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년 KAL 858기 사고당시 안기부 대공수사국장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 VS 진상규명대책위 변호사 심재환
정형근의원
"김현희는 분명한 KAL기 폭파범"
"YS,DJ 대통령 취임후 조사했지만 허탕"
"신부들이 소설쓰고 있는 것"
"바레인 수사진 조기철수는 주권문제때문"
"블랙박스는 한달동안 찾지못해 신호 꺼져"
-87년 당시 858기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 당시 사고는 대선정국에 따라 안기부가 조작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당시 사고는 87년11월29일 대선 한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터졌다. 이때 대통령 당선자는 노태우였고, 경쟁상대는 김대중씨와 김영삼씨.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한다면 이 두 사람. 그리고 이후 나란히 대통령이 되었다. 그 밖의 다른 사건들도 혹시 음해하고 간첩사건을 조작하지 않았나 해서 10년전, 12년전 사건까지도 뒤졌다. 당연히 그사건을 뒤졌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초대 민변회장을 지냈던 고형구씨가 국정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 사건을 뒤졌을 것입니다. 아무런 조작의 증거나 사건이 없습니다. 왜 다시 이런 주장이 나오는지 대단히 의문스럽고 오히려 그런 의혹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김대중 정권이나 그 이전, 또는 현재 고형구 국정원장이 의혹을 제기하지 않고 재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이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분들이 그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한 것으로 안다.
-이분들이 철저하게 했다고 얘기는 안하지 않았나?
=아니다. 이분들이 국정원에서 정권을 잡고는 이러한 사건들을 포함해서 모든 조작되었다고 제기한 것들을 다 조사를 했다.
-이 부분에서는 재수사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말 아닌가?
=재수사를 요구한 것이 아니고, 수사를 해보니 이 사건은 틀림없는 김현희에 의한 북한의 폭파사고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좀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서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와 현재 고형구 국정원장 때까지 와서도 이 부분에 대한 수사에 대해 확인했다는 얘긴가?
=그렇다. 내가 이번 인터뷰 전에 현재 국정원 수사담당 책임자하고 이 문제가 새삼스럽게 나오냐고 하니까 천부당만부당한 것이라고 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개별적으로 설명했다고 이사건이 조작되지 않았다는 개별설명을 했다고 합디다.
-이 기록이 모두 남아 있나?
=기록으로 다 남아있다.
-국정원에서 현재 가지고 있다는 얘긴가?
=그렇다.
-지금 진상규명대책위가 형성되고 많은 종교단체들이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시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서 확인한 것들을 당시에 왜 발표하지 않았나?
=여러 신부님들, 소설을 쓰면서 제기하는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만나면서...
-누가 만났나?
=국정원에서 당국의 간부들이 개별적으로 만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설명을 했고, 또 이 문제가 우리나라의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이 문제를 연합뉴스 자매지, 연합저널에서 이 것이 의혹이고 조작되었다고 톱기사로 월간지에 썼다. 조목조목 10가지 정도를 의혹을 제기했는데, 국회 정보위에서 국정원에 대해 질의를 했다. 이런이런 의문들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관계를 설명하라 했더니 조목조목 반박하는 자료를 가져왔다. 나는 이것을 언제든 공개할 용의가 있다.
-그것이 최근의 이야긴가?
=최근의 일이다.
-그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국장이었던 정의원이 처음부터 이 사건을 맡았나?
=처음부터 맡지 않았다. 당시 난 (반대?)를 했고, 그 뒤에 맡아서 연결을 해서 주욱 수사를 했는데, 그 전에 다른 국장에 있었는데, 나를 보고 담당국장이라 해도 관계없다. 또 김현희씨를 관리했고 후속 수사를 했다.
-그럼 몇가지를 말씀해 달라
=무엇이든 물어봐라
-지금 진상규명대책위가 조작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굉장히 많고 아까 말한 10대 의혹도 있는데..수사가 왜 10일만에 끝났나, 블랙박스 왜 공개 안했나, 블랙박스 왜 못찾았나 이런 얘기 아닌가. 그 부분은 어떻게...?
=수사가 10일만에 종결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이 사건이 터지자 당시 외무부의 홍순영 2차관보를 단장으로 외무부 등 관계기관 합동조사반을 꾸려서 25명이 당시 바레인 현장으로 갔다. 알다시피 외국에서 수사, 조사를 한다는 것이 외국의 주권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오래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열흘동안 수사를 전부하고 많은 성과를 얻고 약 17명은 돌아오고 나머지 8명하고 현지 주재관 등 12명이 남아서 한달이상 자료를 모으고 조사했다. 10일만에 수사가 종결되었다는 것은 말을 만들려는 것 아니다. 블랙박스 공개하지않은 것은 당시 안다만 해협 심해가 2천내지 3천 물살속도 굉장히 빨라, 건질려는 노력하고 비행기 잔해 많이 건지고 60점 정도. 끝내 블랙박스 건지지 못했다. 우리가 알기로는 박스가 음파를 통해 한달동안 2마일 이내에 신호를 보낸다. 한달이 지나면 박스가 자체적으로 시그날 신호를 꺼버린다. 그래서 29일 지나자 시그날을 꺼버려서, 자동소멸해서 안한거지 문제가 된 것이 아니다. 모든 문제를 반박할 수 있는데 그건 아니다.
-당시 잔해 60점 나온거 유가족은 확인했나?
=그렇다 전부 확인했다. 기록이 전부 있다.
-유가족 유품확인 못했다는데?
