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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아프리카

    공습으로 사망한 야신은 누구인가?

    • 2004-03-2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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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무장세력화를 통한 저항운동의 산 증인

     

    22일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숨진 하마스지도자 셰이크 아메드 야신은 지난 1938년 영국보호령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당한 사고로 하반신 불구가 된 야신은 그러나, 이집트 알-자하르대학에서 이슬람율법을 전공한 뒤 성직에 입문했다.

    평범한 성직자로 인생을 보내던 야신에게 이집트가 지난 1970년대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일방적으로 평화안을 서명한 캠프 데이비드협정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야신


    당시 야신은 "어느 이슬람지도자도 스스로 자신의 영토를 포기할 권리는 없다"며 "심판이 날이 올 때까지 전 이슬람이 뭉쳐 싸워야 한다"는 정치발언을 했다.

    이런 야신에 대해 이슬람권의 반응을 냉담했지만 1978년 팔레스타인에서 제 1차 인티파타운동이 벌어지자 야신은 일약 이들의 정신적 영웅으로 부상했다.

    이들은 아랍어로 ''용기와 열정''에 해당하는 저항단체 하마스를 결성, 야신을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했다.

    이런 야신을 이스라엘당국은 지난 1989년 위험인물로 간주, 체포했고 이스라엘군과 협력한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살해명령을 내린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지난 1997년 이스라엘당국은 요르단과 이스라엘 스파이 2명을 교환하는 조건으로 야신을 석방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두려워한 것은 감옥에 투옥돼 있는 야신의 인기가 점점 올라가 이스라엘의 대화 파트너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장 야세르 아라파트를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특히, 야신의 석방 뒤에는 노선을 달리하는 2명의 아랍지도자를 뒤 양측 다 지지도가 내려가게 하자는 이스라엘의 철처한 계산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석방 직후 야신은 "평화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저항에서 온다"는 연설을 했고 그 뒤 자살폭탄테러가 이어지고 있었다.

    지난해 10월에도 가자지구의 친구집에 있던 야신을 이스라엘당국이 암살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야신은 목숨이 1000개라는 소문까지 돌아 불사신의 대명사가 됐다. 결국 이스라엘의 성급한 판단이 야신의 명성만 키워준 셈이었다.

    야신은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지구를 떠나지 않아 더욱 존경을 받아 왔다.

    하마스는 요르단 전 국왕 후세인의 지원아래 요르단에서 저항운동을 계속했지만 후세인이 숨진 뒤 아들 압둘라는 하마스를 불법단체로 규정, 이들은 현재 카타르로 본거지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치적인 타협으로 풀려는 PLO와는 달리 하마스는 폭력과 테러라는 직접적인 수단을 동원한다는 면에서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즉, 이집트 출신의 아라파트보다는 팔레스타인출신의 야신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고향의 경건한 이슬람성직자로 다가오고 있어 이들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한다고 풀이되며 특히 고급 엘리트위주의 PLO에 신물이 난 민중들에게는 풀뿌리 민족주의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PLO가 인질납치 및 몸값요구를 통해 자금원확보에 힘쓰는데 비해 하마스는 자살폭탄테러를 한다는 점도 다른 점이다. 잘 짜여진 조직에서 상부의 명령을 받는 PLO와 달리 하마스는 스스로 자원한 혁명투사들의 집단이란 것이다.

    CBS노컷뉴스 이서규기자 wangsobang@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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