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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날을 반성할게"…후회만 남은 캄보디아 5개월,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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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모든 날을 반성할게"…후회만 남은 캄보디아 5개월,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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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29살 청년 오선호(가명)씨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을 두고 캄보디아로 떠났다. 일확천금을 노린 잘못된 선택. 처음 보이스피싱에 투입될 당시 저항도 해봤지만, 압도적인 폭력 앞에 금방 순응했다. 그리고 어느새 스캠 조직에 녹아들어 범죄에 적극 가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원히 폭력이 일상화된 환경에서 범죄를 벗 삼아 살 수는 없었다. 목숨을 건 탈출 끝에 한국으로 돌아와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일자별로 기록된 그의 입국 전 자수서와 가족에게 보낸 편지, 검찰의 공소장, 검경 피의자 신문 조서 및 사건 관계인 피의자 신문 조서 그리고 가족과 변호사의 인터뷰 등을 토대로 선호씨가 겪은 캄보디아 5개월간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캄보디아 지옥의 재구성⑤]
    귀국과 동시에 수감된 선호씨, 옥중 인터뷰
    "제가 살려고 남 죽인거죠…정말 죄송합니다"
    변호인 "지속적 구조 요청…강요에 따른 행위"
    '강요'와 '자발', 그 모호한 경계에서 法심판 기다려
    "모든 일이 끝나면 아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게"

    지난 11일 서울 동부구치소 면회실에서 선호씨를 만났다. 김수정 기자지난 11일 서울 동부구치소 면회실에서 선호씨를 만났다. 김수정 기자
    (전편 요약) 대사관에 마침내 닿은 구조 요청으로 선호씨와 종우씨는 캄보디아 범죄단지에서 빠져나왔다. '이제 살았구나'라는 안도감도 잠시, 두 사람에겐 또 다른 지옥이 시작됐다. 자신들을 관리하던 한국인 구모 팀장과 중국인 '페페'와 함께 유치장에 수감됐기 때문이다. 매일 가족의 신변을 위협하거나 다시 범죄단지로 돌려보내겠다는 협박이 이어졌다. 페페는 경찰에 2만 달러를 건네고 유치장을 빠져나갔다. 한국에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던 선호씨는 구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경찰에 자수했다. 5개월 만에 귀국한 선호씨와 종우씨는 공항에서 곧바로 경찰에 체포됐고, 이들에 대한 재판은 이제 막 시작됐다.

    ▶ 글 싣는 순서
    '개당 500만원' 통장 팔러 떠나 '살인마 리광호'를 만나다
    이름 지워진 범죄생활, 활동명 '영배'…'노쇼 사기' 티키타카
    '당근과 채찍' 녹아든 범죄생활…입속 전기고문에 '탈출할 결심'
    "킬러 보내서 죽여줄까?" 페페는 그렇게 유치장을 나갔다
    ⑤"모든 날을 반성할게"…후회만 남은 캄보디아 5개월, 그 후
    (계속)

    "제가 살려고 남을 죽인 거죠. 피해자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면회실로 죄수복을 입은 선호씨가 들어왔다. 유리 벽 너머로 기자와 마주 앉은 그는 몇 초가 지나서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구치소에 수감된 지는 어느덧 석 달이 지났지만, 그의 시간은 여전히 멈춰있다. 자신이 저지른 행위의 무게를 하루하루 통감하며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에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선호씨가 가담한 '노쇼 사기'로 피해자들은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억대가 넘어가는 돈을 잃었다. 선호씨는 그런 사실에 대한 죄책감이 컸다고 말한다. 폭력이 일상화된 공간에서 '말 잘 듣는 직원'이 되는 것은 잠시의 안락함을 얻는 대신 피해자들에 대한 죄책감을 짊어지는 일이었다.

    "제 행동으로 누군가는 전 재산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까 하루하루가 더 힘들었습니다."

    그 돈이 얼마나 큰 돈인지, 일용직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던 선호씨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정말 많이 후회하고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고문을 당하면서.. 이걸 하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 일단 내가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했던 것 같아요."

    선호씨는 살기 위해 일을 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겪은 폭력과 공포가 범죄 행위에 가담한 사실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 역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폭행과 협박의 피해자와 보이스피싱 범죄 가담자라는 두 정체성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도 스스로를 쉽게 규정하지 못한 채 말을 이어갔다.

