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경제 일반

    `금융투자인 大賞 1호'' 박현주는 누구?

    • 2011-02-07 15:48
    • 0
    • 폰트사이즈

     

    7일 `제1회 금융투자인상 대상''을 받은 박현주(53)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빛과 그림자는 명확하게 갈린다.

    박 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성공한 `금융 창업가''로서 적립식펀드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국내 투자문화 수준을 한층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성공 스토리는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의 사례연구 주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묻지마 투자'' 열풍을 불러일으킨 인사이트펀드가 안정성보다는 성장성에 과도하게 치중한 탓에 한때 원금이 반토막까지 나면서 투자자들의 가슴에 치명적인 상처를 준 점은 박 회장의 수치스런 일면이다.

    1958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일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박 회장이 금융투자업에 뛰어든 것은 동양증권에 입사한 1986년이다.

    이후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으로 옮겨 33살이던 1991년 동원증권 중앙지점의 최연소 지점장이 됐다. 이 지점에서 전국 1위의 약정액을 올리면서 군계일학의 자리를 구축했다.

    당시 지점 훈이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이다''였다.

    이후 꿈을 현실로 만들고자 `바람개비''를 돌리듯 앞으로 저돌적으로 돌진했다.

    1997년 7월에는 구재상 동원증권 압구정지점장, 최현만 서초지점장 등 8명의 `박현주 사단''과 함께 미래에셋캐피탈을 세웠다.

    1998년 12월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하고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어 국내 최초 뮤추얼펀드인 `박현주 1호''를 출범시켰다.

    500억원 규모로 출범한 `박현주 1호''는 2시간30분 만에 판매가 마감됐고, 박 회장의 주식운용 능력에다 증시 활황까지 겹쳐 100%가 넘는 수익률을 올렸다.

    뮤추얼펀드가 성공하자 다른 자산운용사들도 유사 상품을 앞다퉈 내놓는 등 뮤추얼펀드 붐을 일으켰다.

    적립식펀드의 대중화를 이끌며 은행 예금 위주의 저축문화를 2004년 이후에는 적립식펀드 위주의 투자문화로 바꾸는 데도 기여했다.

    연이은 성공에 힘입어 2005년에는 생명보험사를 인수해 증권과 자산운용, 보험으로 짜인 투자전문그룹으로 도약했다.

    손대는 일마다 승승장구하던 박 회장은 2007년 말 최고 시험대에 서게 된다.

    그해 10월 말 시중 자금을 싹쓸이하며 펀드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던 `인사이트펀드''가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인사이트펀드''는 한 달 만에 4조원어치가 팔렸지만, 정확히 6개월 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수익률이 곤두박질 쳤다.

    `인사이트펀드''가 출범했을 무렵 중국 주가는 6,000선을 뚫었으나 미국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을 때는 2,000선 아래로 주저앉았다.

    박현주라는 브랜드를 믿고 묻지마 투자에 나섰던 개인들은 원금이 반토막나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했다.

    쪽박을 찬 투자자들의 가슴이 숯등걸이 됐음에도 미래에셋은 거액의 펀드 수수료를 챙기자 온갖 악평이 난무했다.

    `중국 몰빵 펀드'', `수수료 착취'' 등 온갖 원색적인 비난글이 인터넷 등에 쏟아졌고, 박 회장의 성공신화는 한낱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금은 많이 회복했다고 하지만 `미래에셋인사이트자 1(주혼)종류A''는 설정 이후 여전히 -12.93%의 수익률(지난 1일 기준)을 기록하고 있다.

    연속적인 대박 덕에 금융투자업계에서 전설적인 존재로 군림했던 박 회장에게 인사이트 펀드는 재앙이었던 셈이다.

    `인사이트펀드'' 악몽이 지속되자 박 회장은 공식석상에서 장기간 자취를 감췄고, 투자자들은 비겁하게 시장 밖에 숨지 말고 얼굴을 드러내 펀드 운용 실패에 사과하든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라고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이후 코스피가 2,000선을 바라보던 지난해 11월 `제1회 미래에셋 이머징마켓 전문가 포럼 2010'' 행사에 모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인사이트사태'' 이후 약 3년 만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국내 금융투자회사의 외국 진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실제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외국 5곳에 현지법인을 설립한 데 이어 최근에는 대만의 자산운용사 인수에 성공함으로써 여섯번째 국외 법인 설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

    펀드업계에서는 투자자의 신뢰를 떨어뜨린 `최악의 인물''이라는 세간의 비판에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과감한 도전정신과 개척정신만은 여전히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한국금융투자협회가 제1회 금융투자인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하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기업가정신을 통해 자본시장 종사자들에게 희망과 도전정신을 고양한 공적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창업 초기부터 사회적 책임에 신경 쓴 것도 후한 점수를 받았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 인재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까지 외국 교환장학생 1천717명, 국내 장학생 1천436명, 글로벌 투자전문가 장학생 98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