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 시제품(왼쪽)과 아틀라스 개발형 모델. 연합뉴스최근 현대자동차 노조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도입에 반발하며 낸 성명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재명 대통령은 "밀려오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피할 수 없다"며 과거 영국의 기계파괴 운동(러다이트)에 빗댔고, 여론은 노조를 '혁신의 발목을 잡는 집단'으로 몰아세웠다.
현장에서 직접 들은 목소리는 '로봇 도입 반대'로 요약된 외부의 인식과는 사뭇 달랐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세상 흐름을 모를 리 없다. 기술 도입 자체를 막자는 게 아니라, 회사가 던지고 노조가 받는 식의 일방통행이 아니라 도입 과정부터 함께 논의하자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노조의 투쟁은 맹목적인 거부가 아니라, 자본이 독점하려 했던 기술 도입의 속도와 방향을 '사회적 합의'의 영역으로 끌어내려는 시도다. 기술 만능주의에 제동을 걸고, '인간을 위한 속도'를 협상 테이블에 올린 일종의 '브레이크'에 가깝다. 인공지능(AI)의 '노동 암살'을 다룬 기획의 마지막 ③편에서는 기술과 노동이 적대적 관계를 넘어 공존하기 위한 필수 조건, '사회적 거버넌스'를 모색한다.
AI는 자동화가 아니다…'사전 협의'가 빠진 전환의 위험
현대차그룹 제공전문가들은 AI가 기존의 자동화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경고한다. 단순한 업무 보조를 넘어, 인간의 판단과 숙련 자체를 대체하려 하기 때문이다.
사회공공연구원 박재범 연구위원은 "기존 자동화가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AI는 인간이 가진 숙련 노동의 알고리즘을 학습해 궁극적으로 인간을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진단했다.
박 위원은 "노동자가 자신의 숙련 데이터를 AI 학습용으로 제공하는 주체임에도, 정작 도입 과정에서는 배제되고 있다"며 "경영진은 AI 도입의 목적이 노동 보조인지, 완전 대체인지 투명하게 밝히고 도입 단계부터 노조와 사전 협의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차 노조의 반발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정당한 '데이터 주권'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효율성 측면에서도 노사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들은 흔히 노조와의 협의를 '비용'이나 '시간 낭비'로 치부하지만, 노동자와의 사전 논의가 오히려 기술 도입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경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위원은 "완벽하지 않은 기술을 '혁신'이라는 포장만 믿고 밀어붙이다가는 기업도 손해를 본다"며 "도입 단계부터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학습시킬지, 위험 요소는 무엇인지 검증하는 거버넌스 과정을 거쳐야만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현대차 노조의 요구가 단순한 '밥그릇 지키기'를 넘어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합리적 제안이라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유럽은 '노동자 참여' 제도화…미국도 방향 전환
자동화된 현대기아차 공장. 연합뉴스해외 선진국들은 이미 AI 도입 과정에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참여시키는 '거버넌스'를 제도화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 전용석 연구위원은 "독일은 '공동 결정 제도(Mitbestimmung)'를 통해 기술 혁신이 작업장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고 조율한다"며 "마치 환경영향평가처럼 AI 도입 시 노동자에게 미칠 위험을 구체적으로 평가하고, 해고 대신 직무 전환 교육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는 방안을 노사가 함께 모색한다"고 설명했다.
유럽연합(EU)의 'AI법' 역시 직장에 AI를 도입하기 전 노동자와 노조와의 협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유럽노총은 이러한 협의 절차가 오히려 노동자들의 AI 수용성을 높인다는 점을 강조한다.
'AI 빅테크의 본고장' 미국도 변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3년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 개발 및 사용에 관한 행정명령'을 발표하며 AI가 노동시장에 미칠 파장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미국 최대 노동조합인 미국노동총연맹(AFL-CIO)과 파트너십을 맺고 AI 기술 도입 과정에 노동자의 시각을 반영하기로 합의했다. 기업이 일방적으로 기술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노조를 '혁신의 파트너'로 인정한 상징적 사례다. 헐리우드 작가·배우 노조 역시 63년 만의 공동 파업을 거쳐 AI 사용에 관한 내용을 단체협약에 포함시켰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각자도생'에 가깝다. 지난 22일 시행된 'AI 기본법'은 산업 진흥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노동자 보호나 사전 협의 절차는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공공연구원이 펴낸 '공공·금융 콜센터 AI 도입 현황과 문제점 노동조합의 과제' 보고서는 "현행 AI 기본법과 하위 법령은 노동자의 권리 행사 절차를 전혀 규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AI 충격 인정…해법은 '적응'에 머물러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정부의 인식 역시 '산업 진흥'과 '개인 적응'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9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거대한 수레바퀴를 피할 수 없다"고 언급한 데 이어, 30일 '국가창업시대 전략회의'에서는 "평생 지켜오던 일자리를 기계가 대체한다고 하니 얼마나 공포스럽고 불안하겠느냐. 그 절박함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해법으로 '기본사회(기본소득)'와 '창업'을 제시했다.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이틀 연속 AI 전환 문제를 언급한 것은 사안의 중대성을 보여준다. 다만 해법이 결국 소득 보전이나 개인의 적응 노력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현장의 불안을 충분히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재범 연구위원은 "미국 빅테크가 주도하는 기술 패권 시대에 후발 주자인 우리가 기술 속도만 따라가다간 개인정보 침해와 기술 종속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며 "국가가 시혜적으로 소득을 보전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기술 도입 과정 자체에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공공적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용석 연구위원 역시 "정부가 AI를 산업 진흥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면 작업장에서 벌어질 위험을 간과하게 된다"며 "에너지 전환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도 노동자의 숙련이 해체되지 않도록 보호 장치를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AI 시대, 기술과 노동은 적이 될 필요가 없다. 적이 되는 순간은 노동자가 논의에서 배제될 때다. 현대차 노조가 쏘아 올린 신호탄은 "기술을 거부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우리와 상의하라"는 대화의 요청이다. 속도만큼 중요한 것은 노사정이 함께 AI의 설계도부터 점검하는 '정의로운 전환'의 거버넌스다. 이 브레이크를 성가신 장애물로만 인식하는 순간, '노동 암살'은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