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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날마다 채우는 것이요, 도를 닦는 것은 날마다 비우는 일이다(爲學日益 爲道日損).'' 최근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서 만난 배우 오현경(76)과의 인터뷰를 마친 뒤 떠오른 문장이다.
노자가 도덕경에 남긴 이 말은 세상이 개인에게 요구하는 이념이나 가치관에서 벗어나 참된 자아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오현경의 60여 년 배우 인생은 세상을 ''보라는 대로'' 인식하지 말고 ''보이는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노자의 유훈과 많이 닮아 있었다.
선생을 만난 곳은 ''송백당(松栢堂)''이라 불리는 연습실. 이곳은 그가 후배 배우들에게 무료로 연기 노하우를 전수하는 교육장이다.
소나무 잣나무가 역경을 이기고 낙락장송이 되듯이 후배들이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배우로 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 붙였다고 한다.
사비를 들여 2000년 문을 열었지만 경제난으로 3년 만에 문을 닫은 뒤 올 2월 다시 개관했다.
"배우를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포기하는 이들을 위해 처음 문을 열었죠. 그렇게 3년을 하면서 1억 원을 까먹었어요. (웃음) 그래도 계속 신경이 쓰이는 겁니다.
결국 다시 열었죠. 지금은 추천 받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연극인 6명이 함께 하고 있어요. 내일모레면 여든 살인데 더 늦기 전에 보람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 그는 최근 몇년 새 스크린 속에서 작지만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아 영화 관객들과도 꾸준히 호흡하고 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전국노래자랑''이 그 최신작이다.
선생은 외국으로 떠나야 하는 손녀와 함께 사는 할아버지로 분해 영화에 색다른 무게감을 불어넣었다.
"전국노래자랑은 영화 ''혈의 누'' ''후궁''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과의 인연으로 하게 됐어요. 나와 어떻게 딜을 해야 할지 아는 이죠. (웃음) 이 영화를 찍는 동안 내 역이 다른 사람과 많이 부딪히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연극하는 기분으로 편하게 찍었죠."
오현경은 처음 그 배역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여겼단다. 눈매가 날카롭고 턱선이 뾰족한 외모가 시골의 순한 노인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결국 대사 뉘앙스로 승부를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극중 할아버지는 딸이 개인 사정으로 맡기고 간 손녀와 티격태격하면서 가까워지는데, 뒤에 딸과 손녀를 이민 보내면서 불평 섞인 말을 합니다. ''캐나다면 미국보다 가깝제''라고요. 코가 시큰한 대사인데 어느 선에서 그쳐야 할지 고민했죠. 눈물을 짜내려니 내가 닭살 돋을 것 같고. 저 밑에 있는 감정을 끌어내서 연기를 하려고 했죠."
선생이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연극부를 만들면서부터다.
어릴 때부터 동네 형들이 하는 아마추어 연극 보는 것을 좋아했고 중학교 모자 쓰고도 극단을 자주 찾았던 그다.
"고등학교를 의미있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연극에 미쳐서 지냈죠. 대학도 연세대를 간 것이 당시 오하섭 교수께서 연극을 지도하던 몇 안되는 학교라는 이유에서죠. 할아버지가 법대를 나오시고, 아버지가 은행 상무를 지내셨는데, 할아버지는 ''왜 광대가 됐냐''고 한탄하시다 돌아가셨어요."
오현경은 대학을 졸업한 뒤 TV시대가 열리면서 1세대 배우로 활약하던 중 나이 예순을 앞두고 식도암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당시 50여 일 동안 링거만 맞았어요. 하루에 모르핀을 4번도 맞았어요. 다들 죽는 걸로 생각했죠. 그렇게 1년 반 동안 요양을 했는데 이후에도 목디스크, 위암, 담낭 수술을 했어요. ''취미 삼아 수술을 하냐''고 누가 그러더라고요. 제 성격 탓에 병을 달고 다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요. 지금도 남에게 폐를 안 끼치려고 완벽하려는 성격이거든요. 적당히 하는 건 잘 몰라요."
그에게 배우는 어떤 의미일까.
"연극배우, 영화배우 그런 구분은 아무 소용 없다고 봐요. 배우는 다 배우죠. 연기파라는 말도 그래요. 배우가 다 연기파 아닌가요? 영화든 연극이든 작품 안에서 감독, 상대 배우와 캐릭터를 논의하고 방향이 정해지면 그 감정을 관객이 느끼게끔 하는 게 배우죠. 배우가 진짜 콧물 눈물 흘리면 지저분할 뿐입니다. 관객이 느끼게끔 하는 것이 연기죠. 그게 어려운 겁니다."
오현경은 광고를 찍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스로를 상품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신조 때문이라고 선생은 전했다.
"TV에서 한참 인기를 얻을 때였는데 당시 아파트 3채 값을 가져와서 광고를 찍자는 것도 고사한 적이 있죠. 처음 송백당 문을 닫을 때 그 돈 생각이 참 많이 나더라고요. (웃음) 하지만 그때뿐이었죠. 최근에도 광고가 들어왔는데 안 했어요. 그 신조만큼은 지키고 싶으니까요." 선생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자신의 노하우를 몇몇 후배들에게라도 전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직 힘이 남아 있는 동안 무대에서 후배들에게 발성을 보여 주고 싶어요.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싶은 마음이죠. 나만 알고 죽으면 의미 없으니까요. 나중에 나에게 배웠다는 말 안해도 좋아요. 자신의 기술로 그것을 축적하면서 자신만의 연기를 창조할 수 있으면 그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