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인천국제공항공사 항공교육원에서 열린 2025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장동혁 대표, 송언석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결의문을 발표한 뒤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일단 장동혁 신임 대표는 지지층을 배반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지금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28일 국민의힘 연찬회 도중 화제가 된 발언이다. 당권을 쥐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당원들의 마음, 이른바 당심(黨心)을 배신하라는 이 도발적 주문이 나온 자리에는 당사자인 장 대표도 앉아 있었다.
"이기는 게 혁신"이란 張 향해 "지지자 기대 배반" 주문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의힘 의원이 총출동한 이날 연찬회의 첫 특강을 맡아, 이같은 쓴소리를 내놨다. 박 교수는 무대 배경에 적힌 '새로운 미래로 다시 뛰겠다'는 슬로건을 가리켜 "이게 가능할까 싶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당의 지속가능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날 박 교수는 '강성 반탄(탄핵 반대)파'로 채워진 지도부의 전향적 변화를 촉구했다.
전한길씨 등 극우 유튜버 지원에 힘입어 당선된 장 대표가 이제는 그 반대에 가까운 방향성으로 국민의힘을 이끌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장 대표는 자리가 달라졌다고 후보 시절 했던 말들을 뒤집는 일은 없을 거라고 못 박았지만, 역설적으로 기존 노선을 고수해서는 '수권 정당'이 되기 힘들다고 박 교수는 경고했다.
박 교수는 국민의힘이 지난해 총선과 올해 6·3 대선 등에서 연이어 대패한 배경에 대해 "수도권 참패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수도권에서 지금 같은 성적을 내선 제1당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최근 선거 성적표들을 살펴보면 특히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의 외면이 두드러진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선거제도 개헌에 전향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이상 국민의힘은 정말 '동전 던지기'로 이기는 대선밖에 없을 것"이라며
"자체 역량으로 (더불어민주당을) 이기긴 어렵다. 총선도 최대 (의석) 100석 언저리일 것"이라고 혹평했다.
이는
당심과 민심이 괴리된 결과라고 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일반 여론조사상 60%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지한 반면, 과반의 당원은 장 대표를 선택한 점을 결정적 징후로도 꼽았다. 박 교수는 국민의힘이 이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면 당의 지지율 상승과 외연 확장, 궁극적으로 재집권은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장 대표가
공언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되레 '골수 지지층'을 배신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게 박 교수 조언이다. 장 대표는 전당대회 당시부터 이번 연찬회까지 줄곧 "선거에서 이기는 정당을 만드는 것이 혁신의 출발"이라고 강조해왔다. 방법론으로는 '단일대오 대여투쟁'을 내세운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당의 문제는 당과 당원이 결정"하는 게 맞지만 그 이격이 얼마나 되는지는 '자기객관화'가 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정당학회와 여론조사전문업체 STI 및 한겨레가 실시한 '2025~2026 유권자 패널조사' 결과,
'상황에 따라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낫다'고 답한 국민의힘 지지층(23.7%)이 일반 유권자(13.9%)의 약 2배였다는 점도 인용했다. 응답 대상을 지지자가 아닌 '당원'으로 제한했다면 더 극단적인 결과가 나왔을 거라는 게 박 교수의 의견이다.
장동혁, 쓴소리 '지렛대' 삼아 전략적 태세 전환 꾀할까
당내에서는 강연자 섭외에 행사 주최자의 의도가 담겨 있었을 거라는 분석이 많다. 강의 세부 내용까지 조율하진 않았더라도 평소 현실 인식이나 발언 태도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찬회 주최 측인
원내지도부가 신임 당 지도부와의 교감 속에서 일정을 짰다면, 당 혁신을 띄우기 위해 고언(苦言)을 일부러 청해 들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수위를 넘나든 직격에 일부는 불편함을 토로했다. 현장에서는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등의 힐난과 함께 듣기 불편하다는 식의 헛기침이 드문드문 흘러나왔다.
민주당과의 비교에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성일종 의원은 박 교수가 이재명 대통령이 과거 당대표 시절과 달리, 대일 외교에서 과거사 관련 유연한 입장을 보인 것을 두고 '지지층의 기대를 배반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점을 문제 삼았다. 박 교수를 향해 "이 사람들(여당)은 국민을 철저히 속인 거다. (대일 강경노선을 펴다가) 정권을 잡으니 국제관계에 있어서 방법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박 교수는 "제 초점은 이 대통령이 그간 한 말과 반대되는 결론을 내린 데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그럼에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반박했다. 여야를 아우르는 위치에 서게 된 만큼 이 또한 정치인으로서 지지층을 확장하는 일종의 '테크닉'일 수 있다는 의미다.
28일 인천국제공항공사 항공교육원에서 열린 2025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국민의힘 혁신과 보수의 재구성'을 주제로 특강하고 있다. 연합뉴스당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러한 특강 메시지를 명분 삼아 향후 전략적 태세 전환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그간 표방해온 '강한 야당' 모드를 유지하는 한편, 또 다른 축으로는 이 대통령과의 회동 등을 통해 출구 모색을 시도하리란 분석이다. 지도부 관계자는 "단점으로 평가되기도 하나, 입장 변화가 유연하다는 점은 장 대표의 분명한 장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톤 조절'에 나선 듯한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장 대표는 29일 김민수 최고위원이 전날 밤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비상계엄 당시 '국회에 대한 강경 진압은 없었다'고 발언한 데 대해 "지도부가 된 분들이 각각 다양한 입장과 의견을 가질 수 있다"면서도
"우리 당에서 나가는 목소리가 국민들께 공감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앞서 인용한 여론조사는 지난 5월 8~11일 전국 성인 2775명을 대상으로 인터넷·유무선 전화면접 조사를 병행해 이뤄졌다. 응답률은 59.3%,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1.9%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