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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북한

    국민이 당부한다, 정부는 당황하지말고 침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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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상욱의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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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 조문외교란?

    국가원수 급 정치가가 사망했을 때 그 장례식에 참석한 각국 정부 대표들이 벌이는 외교활동이다. 국가 지도자의 장례에는 그 나라의 국력과 권력서열, 권력 내부의 갈등, 정국의 향방 등을 드러낼 수밖에 없어 이웃 국가들에게는 그 나라를 탐지할 좋은 기회가 된다. 특히 폐쇄적이고 장막에 가려져 있던 공산국가나 적국의 허실을 들여다 볼 절호의 기회가 된다. 또는 얽혔던 관계를 푸는 기회도 된다.

    외교라는 것 자체가 윤리와 도덕적 가치보다는 겉으로는 점잔을 빼도 고도의 실리와 계산이 앞서는 치열한 전쟁터이고 조문 외교도 예외는 아니다.

    조문외교가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삼국지에서 강동의 손권과 형주의 유표가 철천지원수로 싸우다 유표가 사망하자 손권이 아버지의 원수가 죽었음에도 조문사절단을 보내 적국의 허실을 살피는 장면이 등장한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걸로 봐서는 인류의 시작부터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 20세기 주요 조문외교 열전

    옐친 러시아 대통령 사망 시 참여 정부는 한명숙 국무총리를 단장으로 조문단 구성해 즉시 출국시킨다. 동북아시아 3국 중 제 시간에 도착한 나라는 한국 뿐, 중국과 일본은 시간에 맞춰 조문하지 못했다. 러시아의 감사 만찬에는 한국만 초대되고 중국, 일본은 빠지는 쾌거를 거둠.

    조문외교의 대표적 사례는 인도 - 파키스탄. 1983년 10월 인도 펀잡주에서 시크교도들이 분리독립 시위를 격하게 벌였고 인도는 배후에서 파키스탄이 조종한다며 유혈진압에 나서 576명이 숨지고 1,000여명이 부상당했다. 시크교도들의 최고 성지인 ''''골든템플''''을 초토화시킨 이 작전의 이름은 ''''블루스타''''.

    한편 거꾸로 파키스탄 신드 주에서도 자치독립 투쟁이 벌어지자 파키스탄은 인도가 배후조종한다며 비난하고 나서며 두 나라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1984년 인도 인디라 간디 수상이 시크교도 경비원에게 암살당하자 파키스탄은 지아 대통령이 직접 장례식장으로 갔고 파키스탄에 3일간 애도기간을 선포하며 갈등 해소에 나섰다.

    공산권과 자유진영 사이에 오간 조문외교들도 있다. 중국 마오쩌둥과 대만 장제스는 국공내전까지 치르며 권력을 다투고 쫓아내고 쫓겨난 원수지간. 하지만 1975년 대만 장제스 총통이 사망했을 때 중국은 조의를 표했다. 1976년엔 중국의 마오쩌둥 주석이 사망했고 대만도 조의를 표했다. 마오쩌둥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은 포드 대통령, 닉슨 전 대통령이 조문 사절로 급히 북경으로 향했다. 개방을 시작한 중국의 진로를 유지시키고 권력의 향방을 감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 것이다.

    1989년 일본 히로히토 왕이 사망했을 때 우리는 김영훈 국무총리가 조문사절로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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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문외교에 흔들리는 나라들

    조문외교에도 격이 있다. ▲사절단이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는 조문 ▲전화나 전문으로 조의를 표하는 조전 ▲조의를 표하는 성명 발표... 이런 식으로 격이 낮아진다. 각각의 단계에서도 해당 국가 빈소로 직접 찾아가느냐, 주재 대사관 분향소로 가느냐, 국가 원수가 가느냐, 각료 급에서 가느냐, 전화냐 전문이냐에 따라 격이 달라진다.

    일본은 정부 대표 자격으로는 좀처럼 조문을 하지 않는다. 대신 정당 대표를 조문에 앞세운다. 교활한 양다리 외교를 펼 때 주로 쓰는 전략이다. 정치적 문제로 떠밀고 국가와 정부는 뒤로 빠진다. 김일성 주석 사망 때도 3당 공동 조문단을 구성해 보냈다.

