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호> 오늘은 원전 안전 분야 전문가인 원자력안전연구소장 한병섭 박사님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 한병섭> 안녕하십니까? 한병섭입니다.
◆ 홍종호> 소장님 반갑습니다. 최근 고리 2호기 수명 연장과 SMR 때문에, 원전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가 상당히 높은데요. 소장님께서는 평소에 원전 철학이 중요하다고 말씀을 많이 해오셨어요. 제가 알기로 소장님은 학부부터 박사까지 원자력공학과에서 계속 학위를 하시고 또 원전 분야에서 평생 일을 해 오셨는데요. 소장님이 강조하시는 원전 철학은 무엇이며 왜 그것이 중요한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 한병섭> 요즘 친원전, 탈원전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많은데 이건 정치적인 문제고요. 제가 원자력을 대하는 입장은 원자력도 에너지의 일부라는 겁니다. 최근 들어 정치화되면서 원자력이 목적이 돼버렸는데, 원자력은 목적이 아니고 수단입니다. 수단을 대하는 자세가 무슨 친원전이 있고 탈원전이 있겠습니까? 잘 쓰면 되고 안전하게 쓰면 된다는 뜻을 가지고 접근해야죠. 요즘은 본질을 벗어나고 너무 변색해 있는 것 같아요. 철학이란, 목적에 맞게 쓰는 수단이라는 걸 명확하게 인식하고 다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다르게 바뀌면 다른 데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이란 그런 것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 홍종호> 어떤 정쟁의 대상으로서가 아니고 기술과 안전의 문제고, 얼마만큼 안전한 전력을 싸게 충분히 잘 공급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다, 이런 말씀인 거죠?
◇ 한병섭> 네.

◆ 홍종호> 소장님 이력을 보니까 80년대 학부 때부터 이 분야를 공부하고 쭉 종사해 오셨는데요. 40년 가까이 이 분야에서 활동하시면서 원전 업계가 원자력 발전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 왔는지, 혹은 과거에는 논란이 없다가 최근 들어와서 정쟁화될 정도로 논란이 커진 것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 한병섭> 원자력은 국가 에너지라서 사회의 틀에서 누군가 폭넓게 절제와 균형을 봐줘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걸 못 한 채로 성장하면서 전력을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는 것에만 몰두해 온 겁니다. 그러다 보니 원자력이 돌아봐야 할 당연한 도덕적인 도리를 모르고 너무 한 방향으로 달려와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겁니다. 오늘 수명 연장 관련해서 말씀 나누면서 어떤 근원적인 실수가 있었는지 말씀드릴 텐데요.
기술이 상식에 부합해야 하고, 이 상식이 도덕적이어야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기술이 기술만 보고 쫓아와 버렸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봅니다.◆ 홍종호>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아주 정확하게 해 주셨는데요. 소장님께서 평생 원자력 학계와 업계에 계셨는데 이런 목소리를 내는 분은 원자력계 내에서는 소수입니까?
◇ 한병섭> 거의 드물다고 봐야죠. 핵공학을 한 사람 중에서 이런 이야기하는 사람은 원자력계에 정평이 나 있습니다. 딱 3명만 이야기한다고요.
◆ 홍종호> 왜 그렇습니까? 아무래도 책임 있는 학자로서 국가 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생각은 연구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한병섭> 민간 원자력 기술이나 산업 자체가 일방적인 국가만의 기술이기 때문에 민간 시장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국가 정책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생존할 수 없어서 그렇습니다. 저는 저랑 같은 생각을 가지는 조금은 비겁한 양심주의자들도 꽤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대부분일 겁니다. 그렇지만 그런 분들도 목소리를 내면 산업계에서 생존할 수가 없어서, 이런 일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고 봅니다.
◆ 홍종호> 지금의 원자력 발전의 건설 과정이라든지 또 안전에 대한 상대적인 무시를 공식적으로, 명시적으로 얘기하기는 상당히 부담스럽다는 말씀이군요.
