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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완 전 기상통보관 "지금 가장 무서운 사람은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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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완 전 기상통보관 "지금 가장 무서운 사람은 아내"

    • 2007-04-1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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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73세 나이에도 테니스…주례 해준 쌍만 1천쌍

    한국 기상 캐스터 세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사람. 아니 원조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고 기상 캐스터 라는 참 생소한 직업을 국민적인 사랑을 받게 하고 인기 직종으로 만든 분. 모 방송사의 뉴스 시청률을 올리는데도 알게 모르게 한 몫 하신 분. 바로 기상캐스터 김동완 전 통보관이다.

    지금이야 이쁘장 하고 늘씬하고 깡마른 여성이 나와서 날씨를 전해주고 있지만 아주 깐깐하듯 하면서도 푸근한 인정이 느껴지는 듯한 김동완 통보관의 날씨 예보는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오후 4:05-5:00)에서 30년 넘게 기상 일을 해 오신 김동완 선생님을 4월 11일(수)에 만나보았다.

    ◇ 73의 나이에도 지금도 테니스 즐겨

    김동완
    ▶ 여전히 건강하신 것 같아요. 건강관리를 특별히 하시나요?

    =사실은 얼굴에 등압선이 더 늘었죠.(웃음) 건강관리를 특별히 하는 건 아니고 하루에 1시간 정도 가까운 야산에 등산을 다니고 있고 일요일에는 테니스를 칩니다. 아내가 항상 저보고 철이 덜 들었다고 해요. 무사태평주의라서 아무리 긴박하고 급한 일이 닥친다고 해도 지금 해결할 수 없으면 내일 해결하자는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늙는 것도 더딘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저는 좋은데 아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웃음)

    ▶ 기상캐스터와 통보관은 어떻게 다른 건가요?

    =지금은 기상청에 통보관이란 직책이 있지만 제가 근무할 당시만 해도 통보관이란 직책이 없었어요. 그런데 방송을 많이 나가다 보니까 사무관, 말하자면 계장인데 ''''지금까지 중앙기상대의 김동완 계장이 전해드렸습니다.'''' 방송할 때 계장이라고 하면 어감이 안 좋았는지 어느 날 방송국에서 통보관이란 이름을 붙이더라고요. 그게 지금까지도 통보관으로 불리는데 애초에 기상청에 그런 직책이 없었어요. 결국 방송국에서 임의로 만든 이름이었던 거죠. 요즘은 대부분 기상캐스터라고 하는데 저는 이 이름으로 불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하나의 전달자에 불과하거든요. 저는 기상전문가로서, 날씨를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날씨를 해설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굳이 영어를 쓰자면 meteorologist, 기상전문가로 표현해 주기를 바라는데 일반적으로 기상캐스터로 많이 알려져 있으니까 그런 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거죠.

    ◇ 주례 해준 쌍만해도 1천쌍이 넘어

    ▶ 주말에는 더 바쁘시다고 들었어요.

    =새롭게 출발하는 신혼부부의 주례를 서는데, 주례를 할 때 어려운 말은 한 마디도 안합니다. 쉽게 말해서 이렇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해서 살아가는 동안 지금까지 썼던 단어 중에서 앞으로도 쓰지 말아야 할 단어들이 있는데 ''''당신의 어머니, 당신의 아버지'''' 이런 단어들은 안 됩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부모가 곧 나의 부모가 되니까요. 따라서 사는 동네로 구분해서 화곡동 아버지, 목동 어머니 이런 식으로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꼭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두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가정에는 항상 이동성 고기압이 사뿐히 감싸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보통 2~3분이면 끝냅니다.제가 45살부터 현재 73살까지 했으니까 주례만 모두 1천 쌍이 넘습니다. 한참 주례를 설 때는 일주일에 적게는 3번~5번 정도는 했어요.

