놨다. 너무 힘이 들고 감동해 방으로 들어가 누웠더니 "아빠 밥먹자"라고 하더라 처음 들었다. 아빠라는 말.
-아들들은 현재 공부를 계속하고 있나?
큰 아들은 서울대 장학생으로, 둘째는 영화감독이 꿈이라 한양대에수석으로 입학했다.
현재는 아이들이 자신감이 넘치고 과거의 학교 성적도 이젠 부끄럽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기쁘다.
-현재 공부문제나 가정 때문에 어려움을 껶고 있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의 한말씀?
인생살이라는 것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극복하는 것이다. 자기 만족을 많이 느끼고 남의 것을 보지말아라. 아이들과 남편의 아침밥을 잘 차려주고 대우를 해줘라.
간섭, 강요하면 안된다. 조용히 맛있는거 해주고 믿고 또 믿어줘라. 우리 부부는 현재 수필공부를 하고 있다. 내년쯤에는 가수로도 활동하고 싶다. 하고 싶은 일, 현실에 만족하면서 살면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