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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공옥진 유일한 후계자 "장애인 비하춤이라는 말 때문에 더 아파했다"

故공옥진 유일한 후계자 "장애인 비하춤이라는 말 때문에 더 아파했다"

9일 별세한 무용가 고(故) 공옥진씨의 유일한 전수자이자 후계자인 한현선씨(영광문화원 사무국장)가 공옥진의 춤이 병신춤, 곱사춤이라며 장애인을 비하한다는 논란 때문에 더 아파했다고 회상했다.

한현선 씨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장애인 비하라고 그 표현이 잘못된 거지 선생님은 그걸 비하하기 위해서 춤을 춘 게 아니다"며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은 ''심청전''의 뒷 대목에 심봉사가 항상 맹인잔치에 딸을 만나러 가는 장면이 있다. 여러 봉사들이 등장하는데 옛날에는 의학이 발달되지 않아 장애인들이 많았으니까 거기서 심봉사가 눈은 안 보이지만, 여러 봉사들과 함께 가는 것을 선생님은 무용도 되고 창도 되고 연극도 되니까 세 개가 합쳐져서 공옥진의 ''1인 창무극''이 나온 거다"라고 설명했다.

한현선씨는 "(장애인 비하)그런 기사들이 나면 상당히 선생님이 몹시 언짢아했다. ''그런 말들을 안 썼으면 좋겠다''라고 왜들 그러는지. 그런 기사들이 이렇게 쓰이고 그러면 선생님이 그런 것들 때문에 더 막 아파하시고 그러셨다"라며 고인의 뜻을 헤아렸다.

또, "한 부분에 그게 재미있고 풍자와 해학이 넘치니까 병신춤을 다른 선생님들은 소리만 쭉 해서 완창을 하는데 선생님은 몸짓과 느껴지는 걸 다 표현해내니까 사람들이 병신춤의 일인자, 이렇게 표현을 했는데, 언론에서. 굉장히 많이 언짢아하고 그래서 언론을 거부하고 방송도 출연 안 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30년간 공옥진 여사에게 춤을 배운 한현선씨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는데, 고인이 교통사고에다가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제자들이 떠난 안타까운 마음과 아픈 몸으로도 "무대에서 쓰러져 죽겠다"던 공옥진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전했다.

◈''김현정의 뉴스쇼'' 방송 전문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공옥진 1인 창무극 전수자 한현선 씨

별이 사라졌습니다, 향년 81살. 1인 창무극의 대가, 고 공옥진 여사가 어제 새벽 별세했습니다. 전라남도 무형문화재이자 판소리 명창이기도 하고요. 민속무용가이기도 한데 이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어제 그리고 지금까지도 뜨거운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공옥진 여사의 전수자, 후계자가 딱 한 명뿐이라는 거 알고 계셨습니까? 저는 좀 놀라운데요.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 그 한 분을 만나보죠. 영광문화원 한현선 사무국장님입니다. 국장님, 나와 계세요?

◆ 한현선>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지금도 빈소에 계신다고요?

◆ 한현선> 네.

◇ 김현정> 공옥진 여사를 마지막으로 본 건 언제셨습니까?

◆ 한현선> 2주 전이에요.

◇ 김현정> 2주 전에. 마지막 모습 기억이 나세요? 어떤 모습이셨어요?

◆ 한현선> 평온하셨고 특별히 이렇게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맑아 보이셨어요.

◇ 김현정> 특별히 후계자에게, 제자에게 당부하셨던 말씀은 없고요?

◆ 한현선> 글쎄요, 늘 항상 당부 말씀은 오래 전부터 선생님이 지금 살고 계셨던 예술연수원에 항상 자기 행적을 고스란히 그대로 남겨서 후대에 이렇게 알려졌으면 좋겠고 공옥진 삶 자체가 궁금하거나 이렇게 관심 있는 분들은 늘 언제나 찾아와서 볼 수 있고 공옥진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해 달라는 말씀을 늘 당부하셨어요.

◇ 김현정> 한현선 국장이 공옥진 여사의 유일한 전수자, 제자라고 들었습니다. 언제부터 함께하셨던 거예요?

◆ 한현선>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 공연을 보고 무용을 배우고 싶어서 선생님을 찾아갔고요.

◇ 김현정> 지금은 그러면 실례지만 어떻게 되시나요, 나이가?

◆ 한현선> 지금 마흔아홉이요. 만 48세.

◇ 김현정> 마흔아홉. 그럼 한 30년 되셨다는 이야기예요. 더 됐나요, 30년도? 오래 되셨네요, 정말.

◆ 한현선> 네, 30년 더 됐죠.

◇ 김현정> 그러네요. 그런데 처음에는 한 국장님처럼 공옥진 여사를 따르던 제자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왜 다 떠나고 한 명만 남은 겁니까?

◆ 한현선> 저 공부할 때는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시골이다 보니까 생활고로 어려운 아이들이 그걸 좋아해서 배우러 온 아이들도 많았고요. 제가 중, 고등학교 다닐 때는 대학교에 다니는 언니들이 많이 와서 춤도 배우고 판소리도 배우고 방학 동안에 단체로 와서 이렇게 공부하고 가시고 그랬거든요.

◇ 김현정> 그때까지는 그랬는데.

