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지난 1월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이 26조원 규모 체코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 사업을 따내는 과정에서 미국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독소조항이 포함된 합의를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향후 50년 간 우리 기업이 SMR(소형모듈원전) 등 독자 기술 노형을 개발해도 웨스팅하우스의 사전 검증을 받아야 하고, 원전 1기를 수출할 때마다 웨스팅하우스가 최소 1조원 이상을 챙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썼다는 것이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한수원·한전과 웨스팅하우스가 체결한 '글로벌 합의문'에 한국 기업이 SMR 등 차세대 원전을 독자 개발해 수출하는 경우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자립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는 조건이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기업들이 개발하는 SMR이 웨스팅하우스의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설계한 기존 대형 원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는 만큼, 이 역시 자사 기술에 해당하는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웨스팅하우스 검증 결과에 이견이 있는 경우 미국에 소재한 제3의 기관을 선정해 기술 자립 여부를 검증한다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문에는 한수원·한전 등이 원전을 수출할 때 1기당 6억5천만달러(약 9천억원) 규모의 물품·용역 구매 계약을 웨스팅하우스와 맺고, 1기당 1억7500만달러(약 2400억원)의 기술 사용료를 내는 조항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계약의 기간은 50년으로 설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체코 정부는 한수원을 두코바니 5·6호기 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이후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이 원천 기술을 도용했다"는 취지로 체코 정부 측에 진정을 냈고, 체코 정부가 한수원과의 계약을 보류해 계약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하지만 지난 1월 양사는 "양측이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고, 모든 법적 조치는 취하한다"고 분쟁 종료를 합의했다. 당시 상호 비밀 유지 약속으로 구체적 타결 조건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한수원·한전이 체코 원전 수출과 관련해서도 웨스팅하우스에 수천억원대 로열티와 조단위 일감을 제공하는 내용이 담겼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두코바니 원전 사업에서 원전 가동 이후 약 10년에 걸친 연료 공급권은 웨스팅하우스가 가져가는 등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에 일부 업무를 떼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당시 정치권 일각에서는 '밑지는 장사를 한 것 아니냐'는 우려와 비판이 제기됐다. 원전 수주를 위한 경쟁 과정에서 수익성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저가 수주 전략을 펴는 것이 일반적인데, 웨스팅하우스에 상당한 규모의 로열티와 일감을 떼어주면 이익이 더 줄어들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반면, 에너지 수요 급증으로 글로벌 원전 시장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계약때마다 웨스팅하우스와 부딪히기보다는 지재권 분쟁을 정리하고, 리스크를 없앤 것이 합리적 선택이라는 반론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