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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초량이바구길 따라 굽이굽이 산복도로 오르면…그 옛적 삶의 애환 느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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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초량이바구길 따라 굽이굽이 산복도로 오르면…그 옛적 삶의 애환 느껴져

  • 2014-05-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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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을 벗어나 이바구길을 따라 산복도로를 걸어봤다. 산복도로란 산의 배를 둘러 길을 냈다고 해서 산복도로다. 6·25 전쟁통에 피란민들이 산비탈에 모여 살자 길이 생겼단다. 사진=데일리노컷뉴스 정창규 기자 kyoo78@nocutnews.co.kr

 



골목골목마다 부산 근·현대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초량이바구길은 부산역 맞은편 건널목 하나를 건너자마자 시작된다. '이바구'란 경상도 사투리로 '이야기'란 뜻이다. 부산역과 부산항이 있어 부산의 종가라고 불리는 부산 동구의 차이나타운 옆이다. 번잡한 부산역을 벗어나 이바구길을 따라 산복도로를 걸어봤다. 산복도로란 산의 배를 둘러 길을 냈다고 해서 산복도로다. 6·25 전쟁통에 피란민들이 산비탈에 모여 살자 길이 생겼단다.

담벼락에 마련된 담장갤러리와 동구 인물사 담장도 눈에 들어온다. 인물사 담장에는 문화인 유치환·이윤택·박칼린·나훈아·이경규 등이 이 지역에서 태어났거나 공부한 인물들로 소개하고 있다. 사진=데일리노컷뉴스 정창규 기자 kyoo78@nocutnews.co.kr

 



초입에는 1922년 부산 최초의 근대 병원으로 쓰였던 백제병원 건물부터 부산 최초의 창고였던 남선창고터 등이 있다. 남선창고는 당시 부산의 생선 창고로 쓰이며 북쪽에서 잡아온 싱싱한 명태를 보관했기 때문에 명태고방이라고도 불렸다. 지금은 터만 남아 아련한 추억으로 존재한다. 구불구불한 골목을 헤매다보면 현재와 과거를 만나고, 과거를 바라보다가도 문득 현재와 맞닥뜨린다. 이것이 사람 사는 골목을 걷는 맛이자 묘미다. '이바구길 산복도로'의 전체 코스는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걸으면 3시간 가량이 걸린다. 서울 북촌이나 서촌의 골목길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구불구불한 골목을 헤매다보면 현재와 과거를 만나고, 과거를 바라보다가도 문득 현재와 맞닥뜨린다. 이것이 사람 사는 골목을 걷는 맛이자 묘미다. 사진=데일리노컷뉴스 정창규 기자 kyoo78@nocutnews.co.kr

 



■ "이경규·박칼린·나훈아 벽화도 있네" 담장갤러리와 168계단

언덕을 얼마쯤 올랐을까.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라는 초량교회와 초량초등학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담벼락에 마련된 담장갤러리와 동구 인물사 담장도 눈에 들어온다. 담장갤러리는 파란만장했던 우리 근현대사의 흔적과 현재의 삶을 보여준다. 인물사 담장에는 정치인 장건상·허정·박순천, 경제인 강석진·신덕균, 문화인 유치환·이윤택·박칼린·나훈아·이경규 등이 이 지역에서 태어났거나 공부한 인물들로 소개하고 있다.

마을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서린 168계단 앞에서는 누구라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사진=데일리노컷뉴스 정창규 기자 kyoo78@nocutnews.co.kr

 



담장 끝으로 가파른 계단이 보인다. 168계단이다. 마을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서린 계단이다. 이 계단 앞에서는 누구라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아래에서 맨 위를 올려다보면 아득할 정도로 높고 내려 올 때는 좁고 가파른 길이 살짝 아찔하기까지 하다. 숨을 헉헉대며 중간쯤 올랐을까 문득 '168 계단'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렸을 이곳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동네사람들에게는 이 계단 역시 생활의 부분이었을 것이다.

이 전망대에서는 동구와 중구, 남구 일대는 물론 부산역과 부산항, 공사 중인 북항대교와 영도까지 시원하게 내다보인다. 또 부산항을 배경으로 다닥다닥 붙은 산복도로의 집들도 볼 수 있다. 사진=데일리노컷뉴스 정창규 기자 kyoo78@nocutnews.co.kr

 



■ '일충봉에 해 뜨거든…' 노래한 김민부 전망대

조바심내지 않고 천천히, 이끄는 힘 없이 천천히 계단을 오르니 아담한 전망대가 걸음을 쉬게 한다. 카페테리아를 갖춘 이곳은 '김민부 전망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 주오…'로 시작하는 1964년에 발표된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작사가 김민부 시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이곳 부산 동구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지난 1972년 10월 27일 서울 갈현동 자택에서 안타깝게 화재로 숨졌다.

