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행정부가 지난해 5월 발표한 국민안전대책의 내용. 시기별 계절별 선제적 안전관리를 하겠다며 봄철 수학여행 사고와 여객선 사고를 명시해놓았다. 그러나 이는 보고용 대책에 그쳤다. (안전행정부 자료)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재난대응시스템의 문제를 정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말과 글'로만 그친 숱한 보고서와 대책들은 결국 참사를 막지 못했다.
우리나라 재난대응시스템의 골간을 규정하고 있는 '재난 및 안전 기본법'.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 이후 자연 재해는 물론 각종 사회적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2004년에 제정된 기본법이다.
안전을 강조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지난해 6월 개정됐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 재난대응시스템은 각종 문제를 드러냈다.
그런데 기본법에 사각지대가 있다는 점은 이미 정부에서도 자체적인 진단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2월 안전행정부는 법제연구원으로부터 '안전취약계층 및 안전사각지대 관련 법제도 개선방안연구'라는 제목의 용역보고서를 제출받았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최근 공개한 이 보고서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지휘명령체계의 일원화나 관련 부처간 유기적인 협력을 이끌어낼 컨트롤 타워가 없다고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아동 청소년 등 안전 취약계층이 안전관리의 사각지대로 존재한다는 진단도 나왔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감안하면 매우 뼈아픈 지적이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정책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강성국 간사는 "컨트롤 타워 부재나 정부 재난대응시스템상의 사각지대 문제는 지난 2010년부터 정부 용역을 통해 꾸준히 제기됐지만,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봄철 수학여행, 여객선 사고 선제적 관리' 발표해놓고…이에 앞서 지난해 5월 안전행정부는 '국민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계절별 시기별로 선제적인 안전관리를 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특히 4월부터는 봄철 수학여행과 행락철 여객선 안전관리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발표는 보고용이었다는 사실이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미 4년전에 수학여행단 사고 예방을 위한 매뉴얼이 담긴 국가표준도 만들어져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깡그리 무시된 한낱 종잇장에 그치고 말았다. 숱한 보고서와 대책들이 만들어졌지만 문제는 이를 숙달시킬 '실행'이었다.
지방행정연구원 안영훈 안전공동체연구센터 소장은 "제도는 마련돼 있지만 기능적인 문제가 있었다"며 "실무적으로 훈련이 제대로 돼야 하는데 이를 숙달할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국회는 수학여행 안전대책 의무화법을 통과시켰다. 수학여행, 수련활동과 같은 체험 위주의 교육을 할 때 학교장이 안전대책을 점검·확인하는 등 안전대책을 마련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서랍 속에 들어가버린 보고서나 발표에 그친 대책, 그리고 실행하지 않는 제도에 그친다면 문제는 고스란히 남게 될 것이다. 참사 이후 대책을 우후죽순으로 내놓기 보다는 있는 제도를 실효성 있게 실행할 방안을 고민해봤는지 진지하게 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