    "제 노력으로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잖아요. 아무리 제가 가서 폭행을 당하고 협박받았다고 해도, 그게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란 걸 알고 있어요. 그런 선택을 했으면 안 됐는데..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선호씨 몸에 아직 남아있는 폭행의 흔적들. 선호씨 제공선호씨 몸에 아직 남아있는 폭행의 흔적들. 선호씨 제공
    선호씨는 경찰에 자수를 결심하기까지도 많이 고민했다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모든 일을 숨긴 채 한국으로 돌아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결국 자수를 결심했던 계기는 한국에 있는 그의 가족이었다. 올해로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된 아들 생각이 났다.

    "몇 년이 지나서도 과연 제가 떳떳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호씨의 수차례 구조 요청 기록. 선호씨 제공선호씨의 수차례 구조 요청 기록. 선호씨 제공
    자신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가족이 잘못되면 어쩌나 두려웠다고도 한다. 현지 경찰에 의해 구조된 후에도 선호씨를 관리했던 한국인 구 팀장과 중국인 '페페'에게서 가족의 안전을 위협하는 협박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선호씨가 재판부에 제출한 반성문 곳곳에도 뼈저린 후회의 흔적이 보인다.

    "아내와 사별한 후 홀로 아이를 키우며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어떻게든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그릇된 생각과 짧은 판단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현혹돼 캄보디아로 향하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반성문 中)

    강요와 자발, 그 모호한 경계에서

    서울동부지검은 지난해 12월 8일 선호씨와 친구 종우씨를 범죄단체활동과 가입, 사기, 전기통신금융사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현재 두 사람은 서울 동부 구치소에 수감돼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11일 경기 광명역 근처에서 선호씨 변호인인 노바법률사무소 이돈호 대표변호사를 만났다. 이충현 기자지난 11일 경기 광명역 근처에서 선호씨 변호인인 노바법률사무소 이돈호 대표변호사를 만났다. 이충현 기자
    앞으로 남겨진 재판에서 가장 큰 쟁점은 선호씨의 범죄 가담 행위가 '강요에 의한 행위였는가' 여부다. 선호씨 변호인 측은 이를 두고 "강요와 자발의 경계에 놓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노바법률사무소 이돈호 대표 변호사는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범죄는 국내 보이스피싱 사건과 달리 '단지'라는 철통 통제 환경에서 이뤄진다"며 "환경적 요소가 크게 작용해 적극적인 수단을 동원해도 탈출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일부 가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전면적으로 자발적인 가담자도 있고, 강제로 끌려간 경우도 있으며, 강요로 시작했으나 점점 자발로 전환되는 경우 등 다양한 사례가 있다"며 "선호씨의 행위 역시 전면적으로 강요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도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선호씨 측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범죄에 가담했다는 입장이다. 노바법률사무소 소속 김태환 변호사는 "선호씨가 리광호, 구 팀장 등 상선과 관리자로부터 폭행과 협박을 받았고, 전기충격기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했던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했다"며 "캄보디아 대사관에 여러 차례 지속적으로 구조를 요청했던 부분 역시 강요에 따른 행위에 가까웠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선호씨를 처음 접견했을 때를 아직 기억한다. 갑자기 제 앞에서 옷을 훌렁 벗어 상처를 보여줬다"며 "곳곳에 폭행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었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수사기관은 실제 피해자가 발생했고, 피해액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선호씨의 자발성을 의심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해외 범죄 특성상 객관적 증거 확보가 쉽지 않아 피의자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행위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기까지 그 실체적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통장을 팔러 캄보디아로 떠난 그 잘못된 선택에서 모든 비극이 시작됐다. 감옥과도 같은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범죄단지로 팔려갔고, 그곳에서 폭행과 협박 속에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했다. 일부 선호씨가 선택한 일들도 있었겠지만, 선택할 수 없던 일들도 있었을테다. 선호씨가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는 이제 사법부의 판단에 달려있다.

    선호씨가 구치소에서 아버지에게 보낸 자필 편지 일부. 선호씨 아버지 제공선호씨가 구치소에서 아버지에게 보낸 자필 편지 일부. 선호씨 아버지 제공

    "날이 많이 추운데 우리 가족들 건강히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다들 너무 보고 싶어요. 좋은 아들이 되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실형에 처해지겠지만, 모든 일이 끝나면 아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게, 또 아버지께서 걱정할 일들이 없게끔 지난 인생의 모든 날들을 반성하며 꼭 깨달음을 안고 돌아가겠습니다." (선호씨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中)

    선호씨 아들과 선호씨 부모님이 함께 찍은 사진. 선호씨 아버지 제공선호씨 아들과 선호씨 부모님이 함께 찍은 사진. 선호씨 아버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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