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공지영 (CBS 라디오 ''아주 특별한 인터뷰'')
▶ 출연 : 권일용 경사(서울시경찰청 범죄분석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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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파일링''이란 무엇인가요?연쇄범죄를 분석하는 일입니다. 현장에서 눈에 보이는 것 외에도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찾아내는 거죠. 범죄자의 행동 분석이 저희들의 역할입니다.
- 경사보다는 형사로 불리는 걸 좋아하신다구요?그런 호칭이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계급보다는 자기가 맡은 일에 좀더 마음을 쓰고 보람을 가질 수 있는 호칭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 어릴 때부터 경찰이 되고 싶었나요?어렸을 땐 경찰이 되고 싶진 않았어요. 원래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죠. 그러다가 내가 남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런 걸 생각하다가 이 일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되어서도 현장감식요원, 그러니까 수사를 하는 데 지원할 수 있는 쪽으로 가게 된 것 같습니다.
- 수많은 역할 중 현장감식요원 일이 맡겨진 이유는?사실 사소한 계기였어요. 자리가 공석이었거든요. 하하.
- 범죄현장에서 처음 시신을 본 건 언제인가요?이 일을 시작한 93년부터인데요. 우리나라의 경우 피해자를 가족이 발견하는 경우가 많은데, 피해자의 옷이 벗겨져있을 경우 발견한 가족이 옷을 입혀주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가족으로서의 안타까움이 당연히 표현되는 건데요. 그런 것들은 저희가 현장감식을 하는 데 감안해야 할 부분입니다.
- 시신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먼저 일이라는 생각을 하죠. 경찰이 이 분께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가슴이 아프다든가 하는 감정적인 생각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죠.
- 만에 하나 주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우선 수사기관에 신고하시고,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셔야 합니다.
- 국내 최초의 프로파일러이신데, 당시 어려움이 많았죠?네. 어려웠죠. 사실 프로파일링이라는 기법이 어느날 갑자기 필요했던 건 아니었어요. 현장감식을 하다보면 분명 범인은 검거됐는데도 불구하고 그전과 유사한 현장이 남아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국 어떤 범죄자든 행동 자체에 유형이 있지 않겠느냐, 유사한 유형의 사람들은 유사한 행동을 하지 않겠느냐, 그 유형을 파악하면 수사에 좀더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테니 그 분석자료 역할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현장에서의 생각이 있었죠. 그런 현장에서의 생각들이 프로파일링이라는 수사기법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 어떤 비슷한 유형의 범죄가 있나요?침입의 방법 등이 있겠죠. 예를 들어 처음 담을 넘어 남의 집 절도를 하는 범죄자의 경우 대문이 열려있어도 담을 넘어서 들어가기도 하구요. 유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유사한 패턴을 가지기 때문에 우리가 수사하는 데 유익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에서 연쇄살인범으로 검거된 사람은 몇명 정도인가요?연쇄적으로 벌어지는 범죄와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범죄는 개념의 차이가 있습니다. 정말 연쇄살인은 자기만의 생각 속에서 범죄를 계획하고, 그 계획을 추구하고, 범행을 실제 실행함으로 인해서 만족감을 느낍니다. 유영철이나 최근 검거되어 조사중인 봉천동 살인사건의 정씨의 경우 자기 범죄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많습니다.
- 현장조사를 하다가 연쇄살인을 직감하시는 경우도 있나요?사실 영화처럼 현장에서 한눈에 연쇄살인을 직감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영화는 한두시간 내에 범인이 잡히기 때문에 그런 거구요. 저희들은 평가할 수 있는 많은 요인들을 추출해서 분석하고, 팀원들 각자의 역할을 통해 그런 내용을 문의하고, 토론하고, 수많은 밤샘 작업을 통해 실질적으로 범죄자에 다가설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해내는 거죠.
- 집에는 자주 들어가시나요?자주 들어가긴 합니다. 근데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이 거의 없죠. 항상 아이들이 자고 있는 모습만 보기 때문에 아이들의 키를 세로로 재는 게 아니라 가로로 키를 잰다는 말도 있죠.