◇ 한병섭> 부담스럽다기보다 생계가 걸린 문제라 보는 거죠. 그건 100% 맞습니다.
◆ 홍종호> 그래요. 제가 시작할 때도 말씀드렸지만 부산 고리 원전 2호기 수명 연장이 확정됐거든요. 그래서 2033년까지 운전하게 됐는데요. 아무래도 원전의 안전 문제에 관심이 많으시니까 어떤 과정을 거쳐서 다시 수명 연장 허가가 났는지 배경 설명 부탁드립니다.

◇ 한병섭> 짧게 말씀드리면, 원자력이라는 것 자체가 1979년에 큰 이변을 겪게 됩니다. 미국 TMI(Three Mile Island), 즉 스리마일 원전에서 중대 사고가 터져버렸어요.
그런데 그때까지 원자력 발전소는 이런 대형 사고가 안 일어난다는 100% 공학적인 확신을 가지고 지었습니다.◆ 홍종호> 학계에 그런 컨센서스가 있었나 보죠?
◇ 한병섭> 국제적인 기준이 그렇고 다들 그렇게 평가하였습니다. 미국에서 이것에 대한 조치가 1999년이 돼서야 제대로 만들어졌는데요. 그때까지 건설된 모든 원전은 예전과 똑같이 큰 사고가 안 난다는 것을 전제로 지어졌습니다. 우리나라는 이걸 2015년도에 도입했습니다. 최소한 우리나라에서 2015년도까지 지어진 원전은 대형 사고가 나는 것에 대한 보완이 안 돼 있었던 겁니다. 중대 사고는 안 일어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일어났죠. 2015년도에 우리가 이걸 채택하게 된 계기도 옆에서 후쿠시마가 터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늦게 했는데요. 그러다가 보니까 2015년도부터 대응을 하기 위해, 원전의 대형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게 법제화되었습니다. 신규 원전은 이제부터 그렇게 지으면 되지만 옛날 원전은 백업해 줘야 한다는 게 그 내용입니다. 수명 연장을 할 때, 설비를 해주고 안전성을 보강해서 보완해야 한다는 게 제도화된 겁니다. 2022년에 고리 2호기가 수명 연장 신청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때부터 차례대로 열 몇 기가 지금 수명 연장을 대기 중인 거죠.
◆ 홍종호> 그렇죠. 현재 거의 다 설계 수명이 다했으니까요.

◇ 한병섭> 아까 제가 말씀드린 중대 사고, 대형 사고를 예방하는 방안으로 나온 게 환경영향평가를 통해서 보완하라는 거거든요. 원자력 발전소를 당장 세울 수 없잖아요. 시간을 주고 환경영향평가를 통해서 중대 사고의 보완책을 마련하라는 게 국제적인 관례처럼 이어졌는데요. 환경영향평가를 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하였고, 고리 2호기 때부터 공청회를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계속 지연돼 온 게 벌써 몇 년째입니까? 올해 겨우 고리 2호기가 승인 났으니까요. 몇 년째 지연되다가 그런 상황이 돼버린 겁니다.
◆ 홍종호> 그러면 이번에 정부로부터 수명 연장 허가가 나온 과정에 대한 문제도 있다고 보시나요?
◇ 한병섭> 명확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예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계실 때는 기본적인 기조가 탈원전이었기 때문에 한수원이나 원자력 규제 기관도 수명 연장을 안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게을리하고 있었어요. 준비를 안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때부터 부랴부랴 수명 연장을 준비한 거죠.
◆ 홍종호> 원전 강화 정책을 폈기 때문이죠.
◇ 한병섭> 네. 그러다 보니까 그사이에 준비를 안 하고 있던 걸 방사선 환경영향평가를 하고 사후 관리를 해서 수명 연장을 하다 보니까 여기서 기술적, 제도적인 괴리가 생겨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 홍종호> 그런 2년간의 과정, 신청하고 이번에 허가가 나기까지의 과정에서, 지금 말씀하신 반드시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충분히 점검되지 않았다고 보시나요?
