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가 ''탄소 경제(Carbon Economy)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탄소 제로 경제(Carbon Zero Economy) 시대''이다. 무분별한 화석 에너지의 사용으로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면서 기후변화 문제가 전 세계적인 화두가 되고 있다. 탄소 배출 축소는 선택이 아닌 필수의 문제가 되었다. 이에 세계 각국은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한 녹색기술 개발과 이를 활용한 제로 에너지 개발(Zero Energy Development) 개념을 도시계획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탄소 저감 도시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독일과 영국, UAE 등 세계 각국의 사례를 살펴보고, 전라남도가 추진 중인 서남해안레저관광도시와 무안 기업도시의 탄소제로도시 개발에 시사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베드제드 주택단지
영국 런던 남쪽 써튼(Sutton) 자치구에 건설된 ''베드제드(BedZED, Beddington Zero-fossil Energy Development)''. 베드제드는 ''''베딩톤 제로 에너지 개발''''이란 뜻으로 석유와 석탄 등 화석 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개발한 지역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베드제드는 런던 최초의 친환경 주택단지로 최근 영국은 물론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베드제드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시 처럼 도시 전체 차원이 아닌 특정단지를 탄소제로도시로 조성하는 방식을 채택한 곳이다.
베드제드는 가동이 중단된 오수처리 부지에 조성된 에너지 자립단지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한적한 런던 교외에 자리 잡은 베드제드에 들어서면 우선 빨강과 파랑, 노랑 등 형형색색의 닭 볏 모양의 환풍구(wind cowl)가 지붕에 달린 주택들이 눈길을 끈다.
3층짜리 연립주택 3동으로 구성된 베드제드는 다양한 주체들의 협력으로 조성된 친환경 건축물로 탄소제로도시 개발의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베드제드는 자선단체인 피바디 트러스트(Peabody Trust)와 사회적 기업인 바이오 리저널 디벨로프먼트 그룹(BioRegional Development Group), 친환경 건축사무소인 빌 던스터 건축사무소(Bill Dunster Architets) 등의 파트너십으로 개발된 곳이다.
16,500㎡ 부지에 조성된 베드제드는 피바디 트러스트가 부지를 싸게 매입한 뒤 공동 사업자들이 지난 2000년 착공해 2002년에 완공됐다.
탄소 에너지 발생을 줄이기 위해 직장과 주거가 근거리에 있는 ''''직주 근접(職住 近接)'''' 방식으로 조성된 베드제드는 단지 내에 일반 가정 100가구와 10개의 사무실이 있다. 100가구 중 50%는 일반에 분양하고 25%는 직원과 설립자용, 25%는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적 주택용으로 임대됐다. 주택 가격은 동일한 규모의 주택보다 5% 가량 비싸게 설정돼 있다.
탄소배출을 지양하며 탄소제로주택으로 조성된 베드제드는 설계 단계부터 탄소 배출을 하지 않기 위한 건축 기법으로 눈길을 끌었다.
첫째,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 도입으로 에너지 손실이 최소화되도록 시공됐다. 에너지 손실 최소화를 위해 베드제드에서는 고밀도의 3층짜리 블록들이 옆으로 연결된 연립주택들이 모두 남향으로 배치됐다.
50㎝인 건물 외벽에 슈퍼 단열재를 사용했는데, 단열재의 두께만 30㎝에 이른다. 유리창은 모두 3중창이고, 베란다에 충분한 채광이 되도록 넓은 창을 사용하고 있다. 이밖에 절전형 조명기구도 에너지 절감에 한몫하고 있다.
베드제드 에너지 관리 시스템
특히 바람의 방향에 따라 회전하면서 실내로 신선한 외부 공기를 공급하는 닭 볏 모양의 환풍기가 인상적이다. 베드제드의 랜드 마크로 자리 잡은 이 환풍기는 열 교환기가 부착돼 바깥의 찬 공기가 실내의 더운 공기와 섞이면서 따뜻해지도록 설계됐다.
베드제드를 설계한 제드팩토리(Zedfactory)의 수석 건축가 빌 던스터씨는 ''''베드제드 주택단지 지붕에 설치된 환풍기가 70%의 에너지 손실을 줄이도록 설계되면서 별도의 난방 기구를 사용하지 않아도 실내온도를 조절하면서 난방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베드제드의 주택이 패시브 하우스로 조성되면서 단지 내 주택의 난방수요가 동일 규모 주택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는 게 베드제드 관계자의 설명이다.
