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황진환 기자"2년 내 입주라더니 10년 동안 첫삽도 뜨지 못하고, 분담금만 더 내라네요."
경기도 화성시에 사는 A(40대)씨는 2022년 '반값 아파트'라는 홍보에 이끌려 계약금 3천만 원을 내고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했다. 당시 조합 측은 조만간 조합설립 인가와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을 받아 착공에 들어간다고 설명했지만, 현재까지 조합 설립인가만 받은 채 착공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B(50대)씨도 2016년 '2년 내 입주'라는 광고를 보고 안성지역의 한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했지만 사업은 조합 설립인가만 받은 채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그 사이 조합원들에게는 5천만~1억 원 가량의 추가 분담금이 부과됐다. 조합을 탈퇴하려 했지만, 위약금 조항 때문에 환불도 어려운 상황이다.
B씨는 "조합원 모집 당시에는 당장이라도 착공에 들어갈 것 같았지만, 조합 내부 갈등과 시공사와의 마찰 등으로 공사가 미뤄지고 있다"며 "저렴하게 내집을 마련하려다가 오히려 손해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주택조합 절반 '제자리걸음'…분쟁만 늘어
스마트이미지.최근 몇 년 사이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지역주택조합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조합원 모집 이후 수년이 지나도 착공조차 하지 못한 채 분쟁만 발생하는 사업이 속출하고 있다.
지역주택조합은 무주택자나 전용면적 85㎡ 이하 1주택 소유자가 조합을 구성해 직접 아파트를 건설하는 제도다. 민간 시행사를 통하지 않아 분양가를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조합이 시행·시공·자금 조달 등 전 과정을 자체적으로 추진해야 해 위험이 크다. 특히 조합원은 분양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합비와 분담금을 부담해야 하고, 사업이 지연되더라도 자금을 회수하기 어렵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에서 추진 중인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총 618건이다. 이 중 조합 설립인가조차 받지 못하고 모집단계에 있는 조합이 316건(51.1%)이고, 모집신고 후 3년 이상 인가를 받지 못한 조합도 208곳(33.6%)에 달한다.
지역주택조합을 둘러싼 분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전체 조합 중 187곳(30.2%)에서 293건의 분쟁이 발생했으며, 주된 원인은 조합원 모집·설립 초기 단계의 부실 운영(52건), 탈퇴·환불 지연(50건) 등으로 나타났다.
"토지 확보 100%" 허위광고 여전…책임지는 곳 없다
연합뉴스문제는 최근까지도 조합원 모집 과정에서 '반값 아파트', '토지 100% 확보', '브랜드 시공사 확정' 등의 문구가 광고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실제 토지 확보율은 기준에 크게 못 미치고, 시공사 계약도 가계약 수준에 불과한 경우가 적지 않다.
올해 용인시가 발간한 '지역주택조합 피해 사례집'에는 "실제 토지 확보율이 15%에도 못 미친 상황에서, 모집 광고에는 90% 이상 확보라고 표기돼 있었다"는 사례가 수록됐다. 조합원들은 허위 광고에 속아 가입했지만, 사업은 지연되고 환불은 어려운 구조다.
일부 조합은 조합원 자격 조건을 까다롭게 설정하거나, 환불 시 과도한 위약금을 요구해 탈퇴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특히 조합 설립 전 단계인 추진위원회는 정부 승인 대상이 아니어서 사실상 '무법지대'로 운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허위·과장 광고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조합원 모집 전 사전검증 절차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성공하려면 입지, 인프라 등 까다로운 조건이 갖춰져야 하기 때문에 10곳 중 8곳은 실패한다고 봐야 한다"며 "그러나 일반 분양보다 저렴하다는 이유로 너도나도 무분별하게 뛰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행 법 체계로는 모집 단계의 광고 행위와 사업을 막을 수단이 없기 때문에, 조합 설립 요건을 강화하거나 정부가 요건 심사를 통해 사전 승인하는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