◇ 한병섭> 검토가 안 됐습니다. 명백하게 안 됐습니다. 안전 철학의 문제인데요. 원자력이란 안전을 기반으로 한 산업이라서 환경영향평가라는 모든 산업에 공통이 되는 국제적인 룰을 거쳐야 합니다. 이 환경영향평가를 하면서 원자력 중대 사고에 대한 대책을 사고관리계획서라는 것으로 수립했습니다.
그런데 사고관리계획이라는 것은 사고가 났을 때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사고가 안 나도록 하는 걸 말합니다. 우리나라 원안위(원자력안전위원회)가 환경영향평가에 사고관리계획을 써도 된다는 제도를 허용해 줘 버렸어요. 이거는 국제적으로 망신스러운 일인데요. 사업자인 한수원은 그래야 돈이 작게 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핑곗거리도 있는 겁니다. 제도가 그렇게 허용했으니까 우리는 제도를 맞춰야 한다는 명분으로 그렇게 진행해 오다가 이렇게 엉망이 돼버린 겁니다. 사실 국제적으로 한국이 환경영향평가를 저런 방식으로 한다는 게 알려지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 홍종호> 그런 정도 수준인가요?
◇ 한병섭> 네. 환경영향평가라는 게 일어날 수 있는 가상의 역량을 평가해서 안전성을 확보하자는 국제적인 제도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고관리계획이라고, 사고가 절대 안 나도록 하는 수단을 신뢰해 버리니까 환경영향평가의 의미가 없어져 버린 거죠.
◆ 홍종호> 이번에 고리 2호기도 그런 절차를 밟아서 수명 연장 허가가 났다는 말씀이군요.
◇ 한병섭> 수명 연장 환경영향평가를 그렇게 하라고 제도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다 그렇게 진행될 겁니다.
◆ 홍종호> 소장님이 보시기에 해당 지역인 부산 지역 주민들은 부실한 과정을 거쳐서 허가가 나는 상황을 인식하고 계신 것 같나요?
◇ 한병섭> 2022년부터 2, 3, 4호기 수명 연장 신청 때 말씀을 드려서 알고는 계십니다. 지금 과학기술의 상식적인 문제를 원자력과 결부시켜서 알고는 계시는데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은 조금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홍종호> 가까운 일본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2011년에 후쿠시마에서 어마어마한 사고가 터진 상황이에요. 최근 일본 원전 정책은 조금 변화가 있는 것 같긴 한데요. 일본의 원전에 대한 안전 규제 기준은 한국과 비교해서 어떻습니까?

◇ 한병섭> 스리마일, 후쿠시마 사고 터지기 전까지는 일본도 우리랑 100% 똑같았습니다.
◆ 홍종호> 일본도 사고 안 난다는 믿음 위에서 지었단 말씀이죠?
◇ 한병섭> 네. 심지어는 후쿠시마 원전 자체가 사고 터지기 한 달 전에 사고에 대한 대비 태세를 점검해 봤는데 아무 문제없다고 하고 한 달 만에 터진 거예요. 어디서 이야기 들으셨을 것 같은데,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고 난 다음에 노후 원전에 대해서 호기당 2조 원의 투자를 해서 안전성을 보강하기로 해서 그렇게 진행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기존의 제도와 똑같이, 아까 말씀드린 사후관리계획이라는 소프트웨어적인 처리로 돈이 안 들어가는 투자를 해오고 있죠.
원자력계에는 일본이 과잉 투자했다는 평가도 많은데요.
최근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사고 안 난 TMI 원전 1호기를 자기네들 AI 데이터뱅크로 쓰기 위해서 재가동한다고 했는데 그 액수가 2조 1,300억 원입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정지했던 오래된 노후 원전을 다시 고쳐 쓰는 데 2조 원 정도 든다는 겁니다. 일본도 2조 원이고요. 제가 단언하기는 그렇습니다만 그 정도 든다는 게 기본적인, 국제적인 룰이 될 텐데요. 우리 같은 경우에는 한 호기당 2, 300억 원 정도 들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 홍종호> 재가동을 허가 내면서 그 정도만 투자하면 안전에 문제없는 걸로 보았다는 말씀이군요.