    ▶ 우리나라 기후를 보면 봄과 가을은 점점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만 남는다는 얘기도 있고, 온난화 때문에 날씨가 더워져서 아열대 기후로 바뀐다는 말도 있는데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어떠신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봄과 가을이 짧아진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겨울이 겨울답지 않고 덜 춥기 때문에 계절이 확실히 바뀌고 있다는 거죠. 지구의 온난화의 영향이 아주 큰데 우리나라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아요. 평균기온이 지역에 따라 약 2도 가까이 올라가거든요. 기온이 2도라고 하면 하찮게 생각하는데 기온이 1도만 달라져도 그 영향이 엄청나게 큽니다. 산업, 농업, 기타 식물들의 성장과정이 달라지는데 무엇보다 식물의 분포상태의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쉽게 말해서 침엽수는 아열대 기후에서는 살지 못하는데 우리나라의 소나무가 대표적이죠. 아열대 기후에서는 잎이 넓고 큰 활엽수가 잘 자라는데 우리나라도 남쪽으로부터 그런 조짐을 많이 보이고 있어요. 기후라는 것은 서서히 변하기 때문에 지나치기 쉽지만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공기와 물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데 산업이 발달하면 할수록 공기와 물은 오염되게 마련이거든요. 따라서 앞으로는 어떠한 기계든 문화이기든 발명할 때는 공기와 물을 더럽히지 않는 것도 같이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왔어요. 기후 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인위적인 것, 즉 인간들이 변화시킨 거거든요.

    밀림지대 그대로 보존해야 할 곳을 도시나 도로, 공장 등이 들어서면 표면적으로 분포상태의 변화를 가져오고 그에 따라서 온도나 수증기가 변화하고 결국에는 모든 것이 바뀌는 거죠. 공기는 유동적이어서 수평뿐만 아니라 대류작용을 해서 상하좌우로 이동을 합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공기의 대류작용의 변화가 더 크기 때문에 과거에 비가 오지 않는 지역에 홍수가 나고 사막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거예요. 무엇보다 우리나라가 요즘 갑작스런 날씨 변화가 잦은데 근본적인 대처 방법은 환경을 깨끗이 하는 거지만 말은 쉬운데 어렵습니다.

    세계 환경위원회가 1년에 한 번씩 총회를 하는데 선진국과 후진국의 대결의 장입니다. 선진국들이 환경오염의 주범이면서도 대기환경 운운하면서 기계의 제약이나 규제를 하려고 하잖아요. 이제 막 도약하는 후진국들의 발전을 제지하려면 선진국들이 돈을 내 놓고 후진국들을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건 안하고 규제만 하니까 후진국들은 반대를 하죠. 특히 브라질 같은 경우 아마존 밀림 지대를 개발할 때 선진국들은 지구의 허파라면서 개발을 반대하지만 브라질의 입장에서는 안하면 산업발전을 못하게 되거든요. 이럴 때 선진국들이 도와주어야 하는 건데 말로만 규제를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죠.

    ◇ 항의전화 하도 많이 받고 욕도 많이 먹어 오래 살 듯

    ▶ 그래서 기상청조차도 예측하지 못하는 날씨 변화가 생기다 보니까, 일반인들로부터 그것도 예측 못한다고 항의전화도 많이 받잖아요.

    =그래서 저는 오래 살 거라고 합니다. 저 만큼 항의전화를 많이 받은 사람도 없어요. 날씨만 틀렸다 하면 저는 단골 메뉴거든요. 그런데 상대방은 맨 정신으로 안하고 대부분 술을 먹고 방송으로는 말할 수 없는 항의를 해요. 저는 이미 알려진 사람이고 대항을 못 하니까 다 받아줘야 합니다. 날씨가 틀렸다 하면 적게는 20통에서 많게는 50통 이상을 받아요. 그래서 점심을 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에요. 전화에 시달리다 보면 식욕이 달아나버리거든요.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이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는데 그날 아침방송을 했는데 날씨가 예보 상으로도 좋게 나왔어요. 그래서 한 술 더 떠서 ''''어린이날인 오늘은 어린이들의 얼굴만큼이나 해맑은 날씨가 하루 종일 계속되겠습니다.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방송하고 방송국을 나오는데 소나기가 쫘악 쏟아지더라고요. 제가 갈 곳이 없는 거예요. 방송국에 들어가자니 저를 쳐다보고 웃을 것이고 나와서 어디 커피숍을 가도 저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방송국 입구 쪽에 비 안 맞는 곳에 우두커니 서 있었어요. 하고 많은 직업 중에 잠깐 내리는 소나기도 피할 수 없는 직업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에요. 그때 모 방송국에서 효창운동장에서 어린이날 이벤트 행사를 계획했는데 소나기가 오니까 취소가 됐거든요. 그런데 매 시간 방송마다 ''''오늘 효창운동장에서 이런저런 행사를 하려고 했는데 예보와는 달리 비가 와서 취소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계속 이런 멘트를 하는 거예요. 저는 들을 때마다 그야말로 가슴이 찔리죠. 그래서 목욕탕을 가면 좀 괜찮을까 싶어서 갔는데 거기에 있는 사람들도 ''''김 선생님, 오늘 날씨 좋다면서 이게 웬일이에요?'''' 하잖아요. 거기도 있을 수가 없어서 집에 갔는데 아내도 ''''오늘 날씨 좋다면서...'''' 한마디 하더라고요. 만만한 게 아내라 호통을 쳤더니 부부싸움으로 번졌어요. 그랬더니 집에도 있을 수가 없어요. 하루 종일 그렇게 우울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 왜 그런 오류가 생기는 걸까요?

