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두로 체포 위한 '확고한 결의' 작전 지켜보는 트럼프. 연합뉴스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한 이유로 미국으로의 마약 유입 차단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세계 1위 원유 보유국의 석유 인프라를 재건해 미국의 이권을 되찾겠다는 뜻도 분명히 하면서 철지난 제국주의적 행보를 답습한다는 비판에도 직면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1년 전인, 재집권 직후 자택인 마러라고에서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에 대한 소유욕을 공개적으로 언급해 주위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이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번 마두로 대통령 체포를 보면서 미국이 과거 무력 외교 시대로 되돌아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게 됐다.
다시 베네수엘라 얘기로 돌아가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마두로 체포 작전이 끝난 후 몇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3일(현지시간) 오전 11시 마러라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두로 정권 축출 배경에 '마약 유입 차단'이 있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불법 독재자 마두로는 치명적인 불법 마약을 미국으로 대량 유입시킨 거대한 범죄 조직의 핵심 인물"이라며 "마두로가 잔혹한 마약 카르텔을 직접 지휘했다"고 말했다.
타국의 정상을 체포하는 것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마두로 정권의 마약 밀매를 전면에 앞세운 것이다.
기자회견에 자리를 같이 한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들도 마두로의 역외 송환에 법적 근거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역외 송환되는 모습. 연합뉴스마두로 대통령은 지난 2020년 마약 밀매와 관련된 일련의 혐의들로 미국 당국에 의해 기소된 바 있다.
이번에 새로 공개된 공소장에는 마두로 대통령은 물론 그의 부인과 아들, 베네수엘라 내무장관 디오스다도 카베요 등이 기소 대상에 추가됐다.
이들이 미국이 테러 조직으로 지정한 콜롬비아의 옛 반군조직 FARC 및 마약 카르텔과 연계해 수천 톤의 코카인을 미국으로 반입했다는 게 미국 정부의 주장이다.
이는 마두로 대통령과 가족·측근이 범죄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장악할 수 있다는 보증수표는 아닌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베네수엘라를 무기한으로 '운영'하고, 이 나라의 막대한 석유 매장량을 이용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지배를 당연시했다.
그는 "베네수엘라는 일방적으로 미국의 원유, 자산, 플랫폼을 몰수해 팔아넘겨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입혔다"며 "역사상 가장 큰 재산 절도 사건"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 좌파 정권으로 손실을 입은 미국 정유사들을 위해 미국이 이권을 적극적으로 챙기는 게 정당하다는 논리인 것이다.
앞서 마두로 정권은 재집권한 트럼프 행정부가 해상 선적 나포 등 전방위적으로 베네수엘라를 압박해오자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의 정권 교체를 꾀하고 천연자원을 약탈하려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미국이 석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연합뉴스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베네수엘라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계획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언제든 '2차 군사 행동'이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베네수엘라에 지상군 파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하지만 섣불리 앞날을 예단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두로 축출을 넘어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에 지상군을 파병하고, 석유 시추권 등 경제주권을 주무를 경우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어떻게 반응할 지는 아직 모른다.
이후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선거가 치러진다고 해도 미국 입맛에 맞는 순종적인 정부가 들어선다는 보장도 없다.
'미국은 끝없는 외부 전쟁에 에너지를 쏟는 대신 내치를 우선해야한다'는 마가(MAGA·트럼프 핵심 지지층) 진영에서도 분열이 생길 수 있다.
연합뉴스한편 마두로 축출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야심이 본색을 드러낸 만큼, 향후 그린란드 등에서 비슷한 사례가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지난달 21일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를 '그린란드 특사'에 임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우크라이나와 중동 등 분쟁 지역에 자신과 가까운 인물들을 특사로 보내왔는데, 이제 인구 6만 명의 그린란드도 졸지에 미국의 특사 파견 지역이 된 셈이다.
랜드리 주지사도 "그린란드를 미국의 일부로 만들기 위한 봉사에 참여할 수 있게 돼 영광"이라는 노골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특사가 흔한 것도 아닌데, 그린란드 전담 특사가 임명된 것은 그린란드가 미국 최고위급에서 매우 중요한 관심사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마두로 축출에 대해 국제법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미국의 개입은 매우 위험한 선례(dangerous precedent)를 설정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힘이 센 국가가 다른 국가의 정권을 군사력으로 전복하고 통치하겠다고 선언하면, 국제 질서에서 유사 개입 사례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위험이 크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영국 가디언은 이번 작전을 아예 "미국 외교 정책의 푸틴화"(Putinization of US foreign policy)라고 평가했다.
"한 번 허용되면, 다음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