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시원히 짚어 준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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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인 보수단체인 활빈단이 국방부 등 군에 나사를 선물한 이유가 무엇인가?= 활빈단(단장 홍정식)은 각종 현안이 있을 때마다 주요 현장에 나타나 각종 퍼포먼스 시위를 벌이는 단체다. 특히 이 단체 대표인 홍정식 단장은 진보단체 등이 시위할 때면 빠짐없이 반대편에서 맞대응 시위를 벌여 눈길을 끄는 분이다.
이런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분이 지난달 29일 국방부 앞과 합동 참모본부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인데 이어 지난달 30일에는 군 철책이 뚫려 월북을 방치한 강원도 고성의 한 부대 앞에서 규탄시위를 감행했다.
당시 언론들이 사진 등으로 간단하게 전했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 단체의 성격과 평소 행태로 봐서는 매우 이례적인 시위였다.
이 자리에서 홍 단장은 군지휘관 앞으로 나사와 함께 무용지물이 된 멍키스패너 전달을 시도했다. 한마디로 군기가 빠져도 너무 빠져서 나사로 다시 조여야 한다는 의미였다.
홍 단장이 준비한 시위 피켓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전쟁에 패한 자는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한 자는 용서할 수 없다" "96년 뚫리고도 북한이 알려줘야 구멍을 찾냐" 라는 주장이었다.
96년 사건은 바로 1996년 9월 18일 동해안으로 북한 잠수함이 침투해 남한을 휘젓고 다녔던 사건을 지칭하고 있다.
당시 북한 소형 잠수함이 강릉 동해 앞바다에 어망에 스크루가 걸려 좌초한 뒤 상륙하는 장면이 택시기사 등에 의해 발각돼 6.25 이후 최대 규모의 군 수색작전이 펼쳐졌던 사건을 일컫는다.
당시 북한 잠수함 승조원 중 1명이 생포되고 11명은 자살, 13명은 사살 그리고 2명은 삼엄한 남측의 수색작전을 피해 끝내 유유히 휴전선 철망을 뚫고 북한으로 넘어갔던 사건이다.
그런데 아군도 군인·경찰·예비군 포함 10명과 민간인 4명이 피살되는 인명피해를 입었다. 당시에도 북한 잠수함을 초소 경계병들이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던 택시기사와 승객이 신고하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홍 단장의 나사 전달은 물론 국방부 및 부대 위병들의 철통같은(?) 경계에 막혀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군 지휘 책임자들의 가슴에는 대못이 박혔을 것 같다.
▶ 그렇다면 최근 군기가 빠진 대표적인 사례들은 어떤 것이 있나?= MB정부는 출범 이후 정예화된 선진강군을 내세웠다. 그렇지만 사상 유례가 없는 군내부의 다단계 금융사기, 선임병 구타에 따른 자살 의혹, 각종 총기사고, GP생활관 수류탄 투척, 철책근무 초소장 술판, 동료 여군 성폭행 등 군기문란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역시 지난달 발생한 남측 민간인 월북사건이 대표적인 기강해이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문제는 우리 군 당국이 북한 방송이 나올 때까지 민간인 월북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데다 또 철책에 가로 세로, 30cm, 40cm 크기의 구멍이 뚫린 것도 사후 순찰을 통해 알았다.
실제로 군 당국은 사건 발생 다음날인 28일 해당 사단의 지휘책임을 물어 사단장과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 등 5명의 지휘관을 보직해임 하는 등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구멍뚫린 철책 넓이만큼 군의 내상도 깊었다.
이밖에 지난 9월초 북한의 황강댐 무단 방류시 당시 최전방 초병이 수량이 늘어난다는 것을 파악했지만 관계부처에 상황 전파에 있어 소극적으로 대응, 무고한 국민 6명이 희생되고 군 탱크마저 물에 잠기는 수모를 겪었다.
또 지난달 1일 북한 주민 11명이 동해상을 통해 귀순하는 과정에서 북한 선박에 대한 우리 군의 허술한 경계시스템도 도마에 올랐다.
