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연합뉴스사우디아라비아가 최근 자국 영공과 기지를 미군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주한미군의 대만 유사시 개입 등에 따른 위험을 안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NBC방송은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안에 갇힌 상선들을 빼내는 '해방 프로젝트'를 중단한 배경에 사우디의 강한 반발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 수뇌부가 미국의 새 군사작전 발표에 분노하며 자국 내 프린스 술탄 공군지지 사용과 영공 통과를 불허한다고 미국 측에 통보했다는 것이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통화했지만 해결되지 않았고 추가 통화에서야 가까스로 사용 제한이 풀렸다.
중동 국가들은 미국의 안보 공약이 자신들보다 이스라엘 안보를 우선시하는 것에 불만과 위기감을 보여왔다. 전쟁 결정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미국의 맹방인 사우디의 이번 조치는 매우 이례적이다. 사우디는 지난해 11월 한국, 일본, 호주, 이스라엘 등과 같은 미국의 '비(非)나토 동맹'(MNNA)으로 격상됐다.
동맹보다 국익을 앞세운 사우디의 과감한 '주권 행사'는 우리나라도 조심스럽지만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 원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미 양국은 2006년 외무장관 공동성명에서 한국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하고 미국은 '한국민 의지와 관계없이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한국 입장을 존중'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고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시대적 상황 변화 속에 합의의 구속력이 의문시되는 게 사실이다.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연합뉴스지난 2월 주한미군의 사실상 일방적인 서해 전투기 출격이나, 최근 호르무즈에서의 우리 선박 피격 때 미국이 즉각 군사작전 참가를 압박한 것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수 전문가들은 기존 선언적 합의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전승인이나 최소한 사전협의 등의 절차를 보완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하지만 산유국이자 아랍권 맹주인 사우디는 우리와 사정이 달라 비교사례가 될 수 없고,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은 어느 정도 수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연구센터장은 "한미동맹은 미국-사우디보다 구속력이 세기 때문에 미국의 어떤 요청이 있을 시 신중 검토니 불허니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현실적으로 미국에 '노'(No)라고 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반도체나 조선 같은 한국의 장점을 지렛대로 이용한 외교적 노력의 공간은 남아있다.
김윤태 홍익대 국방AI융합학과 교수(전 KIDA 원장)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미국과의 대화도 필요하지만, 우리 내부적으로도 정교한 논리 개발과 전열 정비가 요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