- 요새는 수사 과정이 실시간으로 보도되는데요?사실 여러 문제점이 있습니다. 범죄자들이 보도되는 자기 범죄를 보고 다음 범죄 계획을 세우는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거든요. 언론에서도 범죄 자체에 대한 내용보다는 어떤 범죄가 벌어지고 있으니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보도하는 시스템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 가장 많은 범죄 원인은 무엇인가요?가족의 해체죠. 어려움을 겪을 때 누가 지지해주지 못하는 환경 등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고립된 삶의 패턴이 내제된 분노감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마구 표출하게 하는 것 같아요.
- 이번 봉천동 살인사건의 범인인 정씨의 경우 방에서 최면요법이 발견됐다구요?압수수색을 할 때 최면과 관련된 책들이 일부 발견됐습니다. 우리 분석팀에서는 법최면을 활용해서 수사를 진행하거든요. 예를 들면 피해자나 목격자가 범죄 당시 충격으로 인해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들을 법최면을 통해 좀더 안정시킨 후 수사에 필요한 자료들을 얻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범행 당시의 상황을 좀더 접근해서 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요. 그런 부분조차도 범죄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거죠. 그런 수사기법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범죄자들의 범행수법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 내용을 상세히 말씀드리기에는 곤란한 면이 있습니다.
- 그래서 목격자를 살인하는 일도 많아지는 건가요?그럴 가능성이 많죠.
- 우리나라의 수사기법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우리의 과학수사는 외국에 비해 수준이 굉장히 높습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물을 채취하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연구해서 연쇄범죄를 차단하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팀의 경우도 범죄자를 추적할 때 물론 학문적 지식도 많이 필요하겠지만 범죄를 분석하는 나 자체가 그 사람화되어서 범인 입장에서 생각하고, 범인의 눈을 가지고 보죠. 이렇게 범인화되는 게 보이지 않는 범죄자를 찾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그렇게 범죄분석요원 자체가 범죄자 입장에서 자꾸 생각하다보면 정서적 면에서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책에 "네가 악의 심연을 들여다볼 때는 악의 심연도 너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말이 나오잖아요. 자기 본연의 삶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아를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과 함정에 빠지기 쉽죠. 그래서 건강한 정신을 갖지 않으면 이 일을 하기 쉽지 않습니다.
- 원래 정신적으로 강한 편이신가요?그렇지는 않습니다. 가족들의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살기 때문에 건강한 정신에서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 정신적으로는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종교적인 면에 기대기도 하고요. 공지영씨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같은 책도 많이 보고, 시를 읽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감정적인 부분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죠.
- 이번에 봉천동 연쇄살인범 정씨를 잡은 이야기 좀 해주세요.범죄수사라는 게 프로파일링을 갖고 범인을 검거하는 건 아닙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수사형사들의 기지나 순간적 감각이 범인 검거에 큰 역할을 하죠. 과학수사나 프로파일링 기법은 수사를 지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번 사건도 범죄자를 신속하게 검거할 수 있었던 현장요원들의 역할이 큽니다. 다만 프로파일링 팀은 그 범죄자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라든가 그전에 연관된 수많은 범죄들에 그 범죄자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제안을 해주면서 수사를 진행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서남부 사건 때부터도 보이지 않는 범죄자에 대해 계속 연구되고 자료화 되어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신속하게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던 거죠.
