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인천공장 입구 모습. 박창주 기자현대제철 인천공장에서 15년 가까이 근무해온 50대 A씨. 지난달 본사로부터 일부 공장 운영을 중단한다는 날벼락 같은 통보에 일손을 놓고 있다.
가동을 멈춘 공장은 건축 자재로 쓰이는 철근 등을 만드는 소형공장과 90톤 공장 등이다. 전체 10여개 동 가운데 2개 동의 생산라인이 차갑게 식었다.
전체 공장 인력 1300여 명 중 A씨처럼 휴지 상태에 놓인 인원만 180여 명에 달한다. 당장 급여는 30%가량 삭감될 처지다. 얇아질 급여 봉투에 설을 앞두고도 좀처럼 웃을 수가 없다.
이대로 철근 수요가 회복되지 않으면 경북 포항이나 충남 당진 등 타지역 공장으로 보내지거나, 추가 공장 중단에 따른 악순환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
A씨는 "부분이든 전면이든 폐쇄만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노조와 함께 대응하고 있다"며 "근무지가 먼 곳으로 바뀔까봐 가장 걱정된다"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직원 줄일 수밖에"…녹아내린 철강업, 흔들리는 고용기반
철강업 불황의 장기화는 대기업보다 구조적으로 취약한 중소업체에 더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수직 계열화돼 대기업 물량에 의존하는 중소기업과 영세 사업장은 공장 중단과 동시에 인력 감축 압박에 맞닥뜨렸다. 산업의 가장 밑을 떠받치는 고용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실제로 인천 남동공단 인근에서 건설자재와 각종 철근제품을 만드는 70대 B씨의 공장은 한달에 3억 원 정도였던 매출이 1년 사이 반토막이 났다.
가족처럼 일해온 몇 안 되는 직원들에게 기약 없는 '휴직'을 권고하고, 사실상 1인 사장이 돼야 할 실정이다. 20여 년 공장을 운영해오면서 처음 겪는 위기다.
B씨는 "일거리가 없어 직원들에게 뭘 시켜야 할지 모르겠다"며 "상반기까지 버텨보겠지만, 결국 식구(직원)들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토로했다.
철강업 4중고 직격탄, 셧다운 속 노사 긴장 고조
인천지역 철강업계 노동자들과 김교흥 국회의원 등이 간담회에서 관련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김 의원실 제공철강업에 드리워진 불황의 그늘이 노동자들을 덮쳤다. 공장 가동 중단과 매출 급감이 현실화하고,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의 '벼랑 끝'에 몰렸다
17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철강업계는 중국산 저가 공급 과잉, 건설경기 침체, 미국의 관세 폭탄, 전기료 인상 등 '4중고'에 처해 있다.
매출 감소는 주문 축소로 이어졌고, 일부 공장은 가동을 멈췄다. 철근 생산 '빅3'로 꼽히는 대형 업체마저 일시적 셧다운으로 생산비를 줄일 정도다.
인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인천 동구에 있는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등 주요 업체의 지난해 철근생산설비 가동률은 50%대로 떨어졌다. 공장 절반 가까이 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멈춰버린 설비만큼, 노동자들의 삶도 흔들린다.
연합뉴스고용 불안에 처한 노동조합은 그나마 건설 수요가 유지되는 H빔 제조라인으로 전환하거나, 연구·개발 시설을 확충해 인력을 재배치하자고 주장한다. 단순 휴업이 아닌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경영난에 빠진 회사 측은 신규 투자 등에 난색을 표하며, 일각에서는 노사 간 긴장감도 감지된다.
사측은 "유휴 인력에 대한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며 직원들을 달래고 있지만, 노동자들 입장에선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급여와 전환 배치 등에 대한 걱정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에 쏠린 눈
인천 동구청사 전경. 동구 제공이에 지자체와 유관기관 등은 공동 대응에 나섰다. 철강업 침체로 인한 지역경제 악화와 고용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취지다.
인천에서는 이르면 다음 달 인천상공회의소 주도로 '철강산업 위기극복 민관협의체'가 출범할 예정이다. 정책 자문과 정부 공동 건의가 주요 역할이다.
인천시 동구는 지역 내 철강업체의 매출, 법인세, 고용 인원 등을 조사한 뒤 정부에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을 신청할 방침이다.
지정될 경우 △경영안정자금 지원 △대출 만기 연장 △원금 상환 유예 △지방투자촉진보조금 우대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 여부가 향후 고용 유지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인천 동구 관계자는 "유관기관들과 협력해 철강업의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을 추진 중"이라며 "가장 열악한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지원해 업계 전반의 안정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