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안 전 경감. 연합뉴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26일 군사정권 시절 '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친 이근안 전 경감의 사망 소식에 "끝내 고문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했다"며 유감을 표했다.
사업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이근안은 과거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가해진 반인륜적 고문과 인권 침해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라며 "가해자의 죽음은 그가 저지른 만행을 지울 수 없고, 민주주의 역사에 새겨진 피해자들의 고통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오랜 세월 고통을 견뎌온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와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며 "이근안의 사망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더욱 확고히 지키며 과거의 잘못을 성찰하고 올바른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전 경감은 전날 향년 88세로 사망했다. 현재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한 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돼 있다. 이 전 경감의 발인은 27일 이뤄진다.
이 전 경감은 1970~80년대 군사정권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활동하며 강압 수사와 고문을 주도한 인물이다. 전기고문, 물고문 등 온갖 고문을 통해 거짓 자백을 받아내 '고문 기술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도 얻었다. 그는 김근태 전 의장이 고문당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사건' 등 여러 공안 사건에 연루됐다. 또 이른바 '서울대 무림 사건'에서도 가혹 행위를 주도한 인물로 지목됐다.
민주화 이후 과거사 정리가 시작되자 10여 년간 도피생활을 하다 1999년 자수했다. 고문과 불법 구금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7년간 복역한 뒤 2006년 만기 출소했다. 출소 이후 목사로 활동하며 반성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지만,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는 더 책임감 있는 사과와 참회를 요구해 왔다. 이후 이 전 경감은 결국 목사직을 박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