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핑크스 카이로 시내
"5000년의 역사와 나일강이 흐르는 카이로에 도착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아랍에미레이트의 두바이 국제공항까지 10시간 그리고 또 다시 6시간을 날아 도착한 이집트의 첫 풍경은 그동안 지겹도록 들었던 ''5000년 숨결을 간직한 도시''도 아니었고 ''피라미드와 나일강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도 아니었다.
마치 이집트 내의 모든 건물들을 카이로 국제공항 주변에 배치시켜 놓은 듯한 그 모습은 나이 지긋한 관광객들에게는 ''70년대의 한국''의 모습이요 내게는 ''사람냄새 꽤나 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정도였다.
인천국제공항의 널찍함과는 달리 ''여백의 미''를 찾을 수 없던 인구밀도 90%의 카이로 국제공항을 떠나 관광명소가 운집해 있는 구 카이로로 가는 길은 마치 ''이집트''라는 영화의 모든 장면장면이 완전히 다른 풍경으로 채워진 듯 다채로운 모습이었다.
흙빛 건물 위에 그대로 드러난 철근 카이로 국제공항에서 구 카이로로 향하는 길은 내가 예상한대로 ''사람냄새가 가장 많이 나는'' 지역 가운데 한 곳 이다. 도로 양편에는 전 세계 관광객들을 이 곳으로 불러모으는 이슬람 사원과 형형색색의 무덤들 그리고 그 곳에서 일상을 꾸려나가는 서민들의 집이 공존하고 있다.
"도로 옆에 아파트들 보이시죠. 뭐가 보입니까"(가이드) "철근이요"
''여기는 이집트''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힌 내가 이 곳 아파트에는 이집트를 상징하는 피라미드 모형이라도 그려진게 아닐까 생각하던 찰나에 관찰력 뛰어난 몇몇 관광객들은 현지가이드의 예상을 깨고 정답을 맞췄다.
카이로 시내에 위치한 건물들에서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대부분의 건물들이 말 그대로 벌거벗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멀리서 보면 건물은 많지만 그 안에 과연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도시전체가 ''공사중''인 모습이다.
페인트칠을 하지 않은 것은 구 카이로에 위치한 서민들의 집이나 카이로 서북부의 부촌 헬리오펠리스의 고층 아파트나 다를 바가 없다.
건물사진
게다가 구 카이로에 진입하면 페인트칠도 하지 않은 건물 꼭대기에 철근까지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붉은 흙빛이 나는 건물 위에 마치 온 동네가 약속이나 한 듯 건물 꼭대기에 철근을 꽂아둔 형상이다.
관찰력이 더 뛰어난 관광객의 질문을 듣고 보니 1층짜리부터 2층, 3층짜리 건물에 이르기까지 건물 꼭대기에는 철근이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지역에 서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까닭도 있겠지만 이같은 건물의 외관은 카이로의 기후환경과 가족제도까지 설명해 주는 ''키워드''이다.
연강수량이 30mm도 채 되지 않는 카이로의 기후 특성상 이 곳 건물은 1년 내내 철근을 노출시켜도 문제 될 것이 없다. 비가 오지 않으니 철근이 녹슬 염려도 없고 벽을 보호하기 위해 페인트를 칠할 필요도 없는 것.
이 ''철근''은 기후환경 외에도 이집트의 가족문화도 설명해 주는 키워드다.
이집트에서는 3대가 함께 생활하는 것이 흔한 일이기 때문에 한 가족이 같은 건물의 여러층을 구입하는 일이 다반사다.
때문에 아들이 결혼을 하면 본래 살던 건물 위에 집을 한 층씩 올리게 되는 것이다. 즉 1층짜리 건물 위에 철근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면 이는 이 집의 아들이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의미이거나 결혼하게 될 아들을 위해 미리 준비를 해 두고 있다는 의미라는 것.
그러나 이집트에서 정작 그 ''아들''들의 결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카이로 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