    미국은 조문보다는 전화나 성명으로 대신한다. 세계 최강국의 위신을 챙기며 조문사절이 외국에 가 조문하는 것을 피하는 편이다. 대신 국내 정치용으로 국민 환심을 사기 위해선 열심히 조문을 다니는 행태를 보인다.

    1994년 7월, 김영삼 - 김일성 남북정상회담이 막 이뤄지기 직전에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 북한은 돈이 없어 손을 내밀고, 김영삼 정부는 통 크게 거래를 하려 했고, 미국도 북핵 협상을 본격화하려했기 때문에 한반도 정세를 크게 바꿀 기회였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한반도 정세가 불투명해지자 보수냉전 세력이 불안해하며 조문반대를 강력하게 밀고 나왔다. 대학 학생운동권 중 민족해방파 계열에서는 분향소 설치를 강행했고, 민중민주 계열은 주사파의 입장이라며 반대했다.

    결국 운동권 내 주사파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면서 공안수사가 시작되더니 주사파는 학생운동권 뿐만 아니라 교수, 야당, 종교계, 언론계에도 있다며 진보진영을 싸잡아 주사파로 몰아가는 매카시 돌풍이 불었다. 유명한 서강대 박홍 총장의 주사파 시리즈가 시작된 것이 이 때이다.

    그렇게 따지면 김일성 주석과 정상회담을 추진한 청와대와 민자당 배후에 주사파가 있다고 해야 할 판. 어쨌거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면 북한이 흔들려야 하는데 남한이 흔들리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김영삼 정부는 진보진영 조문 움직임을 비판하며 격을 낮춰 성명으로 대신했다. 조문외교로 남북한 화해의 물꼬를 트는 것보다 국내에서의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는 게 정권에 유익하다 판단한 것이다.

    미국도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클린턴 민주당 정부의 조의 성명, 갈루치 차관보의 제네바 북한 대사관 분향소 조문에 대해 공화당이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마오쩌둥 사망 때 조문사절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포드, 닉슨 대통령이 모두 공화당 소속임이 지적되면서 되려 망신만 당하고 끝났다. <뉴욕타임즈>는 사설을 통해 김일성 사망에 조의를 표한 클린턴 정부가 잘못이라고 주장한 미 공화당 상원의원을 비판했다. 사설 제목은 ''''어이, 이 양반아. 그런 게 외교인거야''''

    ◈ 북한은 조문외교를 어찌 해왔나?

    문익환 목사 서거 때 김일성 주석 명의로 조전,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 고위급 조문단 파견(김기남 당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실세급 파견),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 김정일 위원장 명의의 조전,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사망 때 조문단 파견...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조문 외교로 일화를 남긴 것이 있다. 1980년대 중국이 개혁과 개방 노선을 택하며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북한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서 일탈한 수정주의로 중국의 개방을 평가절하 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1983년 중국 방문 이후 2000년까지 17년 간 중국과 왕래하지 않았고 중국지도자들과 연하장만 주고받았다 한다. 물론 1997년 덩샤오핑이 사망했을 때 평양 중국대사관으로 조문을 가지 않았다. 그 후 개혁과 개방 이후에 중국이 무너지지 않고 공산당 지도체제를 유지하며 경제발전을 이루자 생각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BestNocut_R]

    아무튼 조문사절을 받지 않겠다니 과공비례라 우리도 큰 논란을 피했다. 김일성, 김정일 이란 지도자가 없는 공백상태에서 수백 명에 이를 외국 조문사절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실상을 간파당하기 싫고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훗날 권력투쟁을 염두에 두고 벌이는 상호견제일 수도 있다.

    이번 김정일 위원장 사망에서 우리는 북한이 어떤 나라인가에 대해서 공감대를 넓혔으면 한다. 국가 지도자가 사망한 걸 이틀 동안 누구도 모르게 덮고 수습을 해낼 만큼 철저한 전제주의 국가이고 국민이 통제되는 나라이다. 그리고 국가지도자 장례에 외국 조문사절을 일체 안 받겠다고 할 만큼 자신들의 처지에 따라 어떤 결정이든 내려버릴 수 있는 독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에 비하면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 아침에 국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유유히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떠나는 우리나라는 얼마나 허술한 나라인가. 총칼로만 나라를 지키는 시대가 아니다. 정보와 외교, 협상, 무역... 무엇이든 나라의 안위와 직결된다. 국가정보와 위기관리 시스템의 대대적인 점검과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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