    =국지적인 현상은 아직까지 예보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일기도 상에도 안 나타나는데다가 갑자기 나타나기 때문에 레이더 상에도 사전에 잡히지 않아요. 비가 떨어질 때 잡히니까 기상 기기가 아무리 발달해도 놓치기가 쉬운 거죠. 쉽게 말하면 우리가 날씨를 맞추려고 그물을 쳐 놓았는데 아직은 그물눈이 커서 잔고기는 놓치고 큰 고기만 걸리는데 국지적으로 갑자기 생기는 것은 잔고기거든요. 결국 사전에 캐치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사과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사과를 하려면 방송에서 시간을 좀 더 줘야 하는데 2분 30초 정도밖에 안 주니까 마음속으로는 어제 이야기를 꼭 하고 싶죠. 어제는 이런 이유로 예측이 빗나갔는데 죄송하다고 이야기하는 게 도리이죠. 그런데 시간을 안 주는 거예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뻔뻔한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오늘은 딴 소리한다고 말이죠.그

    리고 비가 많이 와서 물난리가 나면 스스로 죄인 같아요. 사전에 예보를 했음에도 그래도 죄인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어요. 그런 때는 재해방송이라고 해서 날씨만 예보하잖아요. 그러면 1시간에 두 번씩 TV에 얼굴을 내밀게 되는데 그때마다 얼마나 죄송스러운지 그 심정은 아무도 몰라요. 또한 날씨에 관해서 보조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혼자 생각하고 혼자 방송했어요. 그러다 보니 방송할 때마다 앞에 멘트 하나씩은 들어가는데 1시간에 두 번씩 하루 종일 하는 멘트를 생각하는 데도 머리에 쥐가 나요. 참 고생 많이 했어요.

    ▶ 고향이 어디세요?

    =추풍령 바로 밑의 경북 김천입니다.

    ▶ 사투리를 별로 안 쓰시는데 언제 서울로 올라오셨어요?

    =58년도에 서울에 올라왔으니까 당시 23살이었어요.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다녔고 대학교는 서울에 와서 야간을 다녔어요. 어렸을 때 꿈이 선생님이었는데 수학을 조금 잘해서 수학선생님이 되려고 했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군대 가서 제대를 하고 어차피 타향에서 공부할 바에는 대학교는 서울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서울사대 원서를 사려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군대에 있는 동안 많이 잊어버리기도 했고 시험을 쳐서 합격이 될지도 잘 모르겠고 걱정이 앞서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신문을 보니까 당시 ''''국립중앙관상대 기상요원 모집'''' 요강이 났어요. 그래서 여기 시험을 쳐서 합격이 되면 대학교를 갈 수 있는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실력을 가늠해 보려고 시험을 쳐 본 거예요. 그때는 중앙관상대가 뭐하는 곳인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서울역에 내려서 수소문해서 찾아갔어요. 500명 중에서 30명을 뽑는데 제가 합격이 된 거죠. 그게 58년도의 일입니다. 사실은 대학교를 가기 위해 실력 테스트를 했는데 합격이 된 것이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주위에 물어봤더니 모두 이구동성으로 중앙관상대를 다니라는 거예요. 선생님보다는 공무원이 좋고 대학교는 야간대학교를 다니면 되지 않느냐고 조언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방향이 그렇게 잡힌 거예요. 그 당시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기상에 대해서 가르칠 곳도, 공부할 곳도 없었어요. 그래서 대통령령에 의해서 초급대학 과정으로 설립된 기상기술원 양성소를 제가 1기생으로 들어간 거죠. 그곳을 졸업하고 오늘날까지 기상전문가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어요. 시험 치러 갈 때 집사람이 제가 떨어졌으면 기도를 하더라고요.

