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열풍이 수그러들 줄 모른다. 심리학과 타 분야의 결합은 상담, 연애, 소비자, 범죄, 색채 등 익숙한 카테고리에 그치지 않고 점점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심리학도 융합이 대세다. 심리학 적용이 눈에 띄는 새 분야를 살펴보고, 심리학 역풍도 함께 진단해본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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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어이트는 심리의 문제라는 인식이 가장 중요하다. 다이어트는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성취감이 가장 크다. 처음 목표치에 도달한 후 요요가 나타나는 것은 성취동기 약화가 원인이다. 목표치에 다가갈 때는 성취감이 있지만 유지할 때는 성취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최초 목표치에 도달하면 일정 밴드에서 몸무게를 유지하고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한다."
최근 다이어트 성공으로 화제가 된 ''시골의사'' 박경철 씨가 트위터(twitter.com/chondoc/)에 올린 다이어트 팁 중 한 부분이다.
이렇듯 다이어트는 심리적인 부분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 남들이 보기에 마른 여성이 ''난 뚱뚱해''라고 생각해 비만클리닉을 들락거려도 어쩔 수 없다. ''살 좀 빼''라는 주변의 압력에 절대 굴하지 않고 야식을 탐하는 ''통통녀''를 탓할 수도 없다. 비만의 기준은 본인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만이 심리적인 문제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여성들은 충분히 날씬한데도 본인이 뚱뚱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많다. 최근 대한비만학회가 실시한 ''비만에 대한 인식도 및 태도''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체질량지수(BMI)로 봤을 때 정상체중(18.5~22.9) 여성 26%가 ''비만하다''고 답변했고, 정상체중 여성 52%는 ''최근 1년간 체중감량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또 영국 연구팀이 22개국 남녀 대학생 1만8512명을 조사해 2006년 ''국제비만학회지''에 발표한 ''국제건강행태연구'' 결과를 보면 비만도를 보여주는 체질량지수는 한국 여대생이 22개국 중 19.3으로 가장 낮았지만 다이어트 중인 여학생은 77%로 1위를 차지했다.
◈ 마른 여성들이 다이어트에 열중하는 이유그렇다면 정상체중 또는 마른 여성 상당수가 왜 자신은 뚱뚱하다고 생각하고 다이어트에 목숨 걸까.
30대 싱글녀 김미경 씨는 "최근 급격히 살이 쪄서 비만 클리닉에 다니고 있다. ''뚱뚱해져서 남자친구가 안 생기는 걸까'' 자꾸 자신감이 없어져서 식단 조절을 통해 적극적으로 살을 빼려고 한다"고 했다. 취업준비생인 엄혜진(26) 씨는 "아무래도 뚱뚱하면 무능력하고, 자기관리를 못한 사람으로 보지 않나. 이번달부터 체중조절에 들어갔는데 꼭 다이어트 결심한 날 ''삼겹살 먹자''고 전화가 와서 난감하다"고 하소연했다.
일단 대인관계, 학업, 가정, 나 자신에 대한 불만족감을 몸에 투영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실직, 실연 등의 원인을 ''몸 탓''으로 돌리고 ''내가 조금만 날씬했어도…''라며 한숨을 내쉬고 끊임없이 자책한다. ''호감가는 외모가 성공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단계를 넘어 모든 가치 판단의 척도가 된다고 지레짐작하는 것이다. [BestNocut_R]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건국대 의대) 교수는 저서 ''도시 심리학''을 통해 "(사람들은)살 빼는 것으로 지금의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현실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만큼 꼭 그만큼의 크기로 외모에 대한 불만은 비례한다. 원인을 자기 안에서 찾거나 자신을 단련시키고 내공을 쌓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또 다른 이유는 뚱뚱한 여성보다 마른 여성을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 탓이다. ''날씬하다=아름답다''는 공식이 성립하고, 마른 몸이 남보다 우월한 몸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뚱뚱하면 게으르다''는 식의 인식도 많다.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몸의 이미지에 의해 계급이 나뉘기 때문에 여성들은 젊고 섹시한 신체를 만드는데 혈안이 된다.
''비만 히스테릭''의 저자 국민대 이대택(체육학과) 교수는 "생물학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마를수록 아름답고 섹시하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부합되어 그 기준에 맞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심리학, 열일곱 살을 부탁해''의 저자 이정현 마음과마음 식이장애클리닉 원장은 "우리나라의 문화적 분위기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기 보단 ''비슷한 가운데 튀어야 한다''는 이중잣대를 갖고 있다. ''마른 게 더 좋다''는 기준에 맞추면서도 돋보여야 하니 보통체격으론 만족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 너무 말라도 문제 아닌가 ''군살없이 어린 몸매, 마실수록 어려진다''(식품회사 ''ㅊ'' 광고), ''보여주고 싶은, 촉촉하고 매끄러운 바디''(화장품회사 ''ㅈ'' 광고). TV,인쇄매체,지하철 광고는 마른 여성모델과 자극적인 문구를 내세워 움푹 파인 쇄골과 쭉 뻗은 다리를 꿈꾸는 여성들을 유혹한다. 언론도 살 빼고 싶어하는 여성의 심리를 이용하긴 마찬가지다.
