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이 내란전담특별재판부 설치와 법왜곡죄 신설 등 사법개혁 추진 법안에 대한 연내 처리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사법부가 법안의 '위헌성'을 강하게 지적하며 막판 대응에 힘을 쏟고 있다.
전국 법원장들은 장시간 논의를 거쳐 "신설 법안이 재판의 중립성과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고, 향후 법안의 위헌성으로 인해 재판 지연 등 많은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법원장들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 침해, 위헌성 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국 사법행정을 이끄는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과 각급 법원장들은 전날 오후 2시 서초동 대법원 청사 대회의실에서 전국법원장회의 정기회의를 열어 현안을 논의했다.
전국법원장회의는 대법원을 제외한 각급 법원의 법원장을 비롯해 법원행정처장·차장, 사법연수원장, 사법정책연구원장, 법원도서관장 등 대법원 소속기관의 최고위 법관이 모이는 자리로, 이번 회의는 매년 12월 열리는 정기회의다.
법원장들은 최근 민주당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과 법왜곡죄 신설 법안을 중심으로 논의했으며, 회의는 약 6시간 동안 진행됐다.
법원장들은 "비상계엄 전담재판부 설치 법안, 법왜곡죄 신설 법안이 재판의 중립성과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고, 종국적으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하여 위헌성이 크다"며 "향후 법안의 위헌성으로 인해 재판 지연 등 많은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관련 사건의 선고가 예정된 상황이므로, 국민들께서는 사법부를 믿고 최종적인 재판 결과를 지켜봐 주기를 부탁드린다"며 "각급 법원은 재판의 신속하고 집중적인 처리를 위한 모든 사법·행정적 지원을 다할 것임을 국민께 약속드린다"라고 했다.
구체적 사건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 내란 사건 선고를 앞둔 상황을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법원장들은 '위헌적 12·3 비상계엄'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이들은 "위헌적 12·3 비상계엄이 국민과 국회의 적극적 노력으로 해제됨으로써 헌정질서가 회복된 데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한다"며 "비상계엄 관련 재판의 중요성과 국민의 지대한 관심·우려를 엄중히 인식한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 시작에 앞서 조희대 대법원장도 사법개혁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조 대법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제도가 그릇된 방향으로 개편된다면 그 결과는 우리 국민에게 직접적이며 되돌리기 어려운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며 "사법제도는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중대한 기능을 수행하는 만큼 한 번 제도가 바뀌면 그 영향이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법 왜곡죄 법안이 민주당 주도로 통과됐다. 내란재판부 설치법은 12·3 계엄과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을 전담하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는 게 골자다. 법왜곡죄는 재판·수사 중인 사건에서 법관이나 검사가 고의로 법리를 왜곡하거나 사실을 조작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민주당은 이르면 오는 9일 본회의에 해당 법안들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사법부가 집단 반발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여당과 사법부가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사법부, 사법개혁 공론화에 총력…"모든 방안 활용해야"
사법부 내부에선 사법개혁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사실상 검찰청 폐지와 동일한 결과를 맞게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재경 법원 한 부장판사는 "검찰청 폐지를 담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검찰 내부 목소리는 사실상 힘을 잃었다"며 "법안이 통과되기 전 사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활용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사법부는 공론화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오는 8일에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개최된다. 이번 회의에는 사법제도 개선에 관한 재판제도 분과위원회 발의 의안 1건과 법관의 인사 및 평가제도 변경에 관한 법관인사제도 분과위원회의 발의 의안 1건이 각각 사전 상정됐다.
앞서 전국법관대표회의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사법행정위원회 설치안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및 법왜곡죄 도입 법안과 관련해 법원행정처에 설명을 요청하기도 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법원행정처 폐지, 사법행정위원회 설치, 법관 징계·감사 기능 강화는 기존의 사법행정시스템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라며 "사법행정과 법관독립에 관한 의견표명기구인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도 이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법원은 오는 9일부터 11일까지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를 연다. 조 대법원장은 법원장들에게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번 공청회는 우리 사법제도의 바람직한 개편 방향과 그 과제를 모색하기 위해 법조계는 물론 학계, 언론계,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심도 있는 논의를 펼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라며 "법원장님들께서도 각별한 관심과 참여로 자리를 빛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공청회에선 우리 재판의 현황과 문제점 △사법의 공정성과 투명성 강화 △국민의 사법참여 확대-노동법원 설치와 국민참여재판 확대 △국민의 인권 보장을 위한 형사사법제도 개선 △상고제도 개편 방안 △대법원 증원안에 대한 논의 등을 주제로 학계와 언론, 시민단체 등 전문가들이 참석해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