◇ 한병섭> 후쿠시마 후속 대책이라고 해서 1조 천억 원인가 쓰기로 했는데 그 돈도 한 6, 7천 억 원밖에 사용 안 했습니다.
그것을 20개 호기로 나누면 한 호기당 2, 300억 원 정도밖에 안 되는 거죠. 그렇게 했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생긴 겁니다.◆ 홍종호> 100분의 1밖에 안 되는 거잖아요.
◇ 한병섭> 이 모든 문제가 사고에 대한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방향을 설비 투자가 아닌 운전원 절차와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절차에 두어서 생긴 문제입니다. 고리 2호기의 부실이나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환경영향평가를 아둔하게 해버리게 된 근거가 모두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 홍종호> 소장님께서는 우리나라의 안전 관리나 수칙, 소프트웨어적인 부분, 인력의 수준 이런 것은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다고 보십니까?
◇ 한병섭> 우리 인력의 수준은 뛰어납니다. 하지만 원자력이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하는데, 도덕성과 안전 철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게 입증된 상황입니다. 그것들이 보강되지 않으면 원자력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 홍종호> 그런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에 설비 기준 강화나 설비 보강에 대한 투자는 하지 않는다는 말씀이군요.
◇ 한병섭> 그렇죠. 하지 않는 거죠.
◆ 홍종호> 소장님 말씀을 경제학자인 제가 재해석을 해보자면, 안전 기준을 강화하는 다른 나라가 하고 있는 방식으로 설비 보강을 하게 되면 원전의 경제성, 특히 수명 연장과 관련한 경제성은 많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한병섭>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 홍종호> 혹시 거기에 대해서 검토해 보셨습니까?
◇ 한병섭> 당연하죠. 안전 설비들, 중대 사고에 대한 대비 설비들은 정확하게 미국이나 국제적인 환경영향평가에서도 대안 제시라는 것과 결부됩니다. 대안, 전략적, 기후 환경이 세 가지 키워드지 않습니까. 원자력도 그게 적용되는데 대안이라는 것은 신뢰할 수 있는 대안이거든요. 신뢰한다는 건 설비 같은 거죠. 불이 났을 때의 스프링클러 같은 개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대응하고 있는 것은 불날 곳에다가 소화기를 다수 가져다 놓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여기는 방식입니다.
◆ 홍종호> 재밌는 비유네요.
◇ 한병섭> 설비가 아니라 대책 측면으로 돼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점들이 생기는데요. 사실은 우리나라 기술 수준으로는 외국처럼 그렇게 돈 안 들이고 투자할 방법이 충분히 있습니다. 그런데 방향을, 안전을 고려하는 측면이 아니라 비용 측면으로 잡고, 국가부터 그렇게 계획을 세워버렸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겁니다.
◆ 홍종호> 그런 식으로 해외의 안전 기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설비 투자가 추가로 일어난다면 원자력 발전 단가에 바로 반영되겠죠. 그렇게 되면 원자력계에서 늘 얘기하는, 원자력의 발전 단가가 제일 경쟁력이 높다는 믿음도 많이 균열이 가해질 수 있겠군요.
◇ 한병섭> 그리고 국민의 수준이 높기 때문에, 우리가 미봉책으로 했던 것들이 나중에 밝혀질 겁니다. 지금은 경쟁력이 있다는 수치를 보여줄지 모르지만, 나중에 드러나면 그보다 더 큰 비용을 쓰게 되기 때문에 결국 경제성이 없어집니다.
◆ 홍종호> 미래 세대에 비용을 전가하는 방식이 된다는 말씀이죠. 이런 일이 생기면 안 되겠지만 만약에 그런 안전 설비 강화에 대한 미비 또는 무대책 때문에 현재 원전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지역에 사고가 난다면, 예측하기는 쉽지 않습니다만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 한병섭> 저는 농담 삼아 일본이라는 나라가 복 받은 나라라고 하는데요. 국토가 길어서 후쿠시마 원전이 터졌지만, 영향받는 지역이 국한돼 있습니다.
