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남연년)의 길'에 설치된 소원의벽 주변. 최범규 기자| ▶ 글 싣는 순서 |
① 청주 '관아지 옛길' 흉물 방치…도심 속 역사·문화 퇴색 (계속) |
"역사가 있는 길이면 뭐해요. 관리도 안 해서 그저 쓰레기만 널렸는데…"
충북 청주시가 거리 이미지를 탈바꿈하기 위해 청주읍성 주변에 조성한 관아지 옛길의 현주소다.
청주시 성안길 관아지 옛길 조성사업의 3구간인 '수백(남연년)의 길'.
골목에 들어서자, 바닥 곳곳에는 담배꽁초가 널려있었고 껌과 오물 자국이 가득했다.
볼거리 공간이라며 조성한 '소원의 벽'과 나무 철조망에는 언제 걸어놨는지도 모를 녹슨 자물쇠와 낙서, 불에 그을린 흔적만 남았다.
소원의 벽 뒤에는 각종 건축·생활 쓰레기가 뒤엉켜 있었다.
수백(남연년)의 길 조형물 뒤에 쓰레기와 적재물이 쌓여있다. 임성민 기자이곳에서 만난 한 시민(30대·여)은 "여기가 역사가 담긴 장소라는 건 생각도 못 했다"며 "청소년들 모여서 담배 피우는 우범지대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옛길인 '의숙의 길(1구간)'과 '춘경의 길(2구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낡은 안내 표지판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었다. 주변에 그려놓은 벽화는 색이 바랬거나 일부는 뜯겨나가 있었다.
역시 길가에는 담배꽁초, 일회용 컵, 과자 봉지 등 생활 쓰레기가 나뒹굴었다.
춘경의 길 근처에서 3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사람들이 골목에서 담배를 얼마나 피우는지 콩 뿌려놓은 것과 똑같다. 주변이 온통 쓰레기장"이라며 "새벽 청소 차량도 이곳에는 들어오지 않아 상인들이 몇 년째 청소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춘경의 길(2구간). 안내 표지판 위에 적치물이 올려져있다. 임성민 기자관아지 옛길 정비 사업은 역사와 문화 정체성 회복과 도심 환경 개선을 위해 2012년 야심차게 추진된 프로젝트다.
청주시는 당시 5억 3700만 원을 들여 역사 골목 8곳을 스토리텔링이 있는 문화·역사 체험 공간으로 꾸미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8곳 가운데 1차 사업 구간인 '의숙의 길', '춘경의 길', '수백의 길' 등 3곳만 겨우 조성됐다. 나머지 5개 구간은 시작도 못하고 사업이 중단됐다.
이마저 조성된 3개 길도 무려 10년이 넘도록 관리에서 손을 놨다.
청주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담긴 '관아지 옛길'을 조명하겠다는 청주시의 거창한 구상이 지금은 기억에서조차 사라지고 있다.
청주시 관계자는 "과거 담당자들이 수차례 바뀌고 10년이 넘은 사업이어서 현재 관리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며 "도시 재생 사업에 따른 개선 방안을 고려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