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유럽 지도자들이 미국 백악관으로 한꺼번에 날아든 것은 20세기 이후 좀처럼 보기 드문 희귀한 장면이었다. 종교전쟁이었던 30년전쟁이나 나폴레옹전쟁, 가까이는 2차 대전 직후 전후처리와 국경 재조정을 위해 머리를 맞댄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매년 비정례적으로 개최되는 G7이나 G20정상회의에서도 유럽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긴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종전문제 단 하나의 의제를 다루기 위해 유럽 주요국 정상들이 총출동한 건 우크라이나전쟁이 발등의 불이란 유럽 공동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크라이나전쟁 종전협상을 주도중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렇게 많은 지도자들이 우크라이나 안보를 위해 만사 제쳐놓고 모인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놀라워 했다.
며칠 전인 지난 15일 미국 앵커리지에서 미러 정상이 회동한 뒤 '돈바스 포기, 우크라이나의 NATO 즉,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불가' 등이 포함된 양국의 논의내용이 알려지자 유럽정상들은 기존의 일정을 모조리 연기하고 곧바로 워싱턴으로 향했다. 트럼프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트럼프와 젤렌스키 단독회담, 뒤이은 확대정상회담으로 진행된 담판에서 우크라이나와 유럽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에 논의를 집중하며 러시아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흐르는 듯한 종전협상의 물꼬를 돌리려고 트럼프를 강하게 압박했다.
유럽정상들이 급히 뭉친 데는 앵커리지 회동 후 2주 이내로 전쟁당사자인 푸틴-젤렌스키 정상회담이 논의되는 상황이었고, 미러회담에서 나온 흐름이 그대로 적용될 경우 향후 전쟁위협으로부터 우크라이나는 물론 유럽의 안전을 항구적으로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연합뉴스언제나 혼자보다 뭉치면 강해진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회담 후 "저는 영원히 감사할 것입니다. 정말 (유럽정상들이 미국에)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크라이나는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라며 협상 결과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새롭게 알려진 논의의 내용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보장하는 대가로 유럽이 우크라이나에 미국 무기구입비 100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트루스소셜에 "유럽국가들이 미국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보장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 내용대로 협상이 진전된다면 미국은 전비(戰費)와 안전보장비용을 유럽에 떠안기고 유럽에서도 평화를 일궈낸 해결사로서의 이미지를 굳힐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에 이어 유럽에서 또하나의 외교적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 일부에서는 트럼프가 러시아와의 관계호전을 통해 중국고립을 노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직은 '종전이 먼저냐' '평화협정을 목표로 협상을 이어갈 것이냐'에 대한 이견이 있고 유럽이나 미군의 우크라 주둔 가능성 등 민감한 문제들이 미타결로 남아 있지만, '나토 가입불가'에서 '우크라 안전보장'으로 논의의 중심이 형성된 건 유럽이 뭉친 결과로 풀이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전쟁에 가담한 미국이 북한과 정전협정을 맺어 지역안정을 이룬 한반도식 정전시나리오가 동유럽에서도 현실화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가지 확실한 점은 유럽이 우크라이나전쟁 종전에 공동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함으로써 종전이나 전후질서재편이 유럽의 의도와 무관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것이다. 다만 국익을 바탕으로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내는 트럼프식 국제외교가 21세기 최악의 불행이자 수백만 희생자를 낸 전쟁범죄의 책임까지 사면해줄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그렇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로 세계사에 기록될 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전쟁은 알려진 것처럼 러시아의 팽창야욕과 푸틴의 국내정치적 목적 등에 의해 발발한 명분없는 전쟁이었고 이런 이유로 서방이 똘똘 뭉쳐 공동대응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의 전임 바이든 대통령 재임시절 푸틴을 전범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앵커리지에서의 푸틴 환대와 러시아를 배려하는 듯한 협상태도에 대해 세계 언론들이 푸틴에 대한 면죄부라고 앞다퉈 보도했었던 것도 그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 지 모두가 목격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우크라이나전쟁이 벌어진 3년 동안 양국의 군인과 민간인 등 150만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고 20조원이상의 재산피해가 발생했으며 세계은행은 우크라 재건비용이 5240억달러에 이를 것이란 보고서를 냈다. 세계 시민들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했다. 에너지 가격과 곡물가격 폭등으로 아프리카 등 제 3세계 주민 8천만명이 기아위기에 내몰렸고 우리도 살인적인 물가폭등에 신음했다.
이 죄는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준다면 그 포화에 쓰러져간 영혼들은, 그 가족들은 어디에다 하소연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