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찾은 광주 서구 농성어린이공원의 맨발길. 20m 남짓의 맨발길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고 중간중간 뾰족한 자갈도 보였다. 한아름 기자광주 지역 자치구들이 걷기 열풍에 편승해 앞다퉈 '맨발길'을 조성했지만, 관리 부실로 방치돼 시민들의 외면을 받는 곳이 늘고 있다.
2일 오전 찾은 광주 서구 농성어린이공원의 맨발길. 공원 한 귀퉁이에 조성된 20m 남짓의 맨발길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고 사람들의 발길도 끊긴 상태였다. 취재진이 열댓 걸음 딛자마자 길의 끝에 다다를 만큼 짧았고 곳곳에는 뾰족한 자갈이 튀어나와 있어 맨발로 걷기엔 위험한 상황이었다.
2일 광주시와 5개 자치구에 따르면 광주 지역에 조성된 맨발길은 총 95곳이다. 이 중 13곳은 100m 미만의 소규모 맨발길로 북구 5곳, 서구 4곳, 광산구 3곳, 남구 1곳에 조성돼 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 오병수(75) 씨는 "공원 땅이 넓은데 맨발길을 저렇게 짧게 만들어놔서 누가 이용하겠느냐"며 "차라리 공원을 크게 감싸는 형태로 만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관리도 안 되는 나무만 심어놨다"고 지적했다. 이어 "심어놓은 나무도 대부분 죽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길 곳곳이 파이고 낙엽이 수북이 쌓인 채 방치된 광산구 월계동 생태광장 맨발길의 모습. 중간중간 녹색 이끼도 껴있다. 한아름 기자부대시설이 없거나 맨발길과 세족장이 지나치게 떨어져 있어 주민들에게 외면받는 사례도 있다.
같은 날 오후 방문한 광산구 월계동 생태광장 맨발길은 길 곳곳이 파여있고 낙엽이 수북이 쌓인 채 방치돼 있다. 한때 겨울철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인기를 끌던 이곳은 관리가 소홀해 황토 위에 녹색 이끼까지 낀 상태였다.
주변을 맨발로 걷고 있던 60대 이모씨는 "발 씻는 곳이랑 맨발길이 너무 멀어서 그냥 주변만 걷고 간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곳 맨발길과 세족장 사이는 300m 떨어져 있었다. 시민들은 맨발길을 이용하기 위해선 300m 구간의 일반길을 맨발로 걸어가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지난 2023년부터 최근까지 3년간 광주 5개 자치구에는 맨발길 관련 민원이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 '자갈 정비', '황토 보충', '울퉁불퉁한 노면 정리' 등 유지 관리 요청은 물론, '세족장 신설 및 보완' 등 시설 개선 요구도 적지 않다.
주민들은 "단순히 길만 만들어놓을 게 아니라, 자치구 차원의 철저한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광주 서구 동천동 완충녹지에 조성된 맨발길은 점심시간 잠깐 짬을 내 찾아온 주민들로 붐빈다. 한아름 기자반면 비교적 잘 관리된 사례도 있다.
광주 서구 동천동 완충녹지에 조성된 맨발길은 점심시간이면 주민들로 붐빈다. 세족장 옆 신발장에 신발을 벗어두고 맨발로 걷는 시민들만 해도 열댓 명에 달했다.
남편과 함께 이곳을 찾은 70대 김모씨는 "아침마다 누군가 맨발길을 쓸고 치워 항상 깔끔하다"며 "300m 길이지만 다섯 번만 왕복해도 충분한 운동이 된다"고 말했다.
광주 5개 자치구가 지금까지 맨발길 조성에 들인 예산은 41억 4800만 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서구를 제외한 4개 자치구는 신규 맨발길 조성 공사에 착수했거나 추가 조성을 계획 중이다. 앞으로도 막대한 세금이 이 사업에 투입될 예정이다.
하지만 '걷기 열풍'에 휩쓸려 보여주기식으로 맨발길만 만들어놓고 이후 관리는 외면한 채 방치된 곳이 적지 않다.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정작 시민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 기우식 사무처장은 "일시적인 유행에 따라 시설을 만들었지만 나중에 주민들이 이용하지 않을 경우 결국 혈세만 낭비하는 꼴"이라면서 "맨발길을 책임지고 관리할 수 있는 구조를 자치구 차원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서구청 관계자는 "조성 가능한 부지를 최대한 확보하다 보니 일부 구간이 짧을 수밖에 없었다"며 "자갈 문제나 세족장 부족 등 현장 민원을 인지하고 있어 보완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