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계량기 제조업체 Z사가 스마트 기능을 담아 새롭게 출시한 수도계량기. 정성욱 기자우리나라 정부 부처의 감독을 받는 기관이 해외기업의 신기술을 외부에 유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문제를 제기한 해외기업은 감독기관이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를 공개하지 않자, 국내 에이전트를 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글로벌 분쟁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10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독일의 유명 유량계 제조사인 Z사는 올해 초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에 KTC 분실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를 요청했다. (관련기사: [단독]"독일산 신기술 훔쳐가"…인증기관 'KTC' 피소)
Z사는 지난 2023년 12월 중국, 미국과 공동 개발한 초음파 수도계량기를 한국 시장에서 판매하기 위해 형식승인 절차에 나섰다. Z사가 만든 계량기는 NFC(Near Field Communication) 기능 등이 접목된 최신식 초음파 계량기다.
검침원들이 계량기 하나하나를 살펴보며 수치를 확인하는 아날로그 방식과 달리, 무선통신으로 연결해 휴대전화로도 실시간 물 사용량과 사용 패턴, 누수 지점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가 추진중인 스마트 검침 시스템의 주요 기술이기도 하다.
Z사는 국내에서 업무를 대행하는 A사에 형식승인을 신청할 업체를 찾아봐 달라고 했고, A사는 국내 한 계량기 판매업체를 통해 KTC에 시료를 제출했다.
문제는 지난해 3월, KTC 측이 Z사의 계량기를 분실했다며 A사에 시료를 다시 제출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불거졌다. KTC 측이 다시 받은 계량기로 형식승인은 마쳤지만, 이번엔 봉인 상태로 넘겨받아야 할 시료 일부가 훼손된 상태로 반환된 것이다.
KTC 측이 시료가 분실된 과정이나 훼손된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자, Z사는 올해 2월 산자부에 사실규명을 요청했다.
Z사는 내용증명을 통해 "초음파 수도미터를 한국 시장에 출시하기 위해 KTC에 형식승인 신청을 하던 과정에서 시료가 분실됐다"며 "KTC에 공식적인 설명을 요청했으나 명확한 소명을 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한국 정부의 성실한 조사와 협조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은 독일과 중국, 미국이 공동개발한 초음파 수도미터의 핵심 기술 및 특허 침해 문제와 직결될 가능성이 있다"며 "공정하고 공평한 사건처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Z사는 올해 1월에는 주한 독일대사관과 중국대사관에도 관련 내용을 전달하고 사실규명을 요청했다.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자료사진Z사가 진상규명을 요청한 이유는 분실된 계량기가 독일뿐 아니라 중국과 미국 등 3개국이 공동으로 개발한 신기술이 담긴 제품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수년 동안 연구한 기술력이 형식승인 과정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Z사 업무를 대행하는 A사 역시 자신들이 '산업스파이'로 의심받을 것을 우려했다. A사 관계자는 "Z사 입장에서는 수년 동안 공들여 만든 제품을 한국 기관과 업체가 모의해 기술력을 빼돌렸다고 의심할 수 있지 않겠나"라며 "그런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료 분실 과정을 명확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A사는 산자부 기술표준원에 △KTC에 대한 처분결과를 공개할 것 △KTC를 형식승인 기관에서 취소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KTC를 관리감독하는 산자부 기술표준원은 올해 3월 KTC에 대한 특별사후관리를 실시, 시료 관리에 미비점이 있었다고 판단하고 KTC에 대한 처분을 진행했다. 다만 A사 측에 대해선 이번 형식승인의 계약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처분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산자부 측은 시료가 분실된 사안에 대해선 명백한 잘못이라고 밝히면서도, 관련법상 처분 결과는 밝힐 수 없으며 기술유출 의혹도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산자부 기술표준원 관계자는 "형식승인 기관이 시료를 분실할 경우 신뢰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일어나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형식승인을 신청한 업체는 다른 업체이고 A사는 사실상 제3자이기 때문에 더욱 처분 결과를 밝힐 수 없다"며 "시료가 없어진 것을 곧장 기술이 유출된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고 그 부분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다뤄지지 않겠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