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이미지비트 제공)
"현장에서의 어려움은 알지만, 폭탄돌리기식 여성 우선공천 지역 선정 과정에 실망했다. 오히려 여성 정치인들에 대한 거부감과 편견만 더 강화된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한 새누리당 여성의원의 말이다. 이 여성의원의 소회는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여풍(女風)'이 실종된 이유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정치적 소수자인 여성 후보를 배려하기 위해 정당에서 제도를 도입했지만, 제도 적용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결국 무산된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애초에 여성 우선공천 지역을 전체 후보의 30%로 선정하려고 했지만 해당 지역구 의원들과 최고위원 등의 반발로 1차로 선정한 7곳 외에는 여성 우선 공천 지역을 추가 선정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10% 가산점을 주는 보완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여성 의원들이 여성 우선공천 지역 선정 과정에서 다친 상처는 치료되지 않았다.
또 다른 여성의원은 해당 지역구 의원들이 모두 여성 우선공천 지역을 꺼려하는 것을 두고 "여성이 쓰레기냐"며 분노했다. 그는 특히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다고 자랑하는 당이 여성을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 우리 지역은 안 된다) 취급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누리당보다도 더 심각하다. 여성계는 정당이 기초선거에서 공천을 하지 않으면, 여성 의원 비율이 낮아질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이 폐지됐으니 지역에서 현직 프리미엄이 강해지고 금전과 조직력을 가진 유지들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져, 상대적으로 조직력이 약한 여성의 정치활동이 위축된다는 논리다. 기초의회는 중앙정치 무대로 진입하는 하나의 통로인데 이를 막아버렸다는 반발이 크다.
이같은 각 당의 상황 때문인지, 이번 6.4 지방선거에선 유력 여성 후보를 찾기가 힘들다.
지난 몇 차례 선거에서 여성 유력 후보들이 잇따라 등장해 '1호 여성 시·도지사' 탄생 가능성이 제기돼 온 것에 비해서도 이번 지방선거의 '여풍 실종'은 두드러진다. 2006년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2010년 한명숙 전 국무총리, 2011년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 등이 서울시장 선거 본선에 출전한 바 있다.
현재로선 시·도지사 선거 본선에 나가는 여성 후보가 아예 없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여성 후보로는 서울시장을 향해 뛰고 있는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 경기지사에 김영선 전 의원, 전북지사에 새정치민주연합 조배숙 의원 정도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후보에 비해 지지율이 뒤쳐져 경선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자료 제공= 중앙선관위)
6일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6.4 지방선거 시·도지사 선거 전체 예비후보수 80명 중 여성은 6명에 불과하다. 여성 후보 자체를 못낸 지자체도 많다. 17곳의 시·도지사 선거 중 부산·인천·대전·강원·충청·경상·제주 등 13곳은 여성 후보가 한 명도 없다. 구·시군의 장선거도 마찬가지다. 전체 예비후보자수 1157명 중 여성 후보는 60명에 그쳤다. 충청북도의 경우 45명의 예비후보자 가운데 여성 후보자를 단 한 명도 내지 못했다.
여풍 실종 현상의 원인에 대해선 축척된 정치 경력이 중요한 현실 정치에서 여성의 초기진입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치 분야가 경제나 사회 분야와 비교해봤을 때 객관적 능력 평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고, 남성중심적 가치와 문화가 응집된 곳이 정치 분야라서 여성에게 있어 불리하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유리 천장'으로 인해 여성 고위공무원이나 중진 의원이 적은 것도 한 이유다. 여성 정치인 인재풀이 적다 보니 여성 장관이나 시도지사급 거물 정치인이 나오기 힘든 토양이 된 것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우리나라 정치 구조상 남자들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여성 정치인의 한계가 분명히 있다. 현실 진입 장벽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때문에 제도적으로 여성의 공직 진출을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격려할 수 있는 프로그램 준비가 필요하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성 정치인을 더 키우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정당에서 이같은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미국 의원들은 여성 의원이 20%가 안되는 반면, 유럽의 경우는 여성 의원이 40%를 차지하는 국가도 있다. 그 이유는 유럽 정당들이 진보 정당을 중심으로 여성 공천을 지명해서 내려보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각 정당들이 각 당의 이념을 바탕으로 여성의 정치 진출에 대해 유권자들에게 설득해야하고 그것에 동의해야 여성에 대한 배려가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