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선교사''를 꿈꾸며 쉬지않고 달려오던 한 젊은이의 꿈이 무참히 깨져 버렸다.
꺼져버린 한 젊은이의 꿈
월세 10만원 지하 셋방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으로 어렵게 살면서 학창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의 선교사를 꿈꾸던 김씨.
학교를 4군데나 다니며 오직 한 가지 꿈을 위해 달려오던 고 김선일(34) 씨는 "통역대학원 비용을 벌어오겠다"며 간 이라크에서 그가 그렇게도 원하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채 무참히 살해됐다.
지난 70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 씨는 지난 90년 성심외국어전문대를 입학했지만 목회자의 꿈의 이루기 위해 현재 경성대학교로 통합된 부산신학교에 편입해 신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에도 한세신학대학원, 한국외국어대 등 모두 4군데 대학에서 영어, 신학, 선교학, 아랍어 등을 독학으로 전공하며 선교사역을 꿈꿔왔다.
당시 부산신학교 학과장이었던 나동광 교수는 "김 씨가 영어를 잘하고 조용히 공부하는 스타일이었으며 기도에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 학과장이었던 손주영 교수 역시 "조용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는데, 참담한 마음이다. "며 심경을 밝혔다.
학창시절 교수들도 "한결같은 학생" 비보를 접한 박종평 아랍어과 교수도 "김선일씨는 아주 조용하게 자기 맡은 바를 잘 하는 학생이었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신앙심이 깊었던 김 씨는 지난 90년 6월 부산 장전제일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지난 해 6월부터 미군 군납업체인 가나무역에 근무하며 이라크 근무를 자원해 통역관으로 근무해 왔다.
김 씨의 주변 친구들도 "선일이는 혼자 돈을 벌며 학교를 다녔다''''며''''통역대학원 학비를 벌기 위해 이라크에 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 씨의 직장동료들도 김씨가 "조용하고 신의있는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가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 하나만으로 버텨왔던 김씨 가족들은 청천벽력같은 김씨의 사망소식에 오열하고 있다.
독학으로 3개 대학을 졸업했을 만큼 열정이 남달랐던 선일이, 목사의 꿈을 키우며 해외 선교에도 관심이 많았던 선일이, 어려운 가정형편에 잘해주지 못했던 어머니 신영자 씨는 "아들이 우리집 전 재산인데 내가 죄가 많아서.. 대신 나를 잡아가지 그래."하며 오열한다.
말문 막힌 가족들 "칠순잔치 온다더니" 이제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력을 잃은채 말문을 제대로 열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 김종규(69)씨도 한달 후 아버지 칠순잔치에 돌아오겠다던 아들의 약속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친지들에 따르면, 김씨의 이라크 근무 계약기간은 1년으로 원래 이달 초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회사측 부탁으로 12월까지 계약을 연장한 것으로 밝혀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34년 인생을 오직 아랍권을 복음화하는 선교사를 꿈꾸며 살아온 고 김선일 씨..
"살려달라"던 그의 처철한 절규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온몸과 마음을 바쳐 달려왔던 중동 선교사로서의 그의 꿈은 선교지 이라크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식어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노컷뉴스 곽인숙기자 cinspai@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