둘째로 베드제드는 화석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모토로 한다. 이를 위해 베드제드의 지붕은 온통 태양광 집열판과 잔디로 뒤덮여 있다.
베드제드에서 소비되는 전기의 20%가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집열판을 통해 생산된다. 조명과 난방 등 다른 전력 수요는 인근 지역 임산물의 부산물로 나오는 바이오매스를 활용한 열병합발전소(CHP, combined heat and power)에서 충당하는 것으로 설계됐다.
그러나 100가구의 소규모 주택단지인 베드제드에는 열병합발전소가 적합하지 않아 지난 2005년부터 가동이 중단돼 있다. 계획대로 에너지 공급이 이뤄졌다면 베드제드에서는 화석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전기와 난방을 공급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건물 지하에도 탄소제로주택을 지향하는 기술이 구현돼 있다. 지하에는 빗물저장 탱크가 설치돼 있고, 빗물과 오폐수를 최대한 재활용할 수 있는 장치인 리빙 머신(Living Machine)도 갖춰져 있다.
베드제드는 이 같은 설비를 활용해 생활하수와 빗물을 저장하고 정화해서 화장실용과 정원수로 활용함으로써 물 소비량을 3분의 1로 줄였다. 화장실의 세면대와 변기 크기도 줄였고, 샤워기는 분무되는 물에 공기가 섞여 나오도록 설계해 물 사용량을 줄이도록 했다. 가전제품도 에너지 소비가 최소화되는 고효율 제품들로 구비됐다.
씨티 카 클럽
셋째, 탄소배출의 주범인 자동차 사용을 줄이려는 노력도 함께 이루어졌다.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전기 자동차 2대를 구비해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를 위해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전기 자동차를 충전할 수 있도록 단지 내에 전기 자동차 충전소가 마련됐다. 또 카풀제로 운용되는 시티 카 클럽(city car club)을 통해 단지 외로 나갈 때만 자동차를 임대해 사용하도록 해 탄소 배출을 줄이도록 했다.
이밖에 베드제드 내 상당수 주민들이 단지 내에 마련된 사무실에 근무하는 직주 근접 방식으로 이동거리를 최소화한 점도 베드제드의 특징이다.
일반 주거단지보다 주차장 면적도 좁다. 단지 내에 자동차 진입이 금지돼 있고 모든 도로는 보행자와 자전거 우선이다.
바이오 리저널 마케팅 국장인 필 셰밍스씨는 ''''베드제드는 자동차 사용을 줄이도록 단지가 설계돼 있어 총 가구의 59%만이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자동차 사용 비율이 낮다''''고 말했다.
탄소배출 제로에 도전하고 있는 베드제드는 친환경 건축의 모범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 형성에 있어서도 모델이 되고 있다. 커뮤니티 센터가 활성화돼 단지 내 관련 사항에 대해 일상적으로 토의하고, 요가 등의 취미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베드제드 주민인 샘 스미스씨는 ''''베드제드 주민들 사이에는 공동체가 잘 형성돼 있어 주민 만족도 조사를 해보면 공동체 의식과 낮은 주거비용에 대한 만족도가 높게 나온다''''고 말했다.
주택의 지붕에 옥상 정원이 설치돼 있고 구름다리로 각 가구를 연결한 설계도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 일반 시민들은 6-7명의 이웃의 이름을 알지만 베드제드 주민들은 20명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유기농 식품의 공동 구매와 소비도 베드제드가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이념과 부합한다. 베드제드 조성 당시 베지제드(VegeZed)라는 일종의 텃밭을 일궈 유기농 식품을 조달하기도 했다.
영국의 친환경 주택단지인 베드제드에서는 탄소제로단지를 지향하면서 탄소배출을 가속화시키는 각종 에너지 사용이 현저하게 줄었다. 전기 사용량의 경우 1인당 하루에 5.2㎾에서 3.4㎾로 45%나 감소했다.
또 물 사용량은 58%, 쓰레기는 60%가 감소했으며, 자동차 사용거리도 64%가 감소했다는 통계가 있다.
이밖에 주민들의 86%가 지역의 유기농 음식을 구매해 소비하고 있다.
그러나 베드제드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형 병원이나 학교 등에서 사용하는 열병합발전소가 소규모 주택단지인 베드제드에 적합하지 않아 가동이 중단된 것이 대표적이다.
또 아직 태양 에너지 발전의 에너지 효율이 낮고, 쓰레기 배출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바이오 리저널 관계자는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