◆ 홍종호> 그게 지형상 그런가요? 바람 때문에요?
◇ 한병섭> 네. 나라 자체가 길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도 확산 거리가 국토 전체를 차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워낙 나라가 작으니까 사고 터졌을 때는 거의 감당하기 힘든 정도의 수준일 겁니다. 일본 후쿠시마 같은 경우에는 250조 원에서 900조 원까지 들었습니다. 요즘 후쿠시마 사고 비용이 900조 원으로 올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TMI, 스리마일 원전 같은 경우에는 추정 비용이 20조 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 경우는 완전히 터진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요. 체르노빌 같은 경우에는 500조 원에서 1,000조 원이라고 지금 추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력에서는 500조나 1,000조를 감당하기 힘든 거죠.
그리고 원전의 대형 사고라는 건 자기 국경에 머무르지 않고 옆 부근에도 영향을 줍니다. 우리가 신경 써야 하는 게 우리의 안전보다도 편서풍대의 왼쪽에 있는 중국입니다. 중국 원전이 지금 약 5, 60개 되는데 잠재적으로 열 몇 기를 동해안에 더 짓는다고 그럽니다. 중국에서 사고가 나면 모든 영향이 우리에게 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전 철학을 우리의 존립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모범을 보여서 중국이라는 나라가 안전하게 하도록 하는 유도 효과를 위해서 지켜야 합니다. 그런 간접적인 효과를 노리고 안전 철학을 갖추지 않으면 우리가 안전할 수 없습니다.
◆ 홍종호> 중국에 대해서 할 말이 없어진다는 말씀이죠?
◇ 한병섭> 중국이 사고 터지면 영향은 우리가 다 받으니까요.
◆ 홍종호> 그런 면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또 최근 한미 관세 협상 과정에서 사용후핵연료 얘기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아마 시청자들께서 사용후핵연료가 도대체 지금 어떻게 보관되고 있는 건가,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 정확한 팩트를 잘 모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현재 상황이 어떻습니까?
◇ 한병섭>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는 우리나라에 처분장이 없어서 발전소 옆 수조, 물통에다가 담가서 식히고 있습니다.
◆ 홍종호> 지상에요? 그럼 가면 볼 수가 있는 거예요?

◇ 한병섭> 예. 지상에 있고 볼 수 있습니다. 큰 물탱크, 수영장 같은 데다가 핵연료를 집어넣어서 거기서 식히고 있습니다. 중수로는 워낙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부를 끄집어내 용기에 넣어서 보관하고 있습니다만 경수로 기준으로는 습식 보관을 하고 있습니다.
◆ 홍종호> 네. 그러면 전문가 입장에서 봤을 때 이런 식의 보관 방식이 지속 가능한 건가요? 그러니까 용지 확보에의 제약 문제를 포함해 안전 문제에 있어서는 괜찮은 겁니까?
◇ 한병섭> 일단은 고열이기 때문에 물속에 장시간, 5년에서 10년 정도까지 식혀야 하는 것은 안전을 위해 당연한 과정인데요. 문제는 지금 수명연장과 관련하여 있습니다. 지금 신형으로 짓는 원자력 발전소들은 자기들 설계 수명만큼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리 원전도 마찬가지입니다마는 예전 원전들의 경우에는 작게 만들어 놨어요. 공학적인 낙관주의죠. 원자력 발전소 수조를 크게 지으면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30년, 40년 수명 동안 생기는 핵연료를 다 집어넣을 수 있도록 만들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처분장에 보낼 거라는 생각으로 그 3분의 2 정도 수준으로 만들었습니다.
◆ 홍종호> 언젠가 처분장이 지하에 마련될 것이라는 생각이었군요.