연예인의 다이어트 성공담은 세간의 이목을 잡아끈다. 따라서 ''연예인 OO가 몇kg 감량에 성공했다''는 기사는 집중 부각시키는 반면 ''요요현상으로 다시 살쪘다''는 얘기는 거론조차 안한다. 살 빠진 연예인을 보면 ''나도 뺄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도로 살찐 연예인에 관한 기사에 관심을 갖는 독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날씬해지고 싶은 욕망을 나무라진 못한다. 살이 빠진 후 대인관계에 자신감이 생기고, 타인도 나를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것만큼 좋은 건 없다. 오랜 기간 겪어봐야 파악이 가능한 성격보다 한 번만 훑어봐도 판단할 수 있는 외모가 중요시되는 요즘 세태에선 더욱 그렇다.
하지만 비만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 너무 마른 사람도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런 사실은 가려져 있고 ''생활습관병은 모두 비만에서 비롯된다''는 잘못된 진실만 강조된다. 박은선(28) 씨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쪄서 고민이다. 너무 말라서 옷을 입어도 태가 안나고, 여름만 되면 냉방병에 시달린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살 좀 쪘으면 좋겠다''는 말은 못한다"며 웃었다.
이대택 교수는 "급격히 살 빠지고 살찌는 건 문제지만 어느 정도 체중이 나가는 건 건강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대신 양극단은 모두 경계해야 한다. 저체중도 문제다. 결국 다이어트는 자기만족이라"고 했다.
◈ 아름다워지기 위해 살빼는 걸 나쁘게만 봐야 할까 박경철 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다이어트는 이상적이고 건강한 몸을 만든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왜곡된 다이어트는 정신적,육체적인 부작용 초래한다. 성인의 경우 자기체중의 20% 이상을 빼면 장기적으로 수명을 단축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다이어트는 미용이 아닌 건강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S라인 몸매, V라인 가슴, 초콜릿 복근 등 외모를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여성들이 아름다워지기 위해 살을 빼는 행위를 꼭 나쁘게만 봐야 할까.
일각에선 패션, 다이어트, 식품, 의료, 피트니스 등 산업계가 ''살 빼고 싶은 욕구''를 가진 여성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 돈을 벌고 있다고 지적한다.
패션업계는 옷을 팔려고 비쩍 마른 모델을 기용해 여성들에게 가녀린 몸매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다. 다이어트업계는 부작용은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보디 슬리밍제품, 지방흡입술, PPC 주사 등의 효능만 한껏 부풀린다. 또 의료업계는 비만이란 단어에 복부,소아,마른,내장 등 어두를 붙여 모든 사람을 비만환자로 만든다. 패스트푸드업계는 ''기름기를 확 줄였다''며 연신 신제품을 쏟아내고, 피트니스업계는 ''살은 운동으로 빼야 한다''고 떠든다.
우리는 패스트푸드와 다이어트를 동시에 권하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다. 스웨덴 작가 레나 안데르손이 만든 가상도시 ''덕 시티''의 시민들처럼 맛있는 도넛과 살을 빼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갈팡질팡 한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가운데 기름범벅인 음식을 먹으면서도 잘 단련된 복근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이대택 교수는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간에 이런 걸 조장하는 세력이 있다. 그러나 의사,정부,영양학자 등 집단끼리 서로 이해관계가 맞불려 있어서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비만인구가 느는 건 국가적 손해지만 의료,피트니스 업계는 국민들이 살찔수록 좋아한다. 모두 건강하면 망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정현 원장은 "사람의 체중은 유전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신체적 특징이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 조절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나친 다이어트는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이, 체중이 신체적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축소하고 여러가지 제품,시술의 도움으로 조절 가능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 외모지상주의만을 탓해야 할까
하지만 외모지상주의 탓만 할 수도 없다. 외모가 바뀌면 인생이 대역전될 거라고 믿는 여성도 부지기수다. 예쁜 몸매 등 외모가 출중하면 사는데 여러모로 도움은 되지만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쉽게 간과해버려 ''다이어트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하지현 교수는 저서 ''도시 심리학''에서 "단기간에 살을 빼는 건 변신에 대한 환상을 순식간에 만족시켜주는 행위다. 하지만 비만치료를 받는다고 다음날 세상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다이어트 열풍으로 대변되는 변신환상에는 시간과 노력이 드는 길을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 잠재해 있다. 변신환상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대택 교수는 "개인의 다이어트 욕구와 습관을 자제시키려면 사회적인 환경이 도와줘야 하지만 개인을 위해 환경을 바꿔주는 게 쉽지 않다"며 "적정체중은 사람마다 다르다. (적중체중은) 남과의 비교대상이 아닌 본인이 가장 움직이기 편하고, 적당한 식습관과 운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체중이라는 걸 깨닫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반면 이정현 원장은 "사회,문화적 운동이 일어나는 게 우선이다. 비만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개인에게 아무리 ''자신감을 갖고 살아라. 외모는 눈에 보이는 껍데기일 뿐이다''라고 해도 귀에 들리지 않을 게 뻔하다"고 말했다.
참고도서 : 비만 히스테릭(이대택 지음, 지성사), 도시 심리학(하지현 지음, 해냄), 덕 시티(레나 안데르손,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