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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공관 ''백인제家'' 논란…이완용 외조카가 건축



사회 일반

    서울시장 공관 ''백인제家'' 논란…이완용 외조카가 건축

    민족주의자 최선익-백병원 백인제 박사 등이 사들여 가택 보존…역사적 유서 깊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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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 3월부터 서울시장의 새 공관이 될 종로구 가회동의 개량 한옥인 ''백인제 가옥''이 논란이다. ''을사오적''(乙巳五賊) 이완용의 외조카이자 자신도 친일행각을 일삼은 한상룡이 지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 현대의학의 선구자인 백인제 박사 일가가 60여년 터를 가꿔왔기에 건립자의 친일행각만으로 시장 공관의 적정성 여부를 따져선 안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백인제 가옥''은 1977년 서울시 민속자료 22호로 지정된 이후, 2009년 ''문화재 지정명칭 변경''을 위한 사료조사가 이뤄질 때까지 정확한 건축연도와 연혁이 잘못 알려져 왔다.

    1976년 12월 실시된 ''도성내 민속경관지역 조사연구''에 "한상룡이 1874년 건축해 최선익씨에게, 다시 백인제씨에게 소유가 이전됐다"고 기록된 점에 근거해 1874년에 건축된 것으로 전해져 왔다.

    그러나 지난 2008년 서울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완용의 외조카 한상룡이 1906년 가회동으로 이주한 이후 몇 년에 걸쳐 주변의 작은 가옥 12채를 사들여 1913년 6월 ''경성부 가회정(町) 93번지(현 종로구 가회동 93-1번지)에 새 가옥을 준공했다.

    한상룡은 1941년 회갑을 기념해 발간한 ''한상룡을 말한다''에서 "대지 907평에 건평은 110평 남짓이었으며, 높은 지대에 위치해 경성 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이곳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고 적고 있다.

    한상룡은 새 가옥을 준공한 이후 넉달 뒤인 10월 17일 ''일본 천황''이 신에게 곡식을 바치는 날인 ''간나메사이(神嘗祭)''를 맞아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 초대 조선총독 등 일제 관리들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그는 방문객들로부터 휘호를 받아 그것을 가보로 간직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어 1917년 5월 27일에도 2대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등도 초대해 연회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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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룡은 일제가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설립한 동양척식주식회사 이사와 고문, 중추원 참의 등을 지냈으며, 일제 말기에는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연맹 이사 평의원으로 친일행위를 주도해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훈장을 받는 등 수차례 훈장과 포장을 받은 인물이다.

    한상룡이 1928년까지 15년간 거주했던 이 가옥은 그가 당시 전무취체(專務取締)로 있던 한성은행의 경영악화에 대한 총독부의 압력으로 한성은행에 소유권이 넘어갔다.

    이 가옥은 이후 1935년 한성은행에서 최선익(崔善益)에게 넘어갔는데 이같은 내용이 폐쇄토지 대장에 모두 기록돼 있다.

    최선익은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벽초 홍명희 (碧初 洪命憙)등과 함께 일제 강점기 좌우합작 항일운동 단체인 신간회(新幹會)의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그는 1933년 몽양 여운형(夢陽 呂運亨) 선생이 조선중앙일보사를 창간해 사장에 취임할 당시 출자자로서 편집인 겸 발행인, 부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친일파가 지어 조선 총독들과 연회를 즐긴 집에 민족주의자가 거주한 셈이다.

    백인제 가옥은 이후 1944년 인제대 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 박사가 사들이고, 그가 6.25전쟁중 납북된 이후에도 후손들의 소유로 관리돼 오다가 지난 2009년 12월 서울시가 ''북촌문화센터''로 활용하기 위해 150억원에 사들여 개보수 공사를 하다가 원형을 보존하자는 문화재 전문가들의 권유로 지난 2월 중단했다.

    서울시는 지난 2009년 2월 ''문화재 지정명칭 변경고시''를 통해 ''가회동 백인제가''를 ''가회동 백인제 가옥''으로 바꿨다.

    시는 백인제 가옥을 새 시장 공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공관조성추진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문화재 현상변경 심사와 리모델링 공사를 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백인제 가옥의 연혁을 연구해온 서울시 관계자는 "일제 강점기 친일 흔적을 문제삼는다면 백인제 가옥 뿐 아니라 한국은행 본관, 서울역, 서울시청도 사용해선 안될 것"이라며 "신간회 창립 멤버인 최선익, 한국 현대의학의 선구자인 백인제 박사가 1935년 이후 터를 닦아온 점을 무시한채 건립자의 친일행각만 문제삼는 것은 편협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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