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주 기자의과대학 정원 증원이 확정된 가운데 의료계가 대외적으로는 대정부 투쟁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협상을 통해 실익을 확보하는 쪽으로 무게를 옮기는 분위기다.
9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는 보건복지부와 이달 안에 의정협의체를 출범하는 방안을 두고 논의 중이다.
의협은 협의체에서 그간 묵혀온 숙원 요구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김택우 의협 회장은 지난달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의정협의체를 통해 필수의료 및 기피과 적정 보상, 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책 법제화, 면허취소법 등 악법 개선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수가 개선·의료사고 형사처벌 특례…숙원 해결 요구
의료계가 가장 앞세우는 요구는 수가 개선이다. 증원만으로는 필수과 기피 현상을 해소할 수 없고, 저평가된 보상체계가 먼저 손질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료계는 산부인과 등 고위험·고강도 진료과의 건강보험 수가가 원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가 이어지는 한, 의대 정원을 늘려도 필수의료 인력난은 해소되기 어렵다고 본다. 수익성이 낮고 법적 부담은 큰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인력 쏠림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특례 도입도 의료계의 오랜 요구다. 산과·소아청소년과·흉부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에서 의료사고가 형사사건으로 번지는 사례가 누적되면서, 이 같은 부담이 필수과 회피를 더 부추기고 있다는 게 의료계 시각이다.
면허취소법도 협상 의제로 거론된다. 의료행위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건으로 금고형을 선고받아도 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 현행 규정은 과도하다는 것이 의료계 입장이다.
의협은 논의 구조 역시 과거와 달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여러 위원회가 병렬적으로 운영되며 결론 없이 흩어졌던 방식에서 벗어나, 정부와 의협이 직접 참여해 의료정책 방향과 중장기 청사진을 논의하는 실질적 협의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의협 관계자는 "증원이 결정된 상황에서 강경 투쟁에만 매몰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며 "지금은 의료계가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확보하는 데 집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2000년 의약분업…의료계 달래기 '의대 정원 감원'
복지부는 의료계와 정책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지만, 별도 협의체를 꾸리는 방식에는 선을 긋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계와는 지금도 계속 소통하고 있으며, 특정 기구를 구성해 논의하는 방식은 아니다"며 "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책 등은 관련 법안도 나와 있어 정부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의료계 안팎에선 정부가 결국 일정 수준의 당근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000년 의약분업 파동이 선례로 거론된다. 당시 의료계는 대규모 파업으로 의료 대란을 일으켰고, 정부는 의대 정원 감원을 수습책으로 내놨다. 이후 의정 합의를 거쳐 3507명이던 의대 정원은 2006년까지 4년에 걸쳐 351명이 줄어 3058명으로 축소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