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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휴게실 평상 밑에 정화조 악취"…버스기사들 '처우 개선' 호소

"비좁은 휴게실 평상 밑에 정화조 악취"…버스기사들 '처우 개선' 호소

기사 150명 오는 차고지에 1평 컨테이너 평상…"피로 계속 쌓여"
버스노조 28일 총파업 예고…"기본적인 근무 환경 개선 절실"

26일 서울 금천구 한 버스 차고지의 휴게 공간. 컨테이너로 된 공간은 창문 방충망이 뜯어지고 여기저기 낡은 모습이다. 김지은 기자26일 서울 금천구 한 버스 차고지의 휴게 공간. 컨테이너로 된 공간은 창문 방충망이 뜯어지고 여기저기 낡은 모습이다. 김지은 기자
"이 밑에 뭐가 있는 줄 아세요? 화장실 정화조가 들어 있어요. 여름에는 악취가 엄청 올라와요."

26일 오전 11시쯤 서울 금천구 석수역 인근 차고지를 찾아 '휴게 공간은 어떠냐'고 묻자 버스기사들은 컨테이너 휴게실 안에 있는 비좁은 평상을 가리키며 이 같이 말했다.

서울시내버스 노사가 임금 협상을 두고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버스 파업 가능성과 맞물린 시민 불편 우려가 연일 부각되고 있지만, 이들 버스 기사들은 본인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했다.

기사는 '150명', 컨테이너 안 평상은 '1평'…"충분히 쉴 장소 있었으면"

기사들을 만난 곳은 2004년 지어졌으며 버스 61대, 기사 150명 정도가 이용하는 차고지다. 버스 기사들은 이곳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밥을 먹고 차를 정비한다. 하지만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비좁은 컨테이너 두 동이 전부다. 한 곳은 휴게실, 또 다른 한 곳은 식당이다.

오전 11시 30분쯤 휴게실에는 이미 기사 2명만 앉았는데도 꽉 찬 모습이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기사 이모(51)씨는 "교대 시간 되면 기사들이 많이 오는데 쉴 수 있는 공간이 비좁아 땡볕에 나가 서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씨는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게 반복되니까 피곤하고 졸립다"며 이처럼 열악한 휴게 공간이 업무에도 영향을 준다고 호소했다. 그는 "쉴 공간이 없다 보니까 그냥 차에서 쉬는 기사들도 많다"며 "여름엔 더운데 차에 시동 켜고 쉬고 있으면 그것도 뭐라고 한다. 그래서 그냥 (버스) 창문을 열어 놓고 앉아 있는 기사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휴게실 안 정수기에서 물을 따르던 오모(62)씨도 "20년 동안 바뀐 게 없다. 좁은 게 제일 문제"라며 거들었다.

석수역 인근 차고지 서울시내버스 기사들이 쉴 수 있는 공간. 낡은 장판 밑으로는 정화조가 설치되어 있다. 김지은 기자석수역 인근 차고지 서울시내버스 기사들이 쉴 수 있는 공간. 낡은 장판 밑으로는 정화조가 설치되어 있다. 김지은 기자
2007년부터 이곳에서 일했다는 이모(57)씨는 휴게실 만큼이나 주차 공간도 좁다고 한탄했다. 버스는 많은데, 주차 공간 자체가 협소한 상황에서 사고가 나면 이에 대한 손실은 기사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씨는 "나도 저번에 저 담벼락에 살짝 부딪혀 가지고 24만 원 해 먹었다"며 "'내가 잘못했으니까'하면서 넘어가는 게 기사들의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이씨가 말하는 와중에도 버스 한 대가 차고지에 들어왔는데, 버스 앞뒤로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정도의 간격을 두고 여러 번 버스를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이씨는 "이런 상황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고액 연봉이라는 소리를 한다"고 했다. 그는 "대단한 대접을 해 달라는 게 아니다"라며 "많이 받는 경우는 우리들이 그만큼 잠 못 자고 쉬지 못하고 가족들과의 생활 다 포기하고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 차고지의 상황 자체만 봐도 그렇다. 욕심이라고 비판할 수는 있는데, 그 이전에 가장 기본적인 것만 해달라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석수역 인근 차고지 안쪽 컨테이너 식당에서 버스기사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김지은 기자석수역 인근 차고지 안쪽 컨테이너 식당에서 버스기사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김지은 기자
다른 컨테이너 한 동의 헐거운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니 성인 4명이면 꽉 찰 공간에서 버스기사 2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앞에서 차량 정비를 한다. 먼지가 이 안으로 들어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임금도 중요하지만 휴게시설 등 차고지 환경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차고지에서 만난 또 다른 버스기사 권모씨는 "지금 이 근처가 다 재개발한다고 공터다. 시에서 허가를 내줘서 공터까지 차고지 공간으로 넓힐 수 있게 해주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휴게 공간도 넓히고 개선하는 노력도 같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차고지를 나서는 길, 버스 뒤편 유리창마다 빨간 글씨로 '운전직 모집'이라고 쓰인 종이가 눈에 띄었다.

서울시-버스노조, 통상임금·임금체계 개편 두고 대치 계속

현재 서울시내버스 노사는 통상임금 반영과 임금체계 개편을 둘러싸고 임금단체협약(임단협)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계속 평행선을 그리는 상황이다.

서울시버스노동조합은 지난해 12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정기 상여금의 통상임금 반영, 기본급 8.2%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서울시는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면 재정 부담이 급증하고, 이미 버스 기사들의 임금은 20년간 공무원보다 50% 더 올랐다는 입장이다.

양측은 지난달 29일 임단협 2차 조정회의가 결렬된 후 실무책임자급 논의를 진행해왔지만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측은 27일까지 요구안이 받아 들여지지 않으면 28일 첫 차부터 총파업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노조 총파업에 대비해 비상수송대책을 점검하고 모든 교통수단을 동원해 시민 불편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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