    김동완2

    ◇ 딸 넷에 아들 하나 낳아

    ▶ 결혼을 이미 하셨군요?

    =군대 제대 후 22살에 고향 사람과 중매결혼을 했어요. 그래서 큰 아이가 지금 50살이에요. 제가 종가의 종손이라서 조부모님이 빨리 손을 보고 싶으셔서 일찍 장가를 보내게 하셨는데 그게 저도 싫지 않아서 시키는 대로 결혼했어요. 그 당시 전통혼례식이 결혼을 하면 신부가 시댁으로 바로 오지 않고 1년을 자기 집에 있다가 와요. 그래서 12월 18일에 결혼했는데 다음해 11월에 신부가 왔어요. 시집을 오면 절값이라고 해서 2만 2천원을 받았는데 그걸 차비로 해서 서울로 올라왔던 거죠.집사람은 시댁에 온지 한 달 만에 제가 취직한다고 서울로 간 거잖아요. 그래서 집사람은 떨어지고 오길 바랐는데 합격이 돼서 1월 30일부터 서울에 와 있었어요. 집사람은 1년 동안 시부모님에게 시집살이를 하다가 1년 뒤에 서울로 올라왔고요. 집사람이 부모님과 우여곡절이 많아요. 시집와서 내리 딸만 넷을 낳으니까 문중에서 모여서 회의를 했는데 저에게 소실을 얻어주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딸 넷을 낳았으니까 아들도 넷을 낳을 수 있다고 반대해서 무산되었는데 다행히 그 다음은 아들을 낳았죠.

    딸만 있었을 때는 제가 전성기였어요. TV를 보다가 그 당시에는 리모콘이 없으니까 다른 채널을 보고 싶으면 집사람을 불러서 돌리게 했어요. 그때는 아무 소리 없이 시키는 대로 하더니 아들을 낳고 나서는 태도가 돌변해서 바쁘게 일하는 사람 불러서 시킨다고 야단을 쳐요. 그때부터 역전이 되서 지금 가장 무서운 사람이 집사람이에요. 집사람 말이라면 꼼짝을 못해요.(웃음) 딸들은 이미 다 시집가고, 막내아들이 지금 38살인데 작년 5월에 결혼해서 딸을 낳았어요. 아들이 결혼을 늦게 한 이유가 있는데, 말년에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모든 가산을 다 쏟아 부었어요. 당선이 되었으면 모르는데 떨어지고 나니까 남는 게 없더라고요. 집안이 대대로 장수하는 편이라서 부모님이 모두 아흔이 넘으셔서 돌아가셨는데 아버님은 오토바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같은 해에 뇌졸중으로 돌아가셨어요. 처음 컬러 TV가 나왔을 때 사다드리니까 집이 온 동네 주민의 집합장이 되었죠. 부모님은 제가 TV에 나오는 걸 낙으로 삼으셨었어요.

    ▶ 전두환 전 대통령과 고등학교 동창이신데 좀 덕을 보셨나요?(웃음)

    =제가 2년 후배인데 제가 경상도 고집스러운 사람이라 대통령 재직 시 인사하러 갔으면 덕을 봤겠지만 방송국에 잘 나가고 있을 때라 일체 가지를 않았어요. 그러다가 백담사에 있을 때 찾아갔는데 유명한 분이 어쩐 일로 오셨냐고 하더라고요. 제가 후배인줄 몰랐던 거죠. 그 이후에 가끔 만나기는 했는데 만날 때마다 집사람 고생시킨다고 야단만 들었어요. 자식을 다섯이나 낳았으면 말 다 한거 아니냐고요. 그래서 나는 우수한 사람이라 자손을 많이 낳아야한다고 했죠.(웃음)

