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당시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를 전달하는 등 내란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1심 선고가 열린 12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12·3 비상계엄 당일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주요 언론사 등에 대한 단전·단수 지시를 받고 이행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 1심에서 징역 7년이 선고됐다. 지난달 한덕수 전 총리 판결에 이어 법원이 "12·3 비상계엄은 내란"이라고 재확인했지만, 죄질에 대한 평가는 큰 차이를 보였다.
법원, 12·3 비상계엄은 내란…李 중요임무 수행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류경진 부장판사)는 내란중요임무종사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위증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 전 장관에 대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내란과 일부 위증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고 직권남용 혐의엔 무죄 판결했다.
유·무죄 판단에 앞서 재판부는 우선 12·3 비상계엄은 내란 행위였다는 점부터 짚었다. 재판부는 "윤석열·김용현 등은 국회와 야당 당사 및 언론사를 물리적으로 봉쇄해 이들의 기능을 마비시키거나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를 영장 없이 압수수색하고자 했다"며 "이는 헌법의 대의제, 민주주의, 민주적 기본질서의 규범적 효력을 상실케 하고 국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케 하려는 국헌문란의 목적 아래 이뤄진 행위들"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윤석열·김용현 등이 일련의 지휘체계에 따라 집단적으로 다수의 군병력과 경찰력을 동원해 국회와 선관위를 점거, 출입통제하고 그 활동을 제한하려 한 이상, 이들은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다수인이 결합해 유형력을 행사하고 해악을 고지함으로써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위력이 있는 폭동, 즉 내란행위를 일으켰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과정에서 이 전 장관이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주요 기관 봉쇄 계획과 단전·단수 조치를 지시하는 문건을 교부받고,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 지시를 이행했다고 판단했다.
이 전 장관은 집무실 탁자 위에 있는 문건을 얼핏 봤을 뿐 문건을 전달 받은 적이 없고, 허석곤 소방청장에게 건 전화도 경찰의 협조요청이 오면 "신중 대응하라"는 취지였다고 항변해왔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통령실 CCTV가 이번에도 결정적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CCTV 화면 속에서) 본인이 세 차례에 걸쳐 상의 안주머니에서 꺼내 펼쳐보고 약 11분간 한덕수와 주고받고 손으로 짚어가며 대화를 나눈 문건이 무엇인지 피고인 스스로도 특정조차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전 장관은 해당 문건이 12·3 당일 본인이 출장을 다녀온 울산 김장행사 관련 인터뷰 자료나 일정표 등일 것이라는 가능성만 제기했는데, 재판부는 "한덕수는 당시 피고인으로부터 당일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전 장관은 울산 김장 행사에 동행한 아내와 연락 없이 서울로 온 탓에 아내의 귀가를 걱정하며 일정표를 봤다는 취지로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한덕수와 대화를 나눌 시점엔 일정상 아내는 이미 김포에 도착해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소방청에 단순 업무 협조를 말했다는 이 전 장관 주장도 배척했다.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 직접 그 소속 외청인 소방청의 장에게 특정 언론사에 대해 경찰이 투입되는 것과 관련한 구체적 업무지시를 했다는 판단이다.
이 전 장관과 허석곤 전 소방청장의 전화 이후 허 전 청장이 이영팔 전 소방청 차장 등과 소방청의 업무에 단전·단수가 포함되는지 등에 관해 논의한 사실이나 이들이 일선에 전화해 경찰이 실제 협조요청을 했는지를 물은 점 등이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들에 물리적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은 내란행위에 대한 비판 여론 결집을 저해하고 전체 내란행위를 용이하게 해 내란행위로 달성한 상태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짚었다.
"이상민-조지호 실제 통화…직접 협조 지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사진공동취재단또 이 전 장관은 계엄 당일 조지호 전 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가 다른 통화 중이어서 제대로 대화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두 사람이 실질적인 통화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지시 문건을 교부받은 데 그치지 않고 직접 경찰청장에게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에 대한 협조를 지시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윤석열·김용현 등이 계획한 개별적 폭동행위 전부를 사전에 모의하거나 관여한 바 없다 하더라도 내란행위 실행 착수 직전 중요임무 관련 지시를 받고 그에 따라 내란이 개시된 후 그 개개 행위에 부분적으로 참여해 가담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정부 고위 공직자로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수호해야 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헌법과 법률을 수호·실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헌법적 의무를 부담함에도 내란행위에 가담해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단전·단수와 관련해 적용된 직권남용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이 전 장관에게 직권은 있으나 실제 단전·단수 관련 지시가 구체적으로 이행되진 않아 '의무 없는 일'이 발생하진 않았다는 취지다.
이 전 장관이 '단전·단수 문건을 받은 적이 없다'거나 '조태열 전 장관이 문건을 받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한 진술에 대해서도 위증죄가 인정됐다. 다만 계엄 선포 시각에 가까운 때에 최상목 전 장관이 문건을 받은 것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한 부분은 다른 비슷한 상황에 있었던 국무위원들의 진술과 비교했을 때 위증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비난가능성 크다"면서도…내란임무는 "전화 한 통"
재판부는 "피고인이 윤석열·김용현 등의 내란행위를 적극적으로 만류했다고 볼만한 자료는 없고 오히려 이후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위증까지 한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더욱 크다"면서도 "피고인이 내란중요임무로 수행한 행위는 소방청에 대한 전화 한 통"이라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또 △피고인이 비상계엄 선포일 이전에 내란을 모의하거나 예비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은 점 △단독·반복적으로 단전·단수 조치를 지시하거나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보고를 받는 등 적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점 △단전·단수 조치 실행을 주도적으로 계획하거나 이를 지휘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 점 △결과적으로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 조치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 등을 유리한 양형이유로 거론했다.
앞서 특검은 한 전 총리와 이 전 장관에 대해 각각 징역 15년으로 같은 형량을 구형했는데 실제 선고형은 3배 이상 차이 나게 된 상황이다. 한 전 총리의 1심에선 징역 23년이 선고됐다.
특검은 "형량에 많은 아쉬움이 있다"며 "판결 이유를 면밀히 분석한 후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