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 전경. 대한상의 제공고액 자산가들의 상속세 부담을 과장하기 위해 사실상 엉터리 통계를 인용한 자료를 발표해 큰 물의를 빚고 있는 대한상공회의소가 파문 진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9일 대한상의는 "외부 기관에서 발표한 통계를 충분한 검증 없이 인용해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한 데 다시 한번 깊은 사과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지난 7일 같은 내용으로 사과한 지 불과 이틀 만에 거듭 몸을 한껏 낮춘 것이다.
앞서 대한상의는 지난 3일 배포한 보도자료 '상속세수 전망분석 및 납부방식 다양화 효과 연구'에서 "50~60%에 달하는 상속세 탓에 지난해 2400여 명의 고액 자산가가 외국으로 이탈했다"고 주장했다.
대한상의는 주장의 근거로 영국 민간 업체 '헨리앤파트너스' 조사 내용을 인용했는데, 해당 업체는 대한상의가 보도자료에 적시한 대로 이민자가 많을수록 수익이 커지는 '이민 컨설팅사'에 불과하다. 게다가 '링크드인(LinkedIn)' 등 소셜미디어 프로필상 근무지 파악이 중심인 헨리앤파트너스 조사 방식은 영국 유력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 등에 의해 '부실' 지적이 이어져 왔다.
대통령 "고의적 가짜뉴스" 직격 후에야 "깊이 사과"
보도자료 발표 직후부터 신뢰성 논란이 일자 대한상의는 발표 당일 뒤늦게 "헨리앤파트너스 통계는 학술적·공식 통계로 인용하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존재한다"며 언론에 '인용 자제'를 요청했다. 그러나 잘못을 명백하게 인정하지 않은 대한상의의 어정쩡한 입장 표명은 파문 확산을 막기에 한참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지난 7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대한상의 보도자료를 '고의적 가짜뉴스'로 직격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에 당시 미국 출장 중이던 최태원 대한상의 의장까지 대한상의 사무국을 질책했고, 그제야 대한상의는 "외부 통계를 충분한 검증 없이 인용해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했다"며 공식 사과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인 지난 8일에는 구윤철 재정경제부 장관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임광현 국세청장이 일제히 대한상의에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구윤철 장관은 '가짜뉴스 생산·배포에 따른 응분의 책임'을 대한상의에 경고했고, 김정관 장관은 '대한상의 즉각 감사 착수'를 산업부에 지시했다.
임광현 청장은 대한상의 주장의 허구성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실제 외국으로 이주하는 고액 자산가 수는 대한상의 주장의 1/17 수준인 연평균 139명이라는 것이다.
김정관 장관은 9일에도 오전 일찍 대한상의와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 6단체와 긴급 현안 점검회의를 갖고 이번 사태의 심각성과 재발 방지를 강력하게 환기했다.
전 직원 '통계 신뢰도 검증 및 분석 역량 제고' 교육
이에 대한상의는 "이번 사안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향후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외 발표 자료 작성 및 배포 전반에 걸쳐 내부 검증 시스템을 대폭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한상의는 먼저, 전면적인 내부 시스템 정비에 나서기로 했다. 통계 신뢰도 검증 및 분석 역량 제고를 위해 조사연구 담당 직원들부터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즉시 시행하는 등 전 직원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시행할 예정이다.
특히 대한상의는 사실관계 및 통계의 다층적 검증 의무화를 위해 이날 자로 박양수 대한상의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박양수 원장을 팩트체크 담당 임원으로 지정했다. 박양수 원장은 한국은행 출신으로,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은 경제통계국장과 경제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대한상의는 또, 발표 자료의 철저한 검증과 정확한 의사 전달을 위해 독립적인 외부 전문가를 활용하는 검증 체계도 도입하기로 했다.
한편, 대한상의는 "산업부 감사와 별도로, 자체적으로 이번 사태 책임 소재를 파악해 응분의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