▶ 경계가 허술한 문제도 있지만, 최근에는 군 기밀 보안 문제와 납품 비리까지 나오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최근 안보경영연구원장인 황모씨가 검찰에 구속됐다. 황 씨는 미국 방위 산업체로부터 의뢰받은 용역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국방부 영관급 장교 등을 통해 해군 관련 2급 군사기밀을 넘겨받은 혐의다.
이 사람이 경영했다는 안보 경영연구원은 우리의 안보가 아니라 미국의 안보였나 보다.
또 지난달에는 공군 소장 출신 예비역이면서 모 컨설팅 회사 대표로 있던 김모씨가 차세대 전투기 계획 등을 스웨덴 무기회사 사브 측에 넘겨준 혐의로 구속됐다.
황 씨와 김 씨 모두 이미 전역한 예비역이라는 점에서 군 기강과 거리가 있는 것 같지만, 예비역 장교라는 이유로 군이 보안 대처에 허술했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김 씨는 비밀 취급인가가 없었지만, 국방대 담당자는 예비역 장성 예우 차원에서 규정을 어기고 비밀인가를 허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질적 납품비리도 4년 만에 제대로 터졌다.
김영수 해군 소령이 방송사 시사고발프로그램에 출연, 계룡대 근무 지원단의 비리를 폭로해 촉발된 사건은 금품이 오간 납품비리도 문제지만, 이를 조직적으로 덮으려 했던 군 고위급의 개입 정황도 드러나 충격을 줬다.
김 소령은 지난 2006년부터 수차례 고발했지만 군 당국은 네 차례의 조사에서 관계자에 대한 구두경고, 무혐의, 불기소 처분 등으로 피의자들을 감싸기에 바빴고 오히려 고발자를 정신이상자 또는 군 기강을 해이하게 하는 치졸한 내부 고발자로 깎아내리기에 바빴다.
그런데 올해 국정감사에서 국회가 문제를 삼고 신임 김태영 국방장관이 재수사를 지시하자마자 2명이 구속되는 선에서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그러나 과연 누가 수사를 방해하고 관련자들을 구명했는지, 이들을 감싼 해군지휘부의 고위 관계자는 누구인지는 속시원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정황상 해군 지휘부가 당시 납품비리를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관측과 함께 금품 상납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등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다.
이는 우리 군 관계자들이 제대 이후 방위산업체 로비스트 또는 각종 기업에 재취업한 선후배간에 은밀한 뒷거래가 계속되는 군의 패거리 문화, 먹이사슬 구조가 계속되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군 최고 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명령도 잘 먹히지 않는 것 같다.이명박 대통령도 최근 군 기강 해이를 의식한 듯 발언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3일 청와대에서 육군 공군 중장 진급과 보직이동 대상자로부터 신고를 받는 자리.
이 대통령은 "군이 경계근무를 형식적으로 타성에 젖어서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 살펴봐야 한다"며 최근 민간인 동부전선 철책 월북 사건을 겨냥해 지적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북에서 방송으로 알려준 후에야 철책이 뚫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군 기강 해이를 질타했다.
다만 이 대통령은 군 기강 해이의 원인으로 "6.25 이후 휴전상황이 오래 지속돼 우리 군의 긴장이 풀린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의 원인 진단은 지난 9월 언급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지난 9월 대장 진급자 보직 신고식에서 이대통령은 이렇게 얘기했다. "지난 10여 년간 국민의 안보의식이 약해지고 군 기강도 다소 흐트러진 측면이 있다"며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해이한 안보의식에 책임의 초점을 뒀다.
덧붙여 "신병훈련소에 가보니 장병들의 군 생활 목표가 살 빼고 영어 공부하는 것이라니 문제"라고 언급하면서 "군 복무를 국가관 사회관 협동심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의 원인 진단이 전임 정권에 대한 책임에서 6.25 휴전상태가 오래된 쪽으로 간 것을 보면 정권 출범 3년째를 앞두고 있으면서 전 정권 탓만 하기에는 다소 군색했기 때문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자유선진당 이진삼의원은 "정신기강이 다 무너졌다. 이것을 세우는데는 새로 임관하는 육군 소위 하사관들의 정신 상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질타했다.
군 기강 기초부터 다시 새롭게 하는 것이 필요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