◆ 한현선> 그리고 선생님이 아프시기 전까지는 제자들이 좀 남아 있었죠. 그런데 선생님이 교통사고에다가 뇌졸중에다가 이렇게 아프시니까 공부하는 학생들이 점차적으로 병원에 입원하시고 이러니까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또 직장을 잡아서 직장에 취직하니까 공부하기가 좀 어렵기도 하고 이랬죠.

◇ 김현정> 사실은 춤을 가르쳐줄 분이 입원해 있고 편찮으니까 제자들이 하나, 둘 떠나는 게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웠을 것 같은데. 그런 와중에도 한 선생님은 어떻게 끝까지 곁을 지키게 되셨어요?

◆ 한현선> 저는 선생님 그렇게 편찮으실 때 선생님 문하에서 공부를 하다가 전남대학교 국악과에 재학을 하게 됐죠. 그래서 그 기간 동안에는 제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저는 그냥 계속 그걸 제가 전공을 했기 때문에 맥을 이어갈 수가 있었죠.

◇ 김현정> 그렇게 된 거군요. 참 그나마 다행입니다, 한 분이라도 남아 있다는 게. 1998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다음부터 긴 투병 생활이 시작이 됐는데 2004년에 공연 마치고 나오다가 두번째 또 쓰러지셨어요, 공옥진 여사. 그러면서 왼쪽 몸이 마비되는. 그 순간을 옆에서 쭉 지켜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프셨을 것 같아요.

◆ 한현선> 그 공연을 하시고 그때 미국 가고. 원불교에서 초청해서 미국에서 공연을 하시고 금강산 공연을 갔다 오셔서 좀 무리를 연이어서 아프신데도 불구하고 연이어서 공연을 "공옥진은 죽어도 무대에서 쓰러져 죽겠다."

◇ 김현정> 죽어도 무대에서 죽겠다.

◆ 한현선> 네, 그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안 된다고 저희들이 막무가내로 이렇게 안 된다고 그러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공옥진은 죽어도 무대에서 죽겠다''''라는 말을 늘 하셨어요. 그래서 공연하고 무리하셔서 다시 입원하게 됐죠.

◇ 김현정> 무대에서, 나는 죽어도 무대다. 천상 예술가입니다. 우리가 지금 1인 창무극, 이렇게 계속 얘기를 하고 있는데. 사실 일각에서는 이런 말이 방송으로는 적합하지는 않습니다만, 시중에서 그대로 들리는 말로는 병신춤, 곱사춤 이렇게 부르거든요. 그래서 이게 장애인 비하춤이 아니냐, 이런 논란도 있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한현선> 그런 기사들이 나면 상당히 선생님이 몹시 언짢아하셨고요. ''''그런 말들을 안 썼으면 좋겠다''''라고 왜들 그러는지. 그래서 한동안은 방송을 선생님이 편찮으신데도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은 움직이시고 이랬거든요. 아무렇지도 않은, 언제 아팠느냐는 이런 식으로 하는데 그런 기사들이 이렇게 쓰이고 그러면 선생님이 그런 것들 때문에 더 막 아파하시고 그러셨어요.

◇ 김현정> 그럼 그게 장애인 비하라는 것에 대해서는.

◆ 한현선> 선생님께서는 그 장애인 비하라고 그 표현이 잘못된 거지 선생님은 그걸 비하하기 위해서 춤을 춘 게 아니고. 심청전으로 선생님이 심청가로 이렇게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으셨잖아요. 문화재 지정을 받으셨는데 심청전의 뒷 대목에 심봉사가 항상 맹인잔치에 딸을 만나러 가는 장면이 있어요.

그러면 여러 봉사들이 등장을 해요. 그러니까 옛날에는 의학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많았을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거기서 심봉사가 눈은 안 보이지만, 여러 봉사들과 함께 가는 것을 선생님은 무용도 되고 창도 되고 연극도 되니까 세 개가 합쳐져서 공옥진의 1인 창무극이 다행히 나온 거죠.

◇ 김현정> 그런데 그 중에 한 부분만 가지고.

◆ 한현선> 한 부분에 그게 재미있고 풍자와 해학이 넘치니까 병신춤을 다른 선생님들은 소리만 쭉 해서 완창을 하는데 선생님은 몸짓과 느껴지는 걸 다 표현해내니까 사람들이 병신춤의 일인자, 이렇게 표현을 했는데, 언론에서.

◇ 김현정> 그렇게만 부각되는 건 좀 서운하다는 말씀을 평소에 하셨던 거군요. 알겠습니다.

◆ 한현선> 굉장히 많이 언짢아하시고 그래서 언론을 거부하고 방송도 출연 안 하시려고 늘 그렇게 하시고 그러셨어요.

◇ 김현정> 그런 사연까지 있었어요. 말년에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냈다는 이야기까지, 비참한 말년 생활이 전해지면서 우리나라 예술가, 이렇게 대접해도 되는가 이런 얘기도 나오는데요. 30년 곁에서 춤과 연극, 판소리 지켜온 후계자로서 이대로 그만 두시면 안 됩니다. 끝까지 잘 지켜가 주셔야 돼요.

[BestNocut_R]◆ 한현선> 네, 알겠습니다.

◇ 김현정> 고인께 깊은 애도를 표하면서 오늘 인사를 나누죠. 슬픈 가운데 말씀, 오늘 인터뷰 응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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