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초기업노조원들이 지난달 23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벌인 투쟁 결의대회. 평택=황진환 기자삼성전자 노조 총파업이 모레(21일)로 다가온 가운데 노사가 2차 사후조정에 들어갔다. 사실상 마지막 담판 중인 삼성전자 구성원들에게 역사는 이미 답을 알려주고 있다. 삼성의 타산지석(他山之石)을 같이 살펴보자.
은의 저주
16세기 초에서 17세기 중반까지 스페인 제국은 신대륙에서 막대한 금과 은을 가져왔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은 말 그대로 노다지였다. 처음에는 금에 혈안이 됐지만 중남미에서 은광이 발견되면서 현지 인디오들을 동원해 은을 긁어 모았다. 당시 신대륙에서 생산된 은은 연평균 최대 300톤이 넘었다.
스페인 제국은 역사상 유례없는 부를 누리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스페인 왕실과 귀족들은 넘쳐나는 돈을 흥청망청 써댔다. 보석과 전쟁이라는 사치에 돈 탕진하기에 바빴다. 산업 개발이나 인프라 투자는 쳐다보지 않았다. 모든 물자는 개발도상국(?)인 영국이나 네덜란드에서 사 오면 됐다. 하지만 마르지 않는 샘인 줄 알았던 금과 은은 결국 바닥이 났고 스페인 경제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스페인에서 넘쳐 흐르던 부를 고스란히 받아 먹으며 힘을 키웠던 영국이 패권을 넘겨 받았고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절대무적 스페인 함대는 그렇게 박살났다. 은은 축복이 아니라 '독'이었다.
네덜란드 병
1959년 네덜란드 북부 흐로닝언 해안지대에서 거대한 천연가스전이 발견됐다. 네덜란드는 졸지에 자원수출국이 되고 부자 나라가 됐다. 가스 수출로 막대한 외화가 들어왔고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엄청난 외화가 유입되자 네덜란드 통화 가치가 급등했다. 가스 산업은 잘 나갔지만 일반 제조업체들은 가격 경쟁에서 밀리며 수출 경쟁력을 잃어 갔다. 일자리가 줄어들자 정부는 복지를 더 늘렸다. 돈이 풀리자 물가도 올랐다. 그러다 국제 가스 가격이 떨어졌고 네덜란드 경제는 심각한 불황의 늪에 빠졌다. 축복의 60년대가 끝나고 70년대 침체의 터널이 시작됐다.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으로 불리는 현대판 '자원의 저주'였다.
'새똥'의 꿈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나우루 공화국은 1970년대 세계 최고의 부국이었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세계 1~2위를 다투었다. 비결은 섬 전체를 뒤덮은 '새똥'이었다. 새의 배설물이 굳어서 형성된 인광석은 고급 비료의 원료였다. 독일, 일본, 국제연맹, 영연방을 거쳐 1968년 독립한 인구 1만여 명의 섬나라는 인광석이라는 신의 축복이 내려진 지상낙원이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세금을 거두기는커녕 매년 엄청난 배당금을 줬다. 학교나 병원도 무료였고, 국민들은 외제차를 몇 대씩 굴렸다. 공부도, 기술도 배우고 익힐 필요가 없었다. 아니 노력이라는 것 자체를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자원은 무한하지 않고 나우루의 인광석도 1990년대 들어 바닥 났다. 아무 것도 모르는 국민들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국가는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됐다. 불법적인 돈세탁을 해주고 밀입국자들을 받아줘서 먹고 사는 처지로 추락했다.
제록스 신드롬
'Google'이 '검색하다'라는 뜻으로 쓰이듯 제록스(Xerox)는 '복사하다'라는 동사로 통했다. 1970년대 제록스는 전 세계 회사를 지배하는 절대강자였다. 제록스 복사기가 없는 오피스는 상상할 수 없었다. 사실상의 독점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쓸어 담았다. 혁신까지도 생각했다. 문제는 혁신이, 넘쳐나는 돈을 주체 못한 과시용에 그쳤다는 것이다.
제록스는 미국 팔로알토에 PARC(Palo Alto Research Center)라는 연구소를 세웠다. 이곳에 모인 연구원들은 다가오는 디지털 시대를 선도할 혁신적인 기술들을 쏟아냈다.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아이콘과 마우스로 컴퓨터를 조작하는 방식), 레이저 프린터, 이더넷(근거리 통신망) 등 하나하나가 미친 기술이었다. 그리고 PC(개인용 컴퓨터) '알토(Alto)'까지 개발했다.
그런데 제록스 경영진은 눈을 반짝이지 않았다. '신기하기는 한데 이게 팔리겠어?' 그들은 PARC의 기술이 집약된 알토의 상용화 계획을 휴지통에 버린다. 제록스 경영진에게 복사기는 스페인의 은, 네덜란드의 석유, 나우루의 새똥이었다.
1979년 한 천재 청년 사업가가 PARC를 방문한다.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은 그는 GUI 기술을 적용한 PC를 개발해 세상을 뒤흔든다. 바로 스티브 잡스가 만든 매킨토시이다. 또 다른 동갑내기 천재 빌 게이츠는 윈도우를 개발한다. 제록스는 인류 역사를 바꾼 황금알을 낳았지만, 현실에 안주하며 가치를 몰라보고 미래를 후발 경쟁자에게 넘겨준 것이다. 그리고 '제록스 신드롬'이라는 비웃음을 받으며 복사기 업체로 남았다. 현재 제록스의 주가는 2달러 대이다.
그리고 삼성전자
다시 오늘 대한민국의 삼성전자로 돌아와서 우리는 스페인을, 네덜란드를, 나우루를, 제록스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들을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 그 전철을 밟지 않은 노르웨이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생각한다.
노르웨이는 네덜란드보다 10년 뒤인 1969년 북해 유전을 발견했다. 그들은 네덜란드의 몰락을 보았고 '정부연금펀드(GPFG)'를 만든다. 이를 통해 돈을 바로 풀지 않고 전 세계 주식, 채권, 부동산에 투자했다. 정부는 펀드 자산의 딱 3%만 예산으로 투자하고 나머지는 모두 국가와 국민의 미래에 투자했다. 이 성공 사례는 최근 한국에서도 인용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한국 경제의 미래가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