    ▶ 국회의원을 출마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지금 생각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출마한 연도가 2000년인데 전 해에 나왔으면 아마 당선되었을 텐데 한 발 늦었어요. 고향 분들이 그래도 고마운 게, 내려갔을 때 선거자금을 조금 마련해서 저한테 주면서 ''''찍기는 다른 사람을 찍습니다. 우리 고향의 유명인사인 선생님을 찍어야 하는데 여기는 한나라당이 몰표인 지역이니까 다음에 한 번 더 나오세요.'''' 이러더라고요. 다른 사람을 찍어야 하는 미안함에 선거자금을 모아줬던 거죠. 경제적인 원조를 다 지원해 줄 테니 나가보라고 권한 분이 계셨어요. 결과적으로 당선이 안 돼서 그 분한테 빚을 지게 된 거죠. 기상만 알지 대인관계는 서툰 저에게 선거 브로커들에게는 참 쉬운 상대였겠죠. 얼마간의 돈만 있으면 이쪽 표는 따 놓은 당상이라는 말에 안 넘어갈 수가 없어요. 집사람은 제 고집을 아니까 알아서 하라고 반대를 안했어요. 지금 집사람이 당뇨로 시력을 많이 잃었는데 사실 출마만 안했으면 그때 병원에 갔어야 했어요. 그런데 선거 때문에 같이 따라다니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악수하고 이러면서 고생을 했던 게 나중에 끝나고 병원에 갔더니 늦었다고 하더라고요. 집에 들어가면 지금은 청소부터 합니다. 제가 아내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어요.

    ◇ 당뇨로 시력 잃은 아내 위해 청소, 빨래, 밥도 짓고 해

    ▶ 부인이 편찮으신데 가장 불편한 게 있다면 어떤 점인가요?

    =활동하는데 가장 큰 지장이 있어요. 집사람이 꼼짝을 못하니까 사람을 붙여놓고 볼 일을 봐야하니까요. 그래서 과거에는 예쁜 부인과 사는 사람이 부러웠는데 요즘은 부인이 건강한 사람을 보면 제일 부러워요. 저도 눈을 감고 10분을 못 견디겠는데 집사람이야 오죽하겠어요. 그래서 늘 내가 잘 해야지 하면서도 짜증스러울 때가 있지만 다행히 낙천주의자라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 기상통보관으로 잘나가던 젊은 때 아내에게 못되게 한 것 지금도 미안해

    ▶ 부인께 제일 미안할 때가 있다면 어떤 때인가요?

    =식사할 때 옆에서 도와줘야 할 때가 제일 미안해요. 한 끼는 밥을 먹었으면 한 끼는 국수를 먹는다든지 이것저것 다양하게 음식을 해 줘야 하는데 섬세하지 못해서 그렇게 못하거든요.또 반찬도 골고루 입에 넣어줘야 하는데 한 반찬만 주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남편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기가 죽어요. 0점도 못되는 -500점짜리 남편이니까요. 방송할 때는 새벽 4시 반에 나와서 12시에 집에 들어가는 생활을 했어요. 그러니 집안 살림부터 시작해서 아이양육까지 전부 다 집사람 몫이었거든요. 방송생활이 33년인데 지금 생각하면 그 긴 세월 얼마나 외로웠을까 참 미안합니다.

    ▶ 가족과 나들이는 자주 다니셨나요?

    =큰 아이가 4살 때 창경원에 가족이 놀러간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제가 방송생활 할 때 둘이 외출을 하면 저 먼저 앞세우고 집사람은 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와요. 제가 방송 때문에 얼굴이 알려져 있으니까 옆에서 같이 걷기가 부담스러웠던 거죠. 그리고 큰 딸의 회사가 정동에 있었는데 문화방송이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점심을 사달라고 해서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어요. 그랬더니 경향신문사 사회부 기자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왔어요. 만났더니 편집국에서 딸 같은 여자와 데이트를 한다고 말이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딸 같은 여자가 아니고 내 딸이라고 했더니 그렇게 큰 딸이 어디 있냐고 안 믿기에 딸을 불러서 편집국을 한 바퀴 돌았어요. 그러고 나서는 딸도 저와 같이 안다니려고 했어요.