김 시인은 15세때 신춘문예로 등단해 3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때까지 60여편의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이 전망대에서는 동구와 중구, 남구 일대는 물론 부산역과 부산항, 공사 중인 북항대교와 영도까지 시원하게 내다보인다. 또 부산항을 배경으로 다닥다닥 붙은 산복도로의 집들도 볼 수 있다. 무채색의 허름한 집과 복잡하게 엮인 전깃줄 등의 풍경에서 애환을 느낄 수 있다. 요즘 부산에서는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기에도 좋고, 연인들 데이트 장소로 이곳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만 이 전망대를 찾은 사람은 2만 2000여 명. 이바구길의 대표 명소로 자리잡았다.

이바구공작소는 누구나 부담 없이 들렀다 갈 수 있는 갤러리이자 여행자들의 쉼터다. 광복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월남 파병의 역사를 간직한 산복도로 이야기를 그림과 사진, 전시 등으로 풀어내고 있다. 사진=데일리노컷뉴스 정창규 기자 kyoo78@nocutnews.co.kr

 



■ 가장 부산다운 모습 볼수 있는 이바구공작소

김민부 전망대를 둘러 가면 168계단도 금세다. 계단을 올라 이바구공작소에서 잠시 멈춘다. 이곳은 누구나 부담 없이 들렀다 갈 수 있는 갤러리이자 여행자들의 쉼터다. 광복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월남 파병의 역사를 간직한 산복도로 이야기를 그림과 사진, 전시 등으로 풀어내고 있다.

산의 배를 둘러 길을 낸 산복도로에서 사연 많은 삶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숨 쉬어 가기도, 이바구길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좋은 곳이다. 1층 이바구 사랑방에서는 산복도로 마을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되고, 영상실에서는 터치스크린을 통해 각종 산복도로 관련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 공작소 창을 통해 바라보는 부산의 풍경은 가장 부산다운 모습을 담고 있어 또 다른 멋으로 다가와 김민부 전망대보다 더 높은 곳의 더 많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산 장기려 박사의 박애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더 나눔센터'는 초량2동 화신아파트 아래 자리해 있다. 사진=데일리노컷뉴스 정창규 기자 kyoo78@nocutnews.co.kr

 



■ '닭 두마리 처방' 생생한 장기려 박사 기념관

이바구길 산복도로에는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의 더나눔 기념관이 있다. 성산 장기려 박사의 박애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더 나눔센터'는 초량2동 화신아파트 아래 자리해 있다. 국내 의료보험의 시초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한 장 박사의 헌신적인 생애에 관한 많은 자료가 전시돼 있다. 성산은 평양의대, 김일성종합대 외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한국전쟁 때 부산에 정착했다.

초량동에 천막 병원을 세워 피란민과 행려환자들을 위한 진료를 시작했고, 동구 수정동에 청십자병원을 열어 죽는 날까지 무료 진료와 봉사 활동을 이어갔다. 복음병원 옥탑방에서 생활하다 85세로 생을 마감했을 때 그의 재산은 낡은 청진기와 의사 가운이 전부였다고 한다. 가난했던 시절 약 대신 "닭 두 마리를 처방하라"는 박사의 어록은 요즘같이 팍팍한 시절에 마음을 울리는 유명한 일화다. 기념관 안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지난해 5월 '유치환의 우체통'이라고 이름 붙인 카페와 전망대가 문을 열었다. 사진=데일리노컷뉴스 정창규 기자 kyoo78@nocutnews.co.kr

 



■ 1년후에 배달해주는 유치환 우체통

골목길을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산복도로의 정점인 망양로다. 서울의 남산길과 흡사 비슷하다. 동구 망양로 580번길(초량동)에는 지난해 5월 '유치환의 우체통'이라고 이름 붙인 카페와 전망대가 문을 열었다. 망양로 아래 2층 규모로 지어진 이 건물은 1층 야외공연장인 커뮤니티 마당이 있으며, 2층 '시인의 방'은 청마 작품 전시관과 편지(엽서) 쓰는 장소로 이용된다. 망양로와 이어지는 옥상 전망대에는 빨간 우체통이 놓여 있는데 편지(엽서)를 넣으면 1년 뒤 수취인에게 배달된다고 한다. 생전 편지를 즐겨 썼던 유치환 시인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곳이다.

유치환의 우체통 옥상 전망대에는 빨간 우체통이 놓여 있다. 이곳에 편지(엽서)를 넣으면 1년 뒤 수취인에게 배달된다. 사진=데일리노컷뉴스 정창규 기자 kyoo78@nocutnews.co.kr

 



청마 유치환은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으나, 경남여고 교장을 역임하는 등 산복도로 초량에서 교직생활을 하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부산시는 한국시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그의 문학적 업적과 예술성을 기리기 위해 산복도로 르네상스 1차년도 사업(영주·초량 지역)으로 시비 5억 원을 투입했다. 부산역을 오가는 333번 버스가 이 언덕에도 다닌다. 계단을 오르기 싫은 여행자라면 여행의 시작을 이곳에서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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