=노~노. 자료로 기록이 있고. 당시 우리나라 해운공사소속 다곤1호(?)라고 배가 있었다. 안다만 타고이(?) 몰다만 입구에서 서남방 25마일 지점해서 노란색 구명 등 858기 잔해 60점 모두 찾아서 잔해도 맞추고 폭파가 됐는지 아닌지 미국에 보내서 실험해봤다. 당시 칼기가 폭파된 것이 확실하다
-또 한가지 당시 김현희 관련 재판기록을 왜 공개 안했나?
=그것은 김현희 같은 대사건은 일반사건과 달리 공소시효 상관없이 영구보관이다. 언제든지 공개 가능할 것이다.
-대책위 요구하면 공개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렇다. 다만 북한공작 등과 관련한 사건과 관련해 기록에 수사관 이름 등도 있으니까 그렇지 국가적인 이슈가 돼 공개하라면 해야지 못할 이유가 없다.
-김현희가 대법으로부터 사형선고 받은 보름만에 특별사면조치 받았다. 국보법 냉혹한거 알 수 있는데, 납득안가는 조치아니냐?
=김현희를 사형해야하냐 아니면 사면하느냐를 가지고 시시비비가 갈렸다. 관계기관의 회의를 여러번 했고, 대게 우세한 여론이 북한의 국가주도 테러리즘을 산증인인 김현희를 살려 두고 이것을 영원한 북한의 테러라는 것으로 삼기위해 증인으로서 살려놓은 것이다. 만약에... 그리고 죽였다면, 조작해놓고 빨리죽였다고 할수 도 있지 않나. 이런 논의로 간다면 살려놓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
-대책위서 재조사하자 한다면 김현희씨를 증인으로 세울수도 있는거 아닌가
=백번 수백번이라도 한다. 다만 이런 명백한 북의 테러를 호도한 그들의 책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사건이 김현희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안기부가 발표했고, 국민들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국민들 일부에는 1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렇게 의혹이 계속 남아 있는데 불식시키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중요하다. 한마디한다면, 국내에서 북한이 조작이라고 허위선전한 것이 많은 분야에서 제기됐는데...심지어 국회의원 40여명이 주로 당시 민주당원들이었는데 조작의혹을 조사하라고 정부에 청원까지 했다. 많은 국민들이 이에 호도되서 이것이 정말 조작 아닌가라는 의혹이 더 퍼졌다. 그런데 김정일이 고이즈미와 만난 회담에서 김현희에게 일본어 가르친 이은해, 마구치 에이 아야꼬(?)를 우리가 납치해서 (북에서)죽었다고 해서 시인해서 다시 뒤집어 졌다. 근데 다시 이런 의혹제기가 나와 이해 안간다.
진상규명대책위 변호사 심재환 -앞에서 쭈욱 들었는데?
=지금까지 안기부, 국정원에서 얘기한 것과 똑같다. 가족들이 우리가 16년간 제기했던 의혹들을 제대로 설명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하나 지목해서 설명 못하고 있다.
-지금 대책위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 중 몇가지만 확인했는데, 수사가 금방 끝난 것이 아니라는데?
=그렇지 않다. 수사는 지속됐고, 다음해 1월15일 1차 수사발표했다. 문제된 것은 사고가 날 때 초동수사의 핵심은 어던 형태로 벌어졌는지 현장을 찾는 수색이 형식적으로 열흘만에 이뤄지다가 본질적으로 중단됐다. 가족들의 말을 빌면 당시 방콕 호텔에서 수사본부가 본부를 차리고 수사를 하고 있는데, 수사과정을 쭈욱 지켜본 호텔직원이 유가족들에게 "수사관들이 호텔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수색하러 온사람들이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그랬다고 하더라.
-물어보고 싶은것?
=신부님들이나 의혹제기 한사람들을 개별적으로 만나서 국정원에서 납득하도록 얘기를 했다는데 국정원 책임자들을 만났던 사람들은 전혀 납득할만한 설명 못듣구 오히려 그들이 의혹제기 답변 못했다고.
-김영삼, 김대중 정권 시절부터 현 국정원장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수사가 맞다고 조사한 자료가 있다는데?
=금시초문이다. 우리가 알기에 비공개적으로 두차례정도 대책위와 기관간 면담이 있었다는데, 한번은 설명회를, 토론을 갖자는 논란만 가졌다가 끝났고, 2001년에 국정원 책임자들과 시민단체들과 3시간 정도 만나서 논의한 적이 있다. 직접 참가 못하고 들어만 봤는데, 몇가지 중요한 의혹, 여러가지 정황에 대해 전혀 답을 못했다고 하더라.
-김현희 재판내용 공개에 대해서는?
=정의원이 왜 공개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얘기 했는데 고마운 말씀이다. 우리들로서도 이것이 일반 형사사건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다. 공개재판을 거쳐서 대법에서 확정된 판결이니 만큼 당연히 공개해야 하는데 왜 공개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공개를 요청했는데 거부했나?
=그렇다. 거부해서 그 거부한 처분을 피소해달라는 소송을 했다.
-현 국정원에서도 거부했나, 다시 요청했나?
=국정원에서 수사한 자료가 검찰로 넘어와서 검찰이 공소권을 가지고 있는데... 모든 자료가 넘어온 것은 아닐 것이고, 수사자료의 기본. 재판과정을 거치게 만들 수 있는 기초적인 수사내용은 넘어온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청구했는데, 그 보관을 서울지검에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