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이형일 1차관이 7월 2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5년 세제개편안 상세 브리핑'에서 주요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이재명 정부가 취임 첫 세제개편에 나서면서 전임 윤석열 정부 시절 단행됐던 감세 조치를 대거 환원하고, '증세' 기조로 전환했다.
말라붙은 세수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고 복원해, 미래 먹거리 산업에 투자하고 민생을 안정시킬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기획재정부가 31일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확정, 발표한 '2025년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정부는 내국세 12개, 관세 1개 등 총 13개 법 개정을 추진한다.
정부는 이번에 3년 만에 '세법개정안'이 아닌 '세제개편안'이라는 제목을 선택했다. 개별 세목을 개정하기보다 새 정부의 정책방향을 반영해 세제 전반을 재정비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尹 감세' 지우고 바닥난 재정 채운다…법인세 등 도로 제자리
특히 눈에 띄는 지점은 '응능부담'(납세자의 부담능력에 맞는 공평한 과세) 원칙을 강조하며 윤석열 정부 시절 강행됐던 '감세 정책 되돌리기'에 나선 점이다.
우선 가장 논란이 됐던 법인세 세율은 모든 과세표준구간마다 1%p씩 다시 올려 2022년 수준인 최고 25%로 환원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세수가 4조 3천억 원 더 걷힐 것으로 보고 있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2009년 이명박 정부에서 25%에서 22%로 낮췄다가 2017년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25%로 올라갔다. 윤석열 정부 집권 첫해인 2023년에는 재차 법인세율을 1%p씩 낮추면서 최고세율을 24%로 떨어뜨렸는데, 이번에 다시 되돌렸다.
이처럼 법인세율 뒤집기에 나선 데 대해 기재부 이형일 1차관은 "지난 2년간의 법인세 감소는 경기 둔화와 법인세율 인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된 것"이라며 "지난 정부에서 감세를 통해 경기 활력을 제고하고 세수도 증가하는 선순환을 의도했다고 보지만, 최근 경제 상황과 세수 감소를 고려해 보면 현재로서는 실제 정책의 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기 곤란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기재부는 환원된 법인세 최고세율 수준이 독일(30.1%), 호주(30.0%), 일본(29.7%), 캐나다(26.0%), 프랑스(25.8%), 미국(25.6%), 영국(25.0%) 등에 비해 낮거나 비슷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과세표준구간을 조정하거나, 고세율 구간만 인상하는 방안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기재부 박금철 세제실장은 "구간을 조정하면 기업 규모에 따라 유불리가 갈릴 수 있고, 여러 부분을 종합 고려했다"며 "중소기업은 국내 100만여 법인 중 실제 법인세를 내는 법인은 40만여 개 수준이며, 중소기업에 대한 특별세액감면을 확대한 점 등도 고려해 달라"고 설명했다.
금융투자거래세(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지난 3년 동안 단계적으로 세율을 인하했던 증권거래세도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0%로 환원한다. 정작 금투세가 윤석열 정부 시절 개인투자자 반발을 이유로 도입이 아예 무산돼 지난 1월 금투세 폐지가 확정되자,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낮췄던 증권거래세율을 정상화한 것이다.
상장된 주식을 한 종목당 50억 원 이상 갖고 있는 대주주들이 주식을 매도할 때 내는 양도소득세 부과기준도 과세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3년 12월 완화됐던 기준을 되돌려 앞으로는 10억 원 이상을 보유하면 세금을 내도록 바뀐다.
박 세제실장은 "(양도소득세 대주주 규제 완화가) 주식시장 활성화 효과가 있었나, 과연 이 (과세)기준을 피하려고 순매도가 좀 줄어들 것으로 저희는 기대했는데, 오히려 통계를 보면 순매도가 2023년도에 증가했던 측면도 있다"며 "종목별로 대주주 기준을 판단하는데 조세 형평성에서 저해가 된다는 지적도 있어서 다시 10억 원으로 환원했다"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 제공아울러 부가가치를 계산하기 어려운 금융·보험업계에 부가가치세를 대신해 부과되는 교육세는 1조 원을 초과하는 수익 금액에 한해 적용 세율을 0.5%에서 1%로 상향조정한다. 박 세제실장은 "교육세가 1981년부터 부과됐는데, 이 세율이 1981년부터 계속 유지됐다"며 "그동안 금융·보험업의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해온 부분을 감안해 이번에 교육세율을 올리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자본준비금을 감액배당할 경우, 감액배당액이 주식 취득가액을 초과할 경우에는 대주주에 한해 초과분에 배당소득세를 새롭게 과세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기업이 자본준비금과 같은 자기자본을 줄여 주주에게 현금으로 배당하는 '감액배당'은 영업이익이 아닌 투자 원금을 돌려주는 셈이어서 배당소득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통상 주주들이 주식을 발행할 때 액면가액보다 더 높은 금액을 납입했다 되찾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주식을 취득했던 취득가액보다 배당금액이 더 큰 경우, 대주주들이 세 부담은 피하면서 고액 배당을 가져가는 편법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다만 이를 개선하려 감액배당 전반에 과세하 경우 소액주주까지 세 부담이 커지는데다 장기 보유 주주나 배당 성향이 강한 종목을 선호하는 투자자에게 더 부담이 크기 때문에,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대상인 상장법인 대주주·비상장법인 주주에만 과세하기로 했다.
