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단체 두루, 공익법센터 어필, 난민인권네트워크, 난민 행정구금 권리구제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회가 8일 서울 서초동 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00일간의 공항난민 불법구금 관련, 유엔의 한국정부에 대한 권고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공익법센터 어필 제공난민 신청을 했지만 접수가 거부돼 14개월간 공항 환승 구역에 머물러야 했던 외국인에 대해 '한국 정부가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UNHRC)의 권고가 나왔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난민 신청자를 공항에 구금한 적 없다며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UNHRC는 정부가 사실상 난민 신청자를 구금한 것이라며 피해 보상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정부 '난민 심사' 거부로 14개월간 공항서 노숙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UNHRC가 최근 한국 정부의 조치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위반했다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공익법단체 두루, 공익법센터 어필, 난민인권네트워크, 난민 행정구금 권리구제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회가 참여했다.
콩고 출신의 A씨는 지난 2020년 경유지인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 도착했다. A씨는 환승하지 않은 채 출입국 직원에게 난민 신청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A씨가 입국심사를 진행하지 않아 난민 신청 자격이 없다며 심사를 개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A씨는 공항 환승 구역에 머물렀고, 취침과 식사 등을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공항 난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터미널'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공익법단체 두루 등 대리인단은 정부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결국 14개월 만에 환승 구역을 벗어나 입국했지만, 정부는 책임을 회피했다. 법원도 "정부의 고의나 과실이 없었다"며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A씨 측은 UNHRC에 개인진정을 접수했고 최근 우리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결정이 내려졌다.
유엔 자유권위원회 홈페이지 캡처UNHRC "환승 구역에 구금한 것…피해 보상해야"
대리인단에 따르면 UNHRC는 우리 정부가 자유권규약에서 규정한 강제송환 금지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정부가 환승객이라는 이유만으로 난민 신청을 거부해 강제송환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A씨는 행정 소송 결과를 기다리며 환승 구역에 머물러야 했는데, 이는 정부가 A씨를 자의적으로 구금한 것이라고 했다. UNHRC는 "진정인에 대해 어떠한 행정 명령도, 법적 근거도 없이 환승 구역에 구금했음을 인정한다"며 "얼마나 구금될지 알지 못한 채 무기한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구금됐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A씨는 비위생적인 조건, 충분하지 않은 숙소, 적절한 음식과 약품의 부재, 24시간 동안 켜져 있는 조명에 노출되는 등 정부가 인도적 처우를 위반했다는 게 UNHRC 설명이다.
UNHRC는 A씨에 대해 우리 정부가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같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 조치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UNHRC는 우리 정부가 180일 이내에 권고 이행 여부를 보고하고, 그 내용을 관보에 게시하도록 요청했다.
"인권 최우선 가치 침해…과실 따지지 말고 피해 회복해야"
대리인단은 정부가 UNHRC의 권고를 신속히 이행해 A씨에게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권고를 계기로 비슷한 사례에서 정부가 난민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채완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변호사는 "UNHRC는 정부에 효과적인 구제를 권고했다"며 "이는 단순히 금전을 배상하라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명예회복, 심리 지원, 책임자 차원에서의 공식 사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 포괄적 배상을 피해자에게 제공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자유권규약을 비준한 국가"라며 "정부가 헌법에 의해 국내법적 효력을 가지는 자유권규약을 준수해 피해자가 훼손된 존엄성과 권리를 빠른 시일 내에 회복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언급했다.
김진 공익법단체 두루 변호사는 "우리 법 체계는 형사 절차에서의 불법 구금은 보상하고 있지만, 출입국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의적인 행정 구금에 대해서는 어떠한 보상 체계도 갖추지 않고 있다"라며 "인권의 최우선 가치인 신체의 자유를 침해했다면 국가는 과실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피해 회복에 나서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이상현 공익법단체 두루 변호사는 "매년 60~70%의 공항 난민들은 정식 난민 심사 기회를 받지 못한다. 공항에 장기간 구금된 채 출국을 강요받는다"라며 "공항 난민들이 소송만 제기하면 승소한다. 주무 부서인 법무부는 재판만 가면 연전연패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통계에 따르면 재판에서 법무부가 지는 경우가 72%에 달한다고 한다. 억울한 구금이 72%라는 뜻"이라며 "법무부는 지금이라도 이런 무도한 행정을 멈춰라. 한국의 공항도 법이 통하는 곳이 되도록 하라"고 촉구했다.
A씨도 대리인단을 통해 정부에 사과를 요구했다.
A씨는 "14개월 동안 공항에 갇혀 있던 저에게 한국 정부의 어느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보상도 전혀 받지 못했다"면서 "공항 생활은 벗어났지만 여전히 어렵게 살고 있다. 공항에서 지내며 생긴 병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한국 정부가 저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공항에서의 14개월에 대해 보상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