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주재 미국 대사관 근처 버스정류장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제프리 엡스타인이 함께 찍은 사진이 내걸려있다. 연합뉴스미성년자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의 피해자이자 전직 직원이 과거 수사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수사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진술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NYT는 20일(현지시간) 엡스타인의 사무실 직원으로 근무했던 마리아 파머가 1996년과 2006년 당시 연방수사국(FBI)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엡스타인 주변 인물들에 대해 수사를 확대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파머는 1995년 엡스타인의 뉴욕 맨해튼 사무실에서 트럼프를 마주친 경험이 있다고 진술했다. 정장을 입고 사무실에 들어선 트럼프 대통령은 반바지 차림으로 업무 중이던 파머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주변을 서성였다고 한다. 파머는 "트럼프가 맨다리를 응시할 때 두려움을 느꼈던 기억이 선명하다"고 NYT에 밝혔다.
그 순간 엡스타인이 방에 들어와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는 당신을 위한 사람이 아니다(No, no. She's not here for you.)"라고 말했고, 두 사람은 함께 자리를 떴다고 전했다. 파머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그녀를 16살로 봤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회고했다.
파머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성적 피해를 입지는 않았고, 명백한 부적절 행위도 목격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엡스타인 주변 인물들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수사기관에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엡스타인의 직원이었던 파머는 초반에는 미술품 구매 등의 일반 업무를 맡았지만 이후에는 뉴욕 저택 앞 출입구에서 소녀들과 젊은 여성, 유명 인사들의 출입을 관리하는 역할로 배치됐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 1996년 여름, 오하이오주에 위치한 엡스타인의 별장에 머물던 중 엡스타인과 그의 파트너였던 기슬레인 맥스웰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NYT는 "공개된 FBI 수사기록에는 트럼프에 대한 언급이 없다"면서도 "많은 부분이 검열돼 있어, 트럼프 대통령 관련 진술이 실제로 문서화됐는지는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사 대상이었는지 여부 역시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
백악관은 즉각 반박했다. 스티븐 청 백악관 공보국장은 "대통령은 엡스타인의 사무실에 간 적이 없다"며 "오히려 엡스타인을 불쾌한 인물로 여겨 클럽에서 쫓아냈던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편,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엡스타인의 2003년 생일을 기념해 제작된 가죽 장정 앨범에 트럼프 대통령 명의의 외설적인 편지가 포함돼 있었다고 보도해 논란이 됐다. 이 편지에는 여성 나체 그림과 함께 "매일이 비밀로 가득하길 바랍니다"라는 메시지, 그리고 엡스타인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가상 대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WSJ와 해당 기자들을 상대로 100억달러 규모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FBI와 법무부는 이달 초 엡스타인 사망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른바 '성매매 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발표 이후 논란은 오히려 더 번지는 모양새가 됐고, 트럼프 대통령을 옹호하는 마가(MAGA)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이 나타났다.
일부 수사기록은 여전히 비공개 상태로 남아 있는 만큼, 향후 관련 파일이 전면 공개될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