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백해룡 경정이 출석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백해룡 경정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서울동부지검 합동수사단(합수단)이 내린 결론은 크게 세 가지다. ①인천세관 직원은 마약 밀수를 돕지 않았다 ②용산 대통령실 차원에서의 개입은 없었다 ③경찰 지휘부가 일선 수사팀에 외압을 행사한 사실도 없다는 것이다.
의혹 핵심 근거들 줄줄이 설득력 잃어
10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백 경정은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던 2023년 마약 밀수 사건을 수사하다 말레이시아 국적 운반책으로부터 인천공항에서 세관 공무원 도움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후 백 경정은 세관 등으로 수사를 확대하다 지난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과 경찰 지휘부로부터 외압을 받고 지구대장으로 좌천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마약 밀수범들을 인천세관 직원이 도왔다는 의심은 이 사건을 여기까지 끌어온 핵심 근거였다. 그러나 합수단은 백 경정이 이끌던 영등포서 수사팀이 확보한 말레이시아인 운반책의 진술이 오염됐다고 판단했다. 2023년 9월 인천공항 실황조사 영상에 마약 밀수범들 사이 허위 진술을 종용하는 장면이 포착됐다고 한다.
합수단이 제공한 당시 현장 영상을 보면 밀수범 A씨가 공범 B씨에게 말레이시아어로 "그냥 연기해라", "솔직하게 말하지 말아라"라고 말한다. 입국 심사대 앞에서는 밀수 상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B씨에게 "그냥 아무 심사대나 하나 골라서 서"라고 한다. 합수단은 당시 현장에 중국어 통역만 있었기 때문에 밀수범끼리 말레이시아어로 나눈 대화를 경찰이 알아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A씨는 수감 중이던 이듬해 3월 경찰 조사과정에서 세관 직원에 관해 허위로 진술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B씨에게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이 편지에서 A씨는 "세관 관련해 기억이 안 난다고 말을 했는데 경찰관이 '이미 진술한 내용이 있어 바꿀 수 없다'고 해서 세관 직원들이 연루됐다고 진술했다"고 썼다.
입국 과정에서 농림축산부 검역대를 통과했다는 밀수범 진술을 경찰이 제지한 뒤, '세관 쪽 검색대를 통과했다'는 취지로 말이 바뀐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이 밀수범을 상대로 세관 직원 관련 진술을 종용한 정황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모든 밀수범들은 합수단 조사에서 "사실 세관 직원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털어놨다는 게 합수단의 발표다.
"대통령실-경찰 연락 없어…브리핑 연기는 정당 지시"
합수단이 공개한 경찰 인천공항 실황 조사 영상. 합수단 제공합수단은 대통령실이나 경찰·관세청 지휘부의 수사 외압도 없었다고 봤다. 합수단은 경찰청과 서울경찰청, 인천세관 등 30곳을 압수수색하고 피의자 휴대전화 46대를 포렌식했다. 또 이메일과 내부 메신저, 통화내역 등을 전부 분석했다.
그 결과 관세청이나 경찰 측이 대통령실 관련자와 연락한 내역 자체가 없었다고 합수단은 밝혔다. 당시 영등포경찰서장이던 김찬수 경무관이 "용산(대통령실)이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브리핑 연기를 지시했다는 것이 백 경정 주장이지만, 김 경무관은 용산이나 대통령을 언급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관해선 양측의 통화기록만 있을 뿐 백 경정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하나도 없어 신뢰하기 어렵다는 게 합수단의 판단이다.
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대통령실(국정상황실)로 세관 마약 사건을 처음 보고한 날짜는 영등포경찰서의 언론 브리핑이 예정된 2023년 10월 10일이었다고 한다. 대통령실에서 관련 보고를 늦게 받았으니, 사전에 개입할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합수단은 백 경정이 세관 마약 직원들의 혐의를 언론에 발표하려던 브리핑을 미루고 보도자료 내용도 수정하라는 상부의 지시 역시 외압이 아닌 적법한 업무지시로 판단했다. 오히려 수사 사건을 공보할 경우 상급기관에 공보내용과 대상을 보고해야 하는 내규(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를 백 경정이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2023년 9월 20일 서울청 수사부장과 경찰청 국수본 마약계에 브리핑 내용 등이 사전보고되지 않았다는 게 합수단 수사 결과다. 아울러 당시는 경찰이 밀수범 진술 외에 확보한 증거가 없었고 세관 피의자를 특정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세관 직원의 연루 의혹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공보규칙 위배라고 합수단은 설명했다.
사건을 영등포서에서 서울청으로 이첩하는 것을 검토하라는 지시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봤다. 서울청이 중요 사건에 대한 수사 주체를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서울청이 당시 영등포서와 이첩 협의를 진행하던 중 영등포서 의견을 존중해 사건을 이첩하지 않기로 결정한 점도 감안됐다. 결국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권리행사 방해라는 결과 자체가 없었다는 수사 결론이다.
합수단은 관세청 직원이 영등포서를 방문해 브리핑 계획 등을 파악한 행위에 관해서도 합수단은 '정상적인 업무' 범위로 해석했다. 세관 직원 혐의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보도자료 배포 등으로 기본권 침해 등이 우려돼 세관 소속 직원을 보호하려는 차원의 조처였다는 것이다.
'야당 도와줄 일' 언급도 조병노 아닌 백해룡
백해룡 경정이 9일 서울 송파구 동부지검 사건과에 '관세청 산하 인천공항본부세관, 김해세관, 서울본부세관과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인천지검' 등 6곳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고 있다. 백해룡 경정 제공백 경정은 2023년 10월 5일 당시 서울청 생활안전부장이던 조병노 경무관에게 세관 부분이 공보 범위에서 빠졌다고 얘기하니 조 경무관이 '올바른 스탠스다. 국감에서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라고 말했다고 주장했었다.
합수단은 이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두 사람 사이 통화 녹취록 등을 분석한 결과 '백 경정에게 야당 등을 말한 적이 없고 외려 10월 14일 통화에서 백 경정이 한 말'이라는 조 경무관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다만 합수단 수사에서 조 경무관이 백 경정과의 통화한 날(10월 5일) 당시 인천세관장과 네 차례에 걸쳐 30여분간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조 경무관이 수사 대상이던 인천세관장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다시 수사 담당자인 백 경정에게 연락을 해 사건 관련 대화를 나눈 것이 객관적 자료로 확인된 셈이다.
백 경정 즉각 반발…검찰·세관 강제수사 시도
이 같은 합수단 수사 결과에 대해 백 경정은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백 경정은 합수단 발표 직후 △인천공항세관 △김해세관 △서울본부세관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인천지검 등 6곳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서울동부지검에 신청했다. 백 경정은 "세관이 말레이시아 마약 밀수에 가담한 정황 증거가 차고 넘친다"라면서 "검찰은 이를 인지하고 사건을 덮었고 외려 밀수를 방조한 정황도 기록상 드러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