◇ 한병섭> 그러다가 지금 다 차고 있는 상황이 발생해 버린 겁니다. 사실 원자력 관련해서, 더군다나 독성 물질인 사용후핵연료에 대해서는 낙관주의를 하면 안 되는데요. 아까 말씀드린 안전 철학에도 그게 포함된 겁니다. 공학적인 낙관주의 때문에 이런 사태를 지금 직면하고 있다는 겁니다.
◆ 홍종호> 소장님은 80년대부터 원자력 학계에서 꾸준히 연구도 하시고 활동도 해오셨는데요. 80년대, 90년대 초창기에도 사용후핵연료를 대책없이 저장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셨나요?
◇ 한병섭> 원자력 하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푸는 방법에 있어 비판적인 대안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고, 대부분이 그러하듯 긍정적으로 보고 다른 대안을 찾는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지, 다 알고는 있습니다.

◆ 홍종호> 네. 그렇군요. 그러면 이번 고리 2호기 수명 연장이 어떤 전례가 돼서 앞으로 2020년대, 30년대 가면서 계속 설계 수명을 다하는 원전들이 속속 등장하지 않습니까? 그것들 역시 이런 방식으로 수명 연장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시는 거죠?
◇ 한병섭>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국가기관이 법을 만들어서 제도가 그렇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고리 2호기를 필두로 시작되는 거지 법적으로 나머지 원전도 이런 방식으로 다 수명 연장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 홍종호> 그래요. 그러면 소장님의 대안은 뭡니까? 법적으로 이렇게 돼 있는 상황에서 법을 바꿔야 한다고 보시는 겁니까?
◇ 한병섭> 법을 바꾸고 원안위를 포함해서, 우리나라의 원자력을 이끄는 조직들이 기본적인 상식을 키우는 강제 교육이라도 시켜서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이거 잘못된 줄 알고 국제적으로 망신거리인데 그냥 놔뒀다가는, 나중에 우리가 원전을 수출한다고 했을 때 외국에서 안전 철학을 저렇게 가진 나라가 수출했다면서 비난거리가 되고 조롱거리가 되는 거거든요.
◆ 홍종호> 그런 정도로 보시는군요.
◇ 한병섭> 기본기가 무너져 버린 거지 않습니까? 그래서 조속하게 바꾸지 않으면 저는 우리나라 원자력의 미래는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당장 법부터 빨리 바꿔야 하고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제도를 제대로 마련해야 합니다. 공학적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에 1, 2년 투자하면 금방 되거든요. 고리 2호기가 1, 2년 늦더라도 나머지 호기라도 제대로 하도록 준비하면 충분히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도 그렇고 한수원도 그렇고, 누구도 마음을 안 먹는다는 게 문제죠.
◆ 홍종호>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원전을 수출 전략 산업으로 생각하는데요. 우리나라의 안전 철학 부재를 해외에서는 알고 있습니까?
◇ 한병섭> 알려지죠.
◆ 홍종호> 점점 알려질 거라는 거군요.
◇ 한병섭> 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리가 수출한 나라들은 대개 원자력의 문외한들이기 때문에 지금은 잘 모를 텐데요. 여기도 우리나라 초창기처럼 학자들이 생기고 기술자가 생기면 한국은 왜 저랬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될 거거든요. 그러면 그게 우리 국가에 대한 조롱이나 불신으로 오는 건 당연한 순서지 않습니까?
◆ 홍종호> 이 부분은 정부, 특히 산업부에서 꼭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 한병섭> 제가 산업부에 대해서는 특히 불만스러운 게 있습니다. 국가 원안위나 이런 데서 제도를 잘못 만들었더라도, 법적인 제도는 지켜야 할 최소 수준이거든요. 우리나라에 한수원이 전체 원자력 산업의 90%를 다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원안위나 데서 시원찮게 했더라도 산업부가 스스로 주도적인 부서라고 생각한다면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법보다 우월한 대책을 마련하는 게 국가 기업으로서의 당연한 의무라고 봅니다. 그런데 원안위를 핑계로 그것을 안 했다는 것은 실질적인 책임이 한수원에 더 있는 게 맞죠.
◆ 홍종호> 네.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 소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한병섭>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