- 프로파일링에 성격이나 키 등도 다 나오나요?용의자의 연령대나 라이프 스타일, 그 사람이 어떤 형태의 거주환경이나 가족관계를 갖고 있다든가 기존에 어떤 형태의 범죄를 저질렀다든가에 대해 분석을 통해 수사단서를 제공합니다. 특정 범죄가 벌어졌을 때 범죄자의 범행 동기, 그리고 그 동기가 어떻게 형성됐느냐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 이번 봉천동 정씨의 경우는 어떤 데이터가 나왔나요?지지받지 못하고 고립된 생활,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형태의 삶, 이런 부분을 좀더 자료화시키면 추적할 수 있는 요소가 많죠. 그런 삶의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대인관계를 맺을 것이고, 어디에 출몰할 것이며, 만약 현장에서 형사들이 이 범죄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이런 답변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등등. 봉천동 정씨의 경우 자기가 범행에 사용했던 도구는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 현장에서 범행도구가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저희 분석요원들의 역할이 언론 등을 통해 많이 보도되고 있는데요. 범죄자 정씨가 저의 사진이 담긴 인터뷰 기사를 갖고 있더라구요. 그러면서 나중에 저에게 말하기를 "좌절감을 많이 느꼈다"고 하더라구요. 자기는 완전범죄를 추구했는데도 불구하고 현장에 남겨진 것 이외에 자신의 행동 자체를 분석한다는 걸 알고 좌절했다구요. 저 역시도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 어렸을 땐 신부님이 되고 싶으셨다구요?어린 시절 종교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종교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죠. 지금은 결혼해서 살고 있지만, 항상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많이 느끼구요. 제가 하는 일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범인 검거 외에도 뭔가 마음의 것들을 드릴 수 있길 바라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국내에 프로파일링 기법이 도입된 얘기 좀 해주세요.사실 미국 FBI에서 프로파일링을 시작했던 건 당시엔 이미 연쇄살인이 미국사회를 흔들고 있던 상황이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연쇄살인범을 검거하기 위한 대안으로 만들어진 게 프로파일링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동안 미국처럼 연쇄살인이라는 개념의 범죄가 많지 않았습니다. 저희들이 2000년을 전후해 자료를 수집한 것도 향후 5~6년이 지나면 이런 유형의 범죄자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현장 감각을 가지고 미리 시작한 거죠. 그래서 수많은 범죄자와 인터뷰하면서 그 내용을 자료화 했습니다. 그런 많은 시간들을 통해 현재 범죄가 발생할 경우 이 사람이 어떤 연령층이고, 어떤 대인관계를 갖고, 이런이런 일들을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는구나 유추하는 겁니다.
- 화성 연쇄살인 때는 어땠나요?범죄자의 행동분석 뿐 아니라 과학적 수사기법이 낙후되어 있던 시절이었어요. 심지어 유전자 검사마저 외국에 의뢰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죠. 따라서 당시 범죄를 당시 그 사건만 가지고 추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이후 연속되어질 가능성이 있는 범죄들에 주목하면서 끝없이 보이지 않는 범죄자를 추적하고 있죠. 범죄자가 범행을 하기 전에 미리 잡아내는 게 저희들이 역할이므로 더이상의 피해자가 생기기 전에 추적하는 게 중요하죠.
- 화성 연쇄살인범의 경우 패턴이 있다고 하는데, 만약 그 사람이 다른 패턴으로 범죄를 행해도 캐치해낼 수 있으신가요?그렇습니다. 범죄자는 언제나 자기 범죄를 나름대로 진화시킵니다. 자기 범죄를 숨기기 위해 패턴을 바꾸거나 다른 범죄도구를 쓰기도 하죠. 사실 저희들이 프로파일러라고 하지만 정말 프로파일러들은 범죄자인 것 같아요.
- 현장에서 가장 섬뜩했던 순간은?범죄자 흔적을 찾기 위해 범행이 발생된 동일한 시간대에 현장에 갑니다. 현장에서 이 범죄자가 이 시간대에 이 피해자를 공격하기 위해 느꼈던 심정을 현장에서 같이 느끼기 때문에 그러는 건데요. 그 순간 고양이라도 한마리 지나가면 너무 섬뜩하죠.
- 내 인생 최악의 사건은?역시 이번 사건이죠. 서남부부터 진행됐던 많은 시간들을 현장에서 많이 고뇌하고 수많은 밤을 지샜습니다. 초기에 사건을 차단하지 못한 게 죄송스럽지만, 이런 범죄가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15년 동안 일을 해오시면서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게 있다구요?범죄현장이죠. 그동안 수많은 범죄현장에서 많은 희생자들을 보아왔지만 현장에서의 감정에는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항상 가슴이 아프고, 늘 처음 가는 느낌이 들어요. 늘 처음 보는 장면처럼 가슴 아픈 느낌. 이런 것들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익숙해질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 앞으로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좀더 다양한 경험과 개방된 사고, 남을 이해하는 능력, 그리고 남을 이해하려면 자기자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바탕에서 범죄자를 이해할 수 있는 요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일주일쯤 휴가가 주어진다면 뭘 하고 싶으세요?
정말 꿈만 같은 일이네요.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가족들과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너무 하고 싶구요. 조용한 곳에서 저만의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갑자기 목이 메이네요. 미안한 마음이 가장 큽니다. 아이들에게, 다른 친구들이 부모님과 놀러다닐 때 같이 있어주지 못했던... (말을 잇지 못하는)
- 지금 눈시울이 빨개지셨네요. 이렇게 훌륭한 일 하시는데 가족들도 모두 이해해주시고 함께 해주시는 것 같아요.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