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그룹 계열사들의 자금을 횡령하는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에 대해서 법원이 5일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방어권 보장 등을 이유로 보석을 유지해 정 회장을 법정구속 하지는 않았다.
△ 정몽구 회장 징역 3년 선고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5부 김동오 부장판사는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과 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 회장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또 같이 기소된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에게는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이정대 현대차 재경본부장과 김승년 현대차 구매본부장에게는 각각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보석상태인 정 회장을 법정구속 하지는 않았다. 지난달 16일 있었던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정 회장에게 징역 6년을 구형했다.
정 회장은 최후진술에서 다시 한번 경영에 전력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며 재판부의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5일 법원이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자 굳은 얼굴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없이 법정을 떠났다.
정 회장의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공판이 열리기 전부터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정 회장이 법원 내로 들어서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현대 하이스코 해고 노동자들이 복직을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이다 현대 측 관계자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도 보였다.
△ 정 회장 ''배임·횡령 혐의''는… 정 회장에 대한 혐의는 크게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정 회장이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으로 있으면서 현대차,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 등 계열사 경비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횡령한 혐의를 들 수 있다.
이 밖에 현대우주항공 유상증자와 관련된 배임혐의, 현대강관 유상증자와 관련된 배임과 횡령혐의, 본텍 유상증자 및 부실채권 거래에서 배임혐의 등이 적용됐다.
변호인들은 현대우주항공 관련 배임혐의와 현대강관 관련 배임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며 검찰측과 다퉜다. 현대우주항공이나 현대강관에 대한 유상증자 모두 현대차 계열사들의 불이익을 피하고 빅딜을 완수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현대우주항공의 유상증자가 부도를 피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보기 힘들고 유상증자에 참여한 주주사들에게 손실이 발생한 점이 인정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또 현대강관 유상증자에 대해서도 현대자동차 등이 투자액 중 약 90%에 이르는 손실을 입고 해외 펀드 계약에서도 일부 외국사에게 일정한 투자수익을 보장한 불리한 약정을 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결국 법원은 정회장의 횡령액등과 배임으로 인한 기업의 피해가 중하다며 정회장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 최근 어려운 현대차 사정, 판결에 영향 미쳤나실제로 재판부는 선고에서 양형판단 부분에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회사자금 횡령에 대해 그룹 경영에 불가피하게 필요한 자금을 준비할 필요성이 있었고, 비자금 중 상당수가 국가행사 지원을 위해 사용된 점, 2003년 이후로는 비자금 조성을 하지 않으려한 노력이 인정된다고 전제했다.
또 현대우주항공이나 현대강관의 유상증자와 관련해서도 부실 기업들의 기존 부채를 상환하면서 채권금융기관들의 부실화를 방지하고 현대우주항공등의 부도가 현대그룹 계열사 대외 신인도에 끼칠 영향 등을 고려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 비자금을 조성해 불법적으로 사용한 행위는 우리 기업문화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지 않다며 이 같은 관행을 반드시 근절하기 위해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또 정 회장의 일련의 행위가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초래한 것이라 해도 법률적으로 명백한 범법행위에 해당된다며 처벌 의지를 밝혔다.
△ 법원 판결, 기업범죄 엄정 의지 반영 정 회장 이전에도 대기업 총수들이 수 차례 법정에 선 전례가 있었다.
최태원 SK 회장은 SK글로벌 분식회계를 지시하고 SK증권 주식 이면계약에 개입해 계열사에 1천억원대 손실을 입힌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이, 2005년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유 5년이 선고됐다.
회삿돈 285억여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던 박용오·박용성 두산그룹 전 회장의 경우 검찰은 징역 6년을 구형했고 법원은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고, 항소심에서도 1심 형량이 그대로 유지됐다.
잇따른 재벌총수들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 유전무죄라는 비판이 계속되자 법원은 기업범죄에 대한 엄정한 대처를 강조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두산그룹 총수들에 대한 공판이 끝난 뒤 불만을 표시하며 이례적으로 기업범죄 엄단 의지을 밝히기도 했다.
결국 이번 정몽구 회장에 대한 법원의 실형선고는 이 같은 법원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다만 정회장에 대해서는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하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석결정을 취소하지 않는다고 밝혀 법적 정의실현과 현실적 배려를 동시에 고려해야 했던 법원의 고심을 내비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