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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꽃'' 우당 이회영 78주기

우당장학회,독립유공자 후손 50명에 장학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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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지방에 한인 자치기구인 경학사(耕學社)를 조직하고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설립해 독립군 양성에 이바지하는 등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우당 이회영선생 순국 78주기 추모식''이 17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남창동 상동교회에서 우당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추모식은 손용호 북부보훈지청장,정운찬 전 국무총리,이종걸 국회의원,유족대표로 이종찬 국회의원과 광복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부 추모예배,2부 추모식 및 장학금 수여식으로 이어진다.

2부 추모식과 장학금 수여식은 기념사업회장의 추모사와 국가보훈처장(서울북부보훈지청장 대독),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추모사에 이어 윤장순 우당장학회 이사장의 장학금 수여,유족대표 인사 순으로 진행된다.

우당장학회(이사장 윤장순)에서는 매년 선생의 순국 주기에 맞춰 장학금을 지원해 왔으며,올해 순국 78주기를 맞아 애국지사 이지택(''90년 애족장)의 손자 등 독립유공자 후손 50명에게 총 5,0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할 계획이다.

이회영 선생(1867.3.17~1932.11.17)은 한말 이조판서를 지내던 이유승의 4남으로 일제에 국권이 침탈당하자 일신의 안락과 영화를 버리고 구국운동에 몸을 바친 독립운동가로 1910년 재산을 처분하고 6형제 40명의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1910년 봄 신민회 등 국내활동이 어려워지자 만주 유하현 삼원보 추가장(柳河縣 三源堡 鄒家莊)에 정착한 선생은 1912년에 이주 동포들을 위한 자치기구인 경학사(耕學社)를 조직하고,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신흥무관학교의 전신)를 설립해 독립군 양성에 기여했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상해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됐고, 1924년 4월 류자명․이을규․백정기 등과 함께 ''재중국무정부주의자연맹''을 조직,''정의공보''를 간행했다.

1928년 7월 남경에서 한․중․일․필리핀․대만․안남 등 각국 아나키스트들이 모인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결성식장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과 무정부주의운동''이라는 메시지를 보내 한국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해 줄 것을 호소했으며,1931년 정해리․김광주 등이 중심이 돼 조직한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과 관계를 맺고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32년 독립운동 세력 규합과 주만 일군사령관 암살 등을 목적으로 대련(大連)행 기선을 타고 만주로 가던 중 일경에 체포돼 모진 고문으로 옥중에서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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