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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에 얽힌 ''침략과 배신의 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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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쿠니 신사에 얽힌 ''침략과 배신의 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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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상욱의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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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국회는 29일 일본 각료 및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아베 총리의 망언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갖는 문제점이 무언지를 살피자면 신도와 신사의 역사 전반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 일본의 종교적 성향과 군국주의

    일본의 신도(神道)는 사람 사는 일과 온갖 자연현상을 관장하는 신이 곳곳에 널려 있다고 믿는 일본의 고유 종교이다. 신사에 모시는 각종 신이 800만에 이른다는 추산도 있다. 이런 신들을 모신다고 하는 곳이 신사이다.

    신도를 따르는 일본인들은 태어나서부터 일생동안 신사에 가 참배를 하고 가정에도 신단을 두어 일상을 함께 한다. 우리나라의 성황당이 국가적 종교로 발전했다면 이런 모습일까? 종교를 창시한 교조도 없고 경전도 없다. 그러나 일본인의 삶 밑바닥에 강력한 힘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절대 간과해선 안 된다.

    야스쿠니 신사는 근대 일본이 치른 내란과 전쟁에서 숨진 전몰자들을 신으로 승격시키고 그 명부를 보관한 신사(묘지가 아님)이다. 246만 명의 신령이 된 인간을 제사지내는 곳이다. 여기에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 14명이 포함되어 있어 국제사회는 이를 경계하며 지켜봐왔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은 A급 전범에 대한 참배가 아니다. 전범에 대한 참배와 추악한 과거에 대한 미화작업이 가져 올 미래의 불행이 무엇일지에 집중해야 한다.

    종교와 관련한 일본 역사의 특징 중 하나는 개방과 배척이다. 외국에서 다른 종교가 발전해 일본으로 수입되면 일본인들은 쉽게 문을 열어 맞아주고 자기들 전통신앙과 섞어버린다. 그러다 융합작업이 끝나면 밖에서 들어 온 종교를 솎아내 묻어버린다. 에도 시대에 유교는 유교신도론에 의해 공격을 받았고, 불교는 ''''신불(神佛)습합''''이라는 과정을 통해 토사구팽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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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의 예를 살펴보자. 일본에 불교가 들어와 절이 세워지자 일본은 절을 지키는 신사를 세우고, 신도에 모신 신들에게 보살 칭호까지 붙이며 불교에 신도를 접목시켰다. 그러다 민족주의를 내세워 신도가 불교를 누르기 시작했고, 메이지 유신 때 신도와 불교를 철저히 분리시킨 뒤 불교에 대한 파괴공작이 벌어졌다.

    신도가 일본의 군국주의와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파시즘 체제로 바뀌면서 일본의 불교도 군국주의에 순응해 타락의 길을 걸었다. 침략을 일삼는 제국주의 군대를 선전하며 전투 의지를 북돋우는 역할을 맡았고 일왕(천황) 숭배를 부르짖었던 것.

    "…집착을 버려라, 생과 사가 다르지 않다. 네가 죽이는 것과 저 사람이 죽는 것은 다 업에 의한 것이니 슬퍼할 필요가 없다. 전사하면 내세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식의 설득에 의해 병사들은 자살특공대가 되고 침략지에서 학살을 저지르는 자기 자신을 변명했다.

    신도와 불교가 이렇게 사상적.종교적으로 뒤를 받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뒤에도 전범들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자기들이 정당했고 구원 받아 극락왕생할 것이라고 버텼다. 또 그 뒤를 잇는 정치지도자들이 서슴없이 망언망동을 일삼는 것이고 일본 국민들이 이를 옹호하는 우경화의 길로 기울어 가는 것이다.

    일본은 기독교도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통로로 이용하고 임진왜란에 동원한 뒤 엄청난 학살과 박해로 제거해버렸다. 대한제국에 접근해 을사보호(?)조약, 내선일체라는 논리를 내세워 한반도를 수탈했고, 모두가 평등한 황국신민이라며 징용.징병.학살로 우리 민족을 짓밟은 것도 마찬가지로 겉과 속이 다른 토사구팽의 저팬 스타일이라 하겠다.

    ◇ 일본 신사가 모시는 神은 일본 그 자체

    그 핵심에 야스쿠니 신사가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신도의 ''''신''''(神)이라는 개념은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신과 다르다. 바람의 신, 숲의 신, 음식의 신, 조상 신…. 즉 일본국 및 일본인들과 관련된 모든 것이 신이 된다. 신도가 섬기는 신은 현실을 넘어 선 절대적인 신, 즉 인류 모두에 대한 보편성이나 영원성에 기초한 신이 아니다. 일본이라는 나라, 일본인이라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되는 신이며 일본국과 일본 왕족, 귀족의 현실과 이익 자체가 신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일본의 신사는 천황과 황족을 신으로 떠받들던 곳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 귀족, 장군들이 추가 되었다. 그 이후 일반 국민이 국가에 의해 신으로 대접받는 유일한 통로가 생겼는데 그것은 일본 왕을 위해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다.

    어떤 인생을 살았건 문제되지 않는다. 일본 왕을 위해 죽으면 된다. 그런 이유로 야스쿠니 신사에서 떠받드는 신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조선진압, 시베리아만주 정벌,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을 치르며 숨진 사람들로 계속 대상자가 늘어왔다. 그렇게 246만 명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이렇게 국가적 전란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초혼의식을 통해 신으로 승격시켜 대접하며 일본 군국주의와 천황제, 국가신도체제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맡았고 지금도 그 역할은 계속되고 있다.

    일본의 국립군사박물관이 그 안에 있다. 일본 최대의 도검진열장이자 전사자 유품, 전리품, 각종 병기를 전시한 군사적 계몽시설이다. 여기에는 자살 병기들을 진열한 코너가 따로 있고, 6천 명의 자살영웅들을 기리는 설명문이 붙어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육군 장교클럽 본부도 있었다. 애국부인회 본부도 있었고, 일본제국 재향군인회 군인회관도 있었다.

    일본이 전쟁을 반대하는 국민여론을 잠재우고 국가총동원령을 밀어 붙이려 계엄령을 선포했을 때 계엄사령부로 쓰였다. 일본 내 호국영령을 제사 지내는 호국신사는 내무성 소관이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해군성과 육군성 소관이다.

    야스쿠니 신사에 제신 처리된 전몰자는 246만 명. 그 유족과 자손들을 합치면 얼마나 될까? 엄청난 규모가 된다. 또한 신도는 일본인 모두의 삶이다. 정치인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일본의 우경화를 더욱 부추긴다. 결국 일본인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린 신도와 신사는 새로운 침략적 이데올로기의 발흥을 돕게 된다. 이것이 야스쿠니 신사가 갖는 21세기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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