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 필리조선소의 골리앗 크레인. 연합뉴스미국 조선업 부활 프로젝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가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직접 무대를 마련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미 해군의 '황금 함대(golden fleet)' 구상을 발표하면서 이 함대에 편입될 신예 프리깃함(호위함)을 한화와 협력해 건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화를 "좋은 회사"라고 추켜세우며 "한화가 필라델피아 조선소에 50억달러(약 7조4천억원) 이상 투자하기로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와 한국 조선업이 원했던 방향대로 흘러가는 점도 고무적이다. 최첨단 기술과 막대한 물량을 자랑하는 미 해군의 군함건조 사업으로의 진출이 우리로서는 최종목표다.
외국에 철저히 닫혔던 군함건조 사업에 들어설 수만 있다면, 한국 조선업은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확실한 카드를 지니게 될 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 차원에서도 엄청난 수혜가 예상된다. 특히 한국 조선업이
미 해군 최고의 전략자산인 핵잠 건조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필리 조선소를 하루빨리 미국형 핵잠수함 건조가 가능한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늘어나는 이유다.
美 2054년까지 핵잠(SSN) 59척 건조 목표지만… 턱없이 떨어지는 건조능력
핵추진 잠수함은 무제한 항해와 은밀성, 여기에 동반된 핵 억지력 때문에 현대전에서 가장 강력한 전략무기로 꼽힌다. 미 해군의 핵심전력인 오하이오급(Ohio-class) 전략핵잠수함(SSBN)이 대표적이다. 미 해군은 오하이오급 14척을 차세대 컬럼비아급으로 대체한다는 계획 아래 컬럼비아급 핵잠 12척의 추가 건조를 진행하고 있다. 이 중 10척의 발주가 2026~2035년까지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퇴역하는 잠수함 전력을 대체하기 위해 2054년까지 다목적 공격용 핵잠(SSN) 59척을 건조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문제는 미국의 핵잠 건조 역량이다. 미국의 잠수함을 비롯한 군함 건조능력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기점으로 심각한 수준으로 저하됐다. 올해 3월 발간된 미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경부터 미국의 핵잠 건조 산업기반이 실질적으로 연 2척을 완성하지 못하게 됐고 그 결과 조달 계약만 체결되고 완성되지 못한 미인도 물량(backlog)이 쌓이고 있다. 특히 2022년 이후부터 잠수함 건조 능력은 더욱 악화돼 실제 완성률이 연 1.1~1.2척 수준까지 저하됐다고 지적했다.(Navy Force Structure and Shipbuilding Plans: Background and Issues for Congress)
반면 미 해군 전력을 뒤쫓고 있는 중국의 추격 속도는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2023년 미 국방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16척인 핵잠을 2040년까지 70척으로 늘린다는 계획 아래 건조를 진행 중이다.
미국은 현재 핵잠 건조 능력을 보유한 민간 조선소가 2개뿐인데 반해 중국은 세계 1~2위를 다투는 조선업 생태계를 자체 보유하고 있다. 필리 조선소가 핵잠 건조능력 보유한다면? 美핵잠 건조 가능성
23일 부산 해군작전기지에 미 해군 핵 추진 잠수함(SSN) 그린빌함이 입항하고 있다. 연합뉴스양국의 현실적인 핵잠 건조능력을 감안한다면 미국과 중국의 핵잠 전력 역전은 시간문제다. 미국 내부에서 조차 미국 독자적으로 핵잠 건조를 고집한다면 2054년 다목적 공격용 핵잠(SSN)은 38척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화가 인수한 필리조선소가 핵잠 건조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미국이 일부 물량을 맡길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핵잠 건조를 승인하며 필리 조선소를 언급한 대목을 한국이 사용할 핵잠의 미국 건조의 의미가 아니라
미국의 핵잠 건조 역량을 강화하는데 필리 조선소가 역량을 발휘해달라는 뜻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이 원하는 저농축 우라늄 원료의 중형급 핵잠은 미국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필리조선소 등 한국이 보유한 미국 조선소나 한국 조선소가 미국 핵잠 건조에 참여할 경우 한국은 막대한 경제·안보상 이득을 기대할 수 있다. 대당 건조비가 천문학적인 핵잠 건조 참여로 인한 수익 창출은 물론이고 한국형 핵잠 건조 기술과 핵연료 생한 자립 시기를 앞당기는데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필리 조선소 핵잠 건조 기반 확보에 마스가 1500억 달러 활용해야"
미국 핵잠 건조에 한국 조선업계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현재 한국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필리 조선소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국가안보실에서 방위산업담당관 등을 역임한 최용선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은 "어차피 마스가 1500억달러를 반드시 투자해야 한다면 현저하게 떨어진 미국의 핵잠 건조 역량 복구를 위해 한국이 소유한 필리 조선소의 핵잠 건조 능력을 확보하는데 투자하겠다는 전략적 제안을 우리가 먼저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방사청 한국형잠수함사업단에서 일했던 류성곤 에스앤에스이앤지 상무는 지난 4일 국회 세미나에서 "국내 업체가 인수한 미국 조선소 또는 국내 조선소에서 미국 핵잠을 포함한 미국 함정 건조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마스가 프로젝트를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