글로벌 최저한세 DMTT 도입…비과세 감면 혜택 대거 정비해 세수 구멍 메운다
한편 기재부는 비과세 감면 혜택을 대폭 정비해 향후 5년 동안 약 4조 6천억 원의 세수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무역분쟁 논란까지 이어졌던 '글로벌 최저한세'와 관련, DMTT(내국추가세, Domestic Minimum Top-up Tax)는 도입하기로 했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세금 부담을 피해 본사·외국 지사를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로 옮기거나, 아예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드는 다국적 기업을 겨냥한 제도다. 특정 국가에서 다국적 기업에 부과한 법인세 실효세율이 15%에 못 미치면 다른 국가에 그 차액만큼 추가로 과세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IIR(소득산입규칙)과 UTPR(소득산입보완규칙) 등은 이미 국내 도입됐다.
이에 따라 그동안 국내 기업이나(IIR) 구글·애플 등의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서 올린 소득(UTPR)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DMTT를 통해 다국적기업의 국내 자회사에 대해 IIR, UTPR보다 우선 과세할 수 있게 된다.
과세대상은 연결매출액 7억 5천만 유로(약 1조 원) 이상인 다국적기업그룹에 소속된 국내구성기업으로, 해당 기업의 전체 실효세율이 최저한세율 15%에 미달하는 만큼 추가세액을 부과하게 된다.
아울러 조합법인 등에 대한 법인세 과세특례 적용기한은 2028년 연말까지 3년 연장하되, 과세표준 20억 원 초과구간에 대해서는 12%에서 15%로 특례세율을 상향조정한다.
또 투자를 서두른 기업에 추가공제율 +2%p를 제공했던 임시투자세액공제는 기한이 다 되어 종료하고, 외국인 관광객의 미용성형 부가가치세 환급 특례도 폐지한다. 일반 의료용역과 달리 부가가치세가 과세되는 성형 등 미용 목적 의료용역은 외국인 관광객의 경우 부가세를 환급했는데, 최근 관련 업계 규모가 급증한 만큼, 제도 도입 취지를 충분히 달성했다고 본 것이다.
서민·중산층 외에는 증세…약 8.2조 세수 충당 기대돼
정부는 이처럼 윤석열 정부의 감세 조치를 환원하거나 과세권을 적극 행사하는 등 세제개편에 따른 효과로 세수가 향후 5년 동안 순액(전년대비) 기준, 전년대비 8조 1672억 원, 누적 기준으로는 35조 6천억 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를 통해 AI, K-컨텐츠 등 미래전략산업이나 지역균형발전, 민생안정 등에 사용할 재정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눈에 띄는 지점은 세부담이 귀착되는 대상의 차이다.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으로 서민·중산층의 세부담은 순액 기준 1024억 원 감소하는 반면, 고소득자(684억 원), 중소기업(1조 5936억 원), 대기업(4조 1676억 원), 외국인이나 상속인 등 기타(2조 4400억 원)에서 모두 세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봤다.
지난해 세법개정안 발표 당시 서민·중산층의 세부담이 6282억 원 감소하지만, 고소득자(-1664억 원), 중소기업(-2392억 원), 대기업(-917억 원) 모두 세금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던 것에 비하면 뚜렷하게 증세 기조로 전환한 결과다.
정부는 이번에 발표한 세제개편안을 다음 달 1일부터 14일간 입법예고 기간을 거친 뒤 오는 26일 국무회의에서 최종 확정, 오는 9월 3일 전까지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