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해병대 채상병 순직과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 중인 순직해병 특검이 'VIP 격노설' 퍼즐 맞추기에 성공한 가운데, 채상병 사건 관련 혐의자 축소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규명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해병특검, 혐의자 축소·구명 로비 관련 녹취록·문건 확보
정민영 특검보가 서울 서초구 순직해병특검팀 브리핑룸에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순직해병 특검은 채상병 순직 사건 혐의자 축소 관련 국방부 수뇌부의 목소리가 담긴 녹취록과 임 전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이 담긴 국군방첩사령부 문건을 확보했다.
지난 2023년 7월 31일 오전 대통령실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특검은 그로 인해 발생한 위법적인 후속 조치가 어떤 경위로 이뤄졌는지 규명하는데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특검팀이 확보한 녹취록에는 박진희 전 국방부장관 군사보좌관이 국방부 조사본부 장교 A씨에게 '장관의 지시'를 거론하면서 채상병 순직 사건 관련 혐의자를 줄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7월 19일 채상병 사망 직후 초동 조사에 착수한 해병대 수사단은 임 전 사단장 등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로 명시해 경찰에 이첩했는데, 군 검찰단은 해병대 수사단이 항명했다며 사건 기록을 다시 회수 조치했다.
같은 해 8월 11일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기록을 넘겨받은 국방부조사본부는 사건 재검토에 들어갔고, 8월 14일 임 전 사단장을 포함해 혐의자를 6명으로 판단한 중간 보고서를 만들어 국방부에 검토를 요청했다.
박 전 보좌관과 A씨와의 대화는 국방부조사본부가 해당 중간보고서를 만든 이 시기 즈음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적으로 국방부조사본부는 임 전 사단장 등 6명에게는 혐의가 없다고 판단하고 대대장 2명 만을 혐의자로 적시해 8월 21일 사건을 경찰에 이첩했다.
이와 관련해 특검팀은 박 전 보좌관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나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등 '윗선'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조사본부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보고 조만간 박 전 보좌관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박 전 보좌관은 채상병 사건 초동수사를 맡았던 해병대 수사단에 혐의자를 줄이라는 지침을 준 인물로 꼽힌다. 앞서 재판 과정에서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박 전 보좌관에게 연락받은 내용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이종섭 전 장관 측은 전날 "혐의자를 2명만 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한 사실이 없다"며 "재검토를 지시할 당시 국방부 검찰단 등 의견도 들으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임성근 구명로비 의혹도 주목…22일 김계환 전 사령관 영장실질심사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류영주 기자'임 전 사단장 구명로비' 의혹도 특검팀의 핵심 규명 대상이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임 전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빼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담긴 방첩사 동향 보고 문건 역시 확보했다.
해당 문건은 윤 전 대통령의 격노가 있었다는 대통령실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이후 작성된 것으로, 김계환 당시 해병대 사령관이 받은 구체적인 지시 내용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는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 개신교계도 연관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 의원의 경우 윤 전 대통령이 격노 당일 전화를 걸어와 통화한 사실도 확인됐다.
순직해병 특검은 지난 18일 기독교계 원로인 김장환(극동방송 이사장)·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자택과 교회, 해병대 군종목사(소령) A씨 등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 측은 압수수색과 관련해 "이 목사는 채상병 순직 사건 구명 로비 의혹과 무관하다"며 "목회자나 기타 어떤 분에게도 이에 대해 언급하거나 부탁한 일도 없으며 관련자나 교인 누구로부터도 기도 부탁을 받은 일조차 없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윤 전 대통령의 연수원 동기이자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을 역임한 고석 변호사가 '구명 로비' 의혹과 관련해 적극 활동했다고 특검팀은 의심하고 있다.
특검팀은 지난 18일 고 변호사의 경기 용인시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으며, 그가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과 임 전 사단장을 접촉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조사 중이다.
한편 앞서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의 '격노' 정황을 확인하기 위해 참석자와 대통령실 관계자 등에 대한 조사를 다각도로 진행한 바 있다.
이를 위해 윤석열 정부 안보 실세로 평가되던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에 이어 당시 회의 참석자 등을 줄줄이 소환 조사했고, 이들에게 '격노'를 인정하는 취지의 진술을 연이어 확보했다.
특검팀이 혐의자 축소와 구명 로비 의혹 관련 핵심 관계자들을 줄줄이 소환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르면 이번 주 일부 인원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은 물론 구속영장 청구, 기소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오는 22일에는 사건 초기 수사를 이끈 박정훈 대령에게 윤 전 대통령의 격노를 전했다는 의혹을 받는 김계환 전 사령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