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3}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이 너무나도 유사한 점이 많아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급기야 인터넷상에서는 ''의혹이 있다''는 식의 각종 ''說''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먼저 사망 원인이 같아 ''짜맞추기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조선중앙TV는 19일 "김정일 위원장이 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 겹쌓인 정신, 육체적 과로로 열차에서 서거했다"고 보도했다.
"중증급성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한 심장성 쇼크가 합병됐다"는 것이 북측의 설명이었다. 김일성 주석도 94년 7월 8일 묘향산 별장에서 갑자기 바닥으로 쓰러졌고 원인은 급성 심장발작으로 추정됐다.
사망 직전 행보도 비슷하다. 김정일 위원장은 현지 지도를 하러 야전 열차로 이동중이었고 김일성 주석은 사망일 밤에도 남북회담과 관련한 문건을 결재하는 등 업무중이었다. 묘향산 별장은 김 주석이 여름에 업무를 보는 곳이었다.
이에 따라 북측이 김일성, 김정일의 사망 원인도 같고 사망 직전 일을 했다는 모습을 강조하면서 ''백두 혈통''을 은연중 강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 것이다.
백두혈통이란 북한에서 세습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며 김정일 일가 중에서 그와 직첩 피를 나눈 사람을 백두위인이라고 칭한다. 백두위인은 김일성, 김정숙(김일성의 부인), 김정일, 김정은 뿐이다.
지난해 채 서른살이 안된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면서 북한이 강조한 것은 다름 아닌 김정은의 외모가 김일성 주석과 닮았다는 점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같은 주장이 설득력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꺾어지는 해''를 중시하는 북한이 김정일과 김정은의 나이를 조금씩 고쳐 김일성 주석과 각각 30살, 70살 차이가 나게 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 역시 ''백두 혈통''을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김일성, 김정일의 사망 시기를 둘러싼 국제 환경도 유사점이 적지 않다.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7월 당시는 첨예한 긴장관계를 보이던 북미관계가 급속히 해빙되는 시점이였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미 회담, 남북 정상회담 등을 추진 중이었고 이에 대해 북한 내부 강경세력의 불만이 적지 않다는 관측이 있었다.
지난해 3월에는 천안함, 11월에는 연평도 사건이 있었지만 2011년 12월은 경색됐던 남북, 북미가 중대 변화를 모색하던 시기였다.
우리 정부는 류우익 통일부장관의 취임을 계기로 ''유연성''을 고심하고 있었고 미국은 이번 주내에 상당한 식량 지원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북한도 이에 호응해 조만간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중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BestNocut_R]
94년 김일성 주석으로 사망으로 3자의 관계는 소원해졌고 2012년 12월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으로 역사는 반복될 가능성이 커졌다.
''조문단 사절'' 역시 다르지 않았다. 94년 김일성 주석 사망시에도 이번처럼 북한은 외국의 조문대표단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김 위원장의 시신이 묻히는 곳도 김 주석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으로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