    또 한번은 친구가 목동 쪽에 살았는데, 토요일은 기상청 근무시간이 1시에 끝나고 밤 10시 40분에 생방송이 있으니까 중간에 시간이 남잖아요. 그래서 몇 명이 어울려서 목동 친구 집에서 놀다가 방송에 가고 그랬는데, 그 친구 부인이 이제는 오지 말라고 하잖아요. 왜 그런가 했더니 친구 집에 갈 때마다 근처 슈퍼에 들러서 아이들 간식을 사 가지고 갔는데 그게 김동완 통보관이 작은 부인을 얻어서 산다고 소문이 난 거예요. 그래서 그 슈퍼에 가서 해명하고 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까 어딜 다니기도 불편하고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 지금도 방송 사고 나는 꿈을 꿔

    ▶ 방송생활이 33년이신데 추억이 많으실 것 같아요.

    =방송하는 꿈을 많이 꾸는데 꼭 방송시간을 놓쳐요. 늦어서 애태우고 꿈에서 깨면 안도하고. 일기예보가 생방송이었다가 나중에는 녹화로 바뀌었잖아요. 동양방송에서 일기도를 직접 그려가면서 예보를 할 때였는데 NG가 났어요. 제 자랑 같지만 NG없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이야기가 이게 아니다 싶으면 뒤로 다시 되돌아가서 이야기를 잡아가거든요. 그리고 한번은 방송 중에 기침이 나면 그냥 해 버려요. 그리고 나서는 ''''아, 요즘 공기가 매우 건조합니다. 감기에 조심하세요.'''' 하면 시청자들이 볼 때는 예보를 더 잘하기 위해서 일부러 기침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일기도를 다 그렸는데 NG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린 거 뽑아놓고 다시 꽂아놓고 했어요. 끝나고 나서 PD가 죄송하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들이 보기에는 아무렇게나 그리는 것 같아서 NG를 내고 다시 한번 그려보게 했는데 다시 그려도 똑같이 그리거든요. 그랬더니 정말 죄송하다고 하더라고요.

    ▶ 김동완 전 통보관께서 하신 멘트가 너무 멋진 게 많아요.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봄 날씨는 최소한 하루에 세 번 변합니다. 아침에 썰렁하고 점심에는 덥고 저녁에는 바람이 붑니다. 돌아오는 길에 여벌의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미니스커트를 입기에는 추운 날씨입니다.'''' 이것도 미리 준비를 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제가 옛날 어른들을 많이 만나고 얘기를 많이 들어요. 지금은 공인중개사지만 옛날에는 복덕방이었잖아요. 복덕방에 가서 논 적이 많아요. 그런 데서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TV에 나오기 전에는 사람들이 나이가 굉장히 많은 줄 알았대요. ''''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 날이 갑자기 한파가 몰려올 때는 ''''오늘은 호랑이 장가가는 날입니다.'''' ''''아침에 안개 낀 날 스님 머리 벗겨진다.'''' 일기 속담인데 이 얘기를 하고 방송국 중역에게 언짢은 말을 들었어요. 날씨만 얘기하지 중머리 벗겨진다는 얘기는 왜 하느냐고요. 날씨를 좀 더 시청자들의 귀에 쏙 들어가게, 기억에 남게 재미있게 해야 하거든요. 날이 따뜻하고 좋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앞에 ''''아침에 안개 낀 날 스님 머리 벗겨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햇빛이 상당히 따사하게 나겠습니다. 오후에는 약간 덥겠습니다. 옷차림에 유의하세요.'''' 이런 표현을 이해 못하는 중역이 저는 더 이해가 안 갔어요.이제는 많이 달라졌겠지만 날씨는 가능한 한 우리 생활주변과 연결시켜서 이야기를 해 줘야만 도움이 되는 거예요.

    ▶ 오늘 이 시간, 갑자기 소나기가 온다고 생각하시고 멘트 하나 날려주시겠어요.

    ''''=봄을 셋으로 나눌 때 조춘(早春), 맹춘(孟春), 난춘(暖春)으로 구분이 됩니다. 4월이 난춘의 계절입니다. 난춘이라는 얘기는 한마디로 날씨 변화가 심하다는 말이죠. 특히 그 중에서도 바람의 변화가 심합니다. 바람도 번지가 있는데 4월의 바람은 번지가 없는 바람입니다. 번지가 없는 바람은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를 가져옵니다. 오늘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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