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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째 몸속에 박힌 오월의 파편…'탱크'가 깨운 고통스런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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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46년째 몸속에 박힌 오월의 파편…'탱크'가 깨운 고통스런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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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스타벅스 코리아의 이른바 '탱크데이' 논란은 단순한 마케팅 논란을 넘어, 왜 광주와 5·18 생존자·유가족들이 특정 표현과 상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27일은 세 번째 순서로, 46년이 지난 지금도 작은 소리와 단어 하나에 가슴이 뛰고 고통받는 생존자들의 현실을 통해 여전히 몸과 마음에 깊이 박혀 있는 오월의 트라우마를 들여다본다.

    [왜 광주는 아직 5월을 말하는가③]
    5·18 생존자들의 고통은 46년이 지나도 현재진행형
    "탱크데이, 살아남은 이들의 상처에 소금 뿌린 격"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사진첩 캡처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사진첩 캡처
    ▶ 글 싣는 순서
    ① 스타벅스 논란이 건드린 5·18의 상처
    ② "궤도 소리만 들려도 숨었다"…1980년 광주의 전차
    ③ 46년째 몸속에 박힌 오월의 파편…'탱크'가 깨운 고통스런 기억
    (계속)

    "탕탕탕탕, 두두두둥…"
     
    매년 5월이 되면 박순범(57)씨는 의식을 잃는 횟수가 잦아진다.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가슴팍에 가져다 대고는 입으로 총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정작 자신은 무슨 행동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1980년 5월, 11살 소년의 머리 위로 쏟아진 계엄군의 군홧발은 46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의식을 끊어 놓는다.
     
    이처럼 광주시민에게 5·18은 달력 위의 숫자로만 오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피비린내 섞인 시큼한 냄새로, 누군가에게는 머리칼을 쭈뼛 서게 하는 총알 소리로,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는 심장을 짓누르는 전차의 모습으로 찾아온다.
     
    스타벅스가 5월 18일에 맞춰 선보인 '탱크데이' 이벤트와 '책상을 탁'이라는 문구가 이들에게 생존의 위협이자 인간 존엄에 대한 모욕으로 다가온 이유다.
     

    계엄군의 군홧발에 짓밟힌 11살 소년의 꿈

    1980년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박순범(57)씨의 모습. 박순범 씨 제공1980년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박순범(57)씨의 모습. 박순범 씨 제공
    1980년 5월 27일,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박씨는 누나·여동생과 함께 담요를 뒤집어쓰고 몸을 숨겨야 했다. 전남방직 인근 발산마을에 살던 남매의 집으로 무장한 계엄군 두 명이 들이닥친 것이다.
     
    계엄군은 시위에 참여한 대학생이 숨어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집안 곳곳과 벽장, 부엌을 뒤졌다.
     
    수색을 마치고 나가려던 군인들은 방 한쪽에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는 담요를 발견했다. 계엄군은 여기에 "학생이 숨어있는 것 아니냐"며 군홧발로 담요를 수차례 내리쳤다.
     
    박씨는 이때 계엄군에게 머리를 맞아 뇌혈관을 다쳤다. 이후 박씨는 40여 년간 지독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매년 5월이 다가오거나 날씨가 흐려지면 누군가 자신을 잡으러 온다는 공포와 함께 '전조 증상'이 시작된다. 이 시기면 그는 응급실을 찾아 진정제를 처방받아야만 고통을 견딜 수 있다.
     
    지난 2016년에는 서울에서 인조 혈관을 연결하는 대수술을 받았지만 뇌에 각인된 공포까지 도려내지는 못했다.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음악교육과에서 성악을 전공하며 지역에서 흔치 않은 높은 음역대 '테너'로 촉망을 받던 그는 고등학교 음악교사 자리와 합창단원 기회를 고사해야 했다. 수많은 무대에 섰지만 관객들의 앙코르 요청에는 끝내 응답하지 못했다.
     
    무대 위에서 쏟아지는 박수 소리가 총소리로, 환호성이 비명으로 변해 들리는 트라우마가 그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46년 전 공포는 촉망받던 테너의 꿈을 짓밟은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까지도 그의 의식과 일상을 시시때때로 마비시키고 있다.
     

    "탱크데이, 트라우마 겪는 살아남은 자에 '소금 뿌리는 격'"

    1980년 당시 17살이던 오기철 씨의 모습. 오기철 씨 제공1980년 당시 17살이던 오기철 씨의 모습. 오기철 씨 제공
    또 다른 생존자 오기철(63)씨에게도 5월은 '현재진행형'인 통증이다. 1980년 5월 광주 남구 양림동에서 나전칠기공으로 일하던 17살 소년 오씨는 신원이 확인된 광주시민의 시신을 병원에서 옮겨와 도청에 입관하는 일을 도왔다.
     
    5월 26일 밤, 계엄군이 도청으로 들어와 시민군을 진압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그는 도청을 떠나지 않았다. 이후 27일 새벽 도청 경찰국 뒤편 계단 아래에 숨어있던 그가 목격한 것은 비현실적인 공포였다.
     
    군인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오며 시민군에게 조준 사격을 가했다. 그 앞에 있던 동료는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체포된 후 계엄군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을 때보다 죽음의 순간을 눈으로 봤을 때가 가장 무서웠다고 오씨는 말했다. 그날의 공포는 오씨의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남겼다.
     
    항쟁이 끝난 후 오씨는 3년 동안 미끼도 끼우지 않은 낚싯대를 던져놓고 강가에 앉아 있기를 반복했다. "차라리 그때 머리에 총을 맞고 죽었더라면…"하는 지독한 죄책감이 그를 평생 따라다녔다.
     
    46년이 지난 지금도 오 씨에게 5월은 '혹독한 계절'이다. 몇 주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다 체력이 바닥나서야 겨우 쓰러지듯 잠드는 일상이 반복된다. 눈을 감아도 자꾸만 1980년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에게 최근 스타벅스의 5·18 조롱 논란은 단순한 마케팅 실수가 아니다. 그는 "산 자로서 너무나 혹독한 시간을 겪고 있는데, 그 위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라고 말한다.
     

    몸이 기억하는 5월…"이 시점에서 '탱크'는 단순한 단어가 아니다"

    왜 이들은 46년이 지나도록 특정 단어와 오감(五感)에 이토록 아프게 반응하는 걸까. '과거사 젠더폭력 진실과 치유의 길을 여는 5·18 열매'의 이다감 상담활동가는 이를 '감각 기억'으로 설명한다.
     
    이 활동가는 "생존자들 몸에는 1980년 5월 당시의 냄새, 시각적 풍경, 청각적 충격이 각인되어 있다"며 "일상을 살 때는 생존을 위해 억압해 두지만, 특정 계절이나 상징이 소환되면 그 감각들이 자동으로 되살아난다"고 했다.
     
    결국 스타벅스의 '탱크'와 '책상을 탁'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마케팅 문구가 아니라, 생존자들이 봉인해 두었던 고통스러운 감각을 강제로 끌어내는 방아쇠가 된 것이다.
     
    이 활동가는 5·18 생존자들이 4월부터 6월 사이 약 복용량을 늘리는 이유도, 뇌와 몸이 그날의 사고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며 반응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광주 시민들이 이번 사태에 분노한 것은 그들이 과거에 머물러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의 몸이 여전히 그날의 고통을 생생한 감각으로 재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어야 끝나는 싸움'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가해진 대기업의 조롱은, 우리 사회가 5·18 당시 살아남은 자의 트라우마를 얼마나 가볍게 소비해 왔는지를 아프게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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