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21일 서울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영화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를 관람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영돈 PD, 윤 전 대통령, 전한길 전 한국사 강사. 연합뉴스6.3 조기 대선이 2주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또다시 선거 한복판에 등장해 파장이 일고 있다. 음모론인 '부정선거' 관련 행보인 탓에 출신당 국민의힘 내에서도 "초대형 악재가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윤 전 대통령은 주요 선거마다 전면에 등장했는데, 그 때마다 국민의힘이 참패한 탓에, '패배의 1등 공신'이었다는 평을 받는다. 이번에는 국민의힘이 '탈당 후 행보'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대선 표심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당내 곳곳에서 제기된다.
尹, 전한길과 '부정선거' 영화 관람…국힘 '부글부글'
윤 전 대통령은 21일 서울 동대문구 한 영화관을 찾아 부정선거 의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를 관람했다. 지난 탄핵 정국에서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옹호하며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했던 전직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 함께였다.
해당 영화는 전씨가 기획했고, 이영돈 PD가 감독을 맡았다. 윤 전 대통령의 공개 행보는 파면 이후 내란수괴 혐의 재판 참석을 제외하면 이번이 처음이다.
단 한 번의 등장이지만, 그 행보가 계엄과 탄핵에 대한 사과·반성이 아닌, 계엄을 정당화하기 위해 주장했던 부정선거에 맞닿은 탓에, 국민의힘은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힘겹게 '계엄의 강'을 건너고 있는데, 윤 전 대통령이 다시 강물을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당은 공식적으로는 윤 전 대통령이 당원이 아니므로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윤 전 대통령은 이미 저희 당을 탈당한 자연인"이라며 "윤 전 대통령의 일정에 대해 저희가 코멘트 할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탈당했더라도 선거에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는 "그런 평가도 하지 않는다. 저희의 일을 열심히 하면 될 것"이라며 어떠한 연결의 여지도 남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당내 분위기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황이다. 조경태 의원은 "누굴 위한 행보인가. 결국 이재명 민주당 제1호 선거운동원을 자청하는 것이냐"며 "본인 때문에 치러지는 조기 대선에 반성은커녕 저렇게 뻔뻔할 수 있는지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한심하다. 자중하기를 바란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김근식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제발 윤석열 다시 구속해달라"며 "우리 당이 살고 보수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재구속만이 답"이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도 "윤 전 대통령은 탈당해서 우리 당과 관계가 없는 분"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윤 전 대통령이 계엄에 대해 반성과 자중할 때가 아닌가"라고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문수 후보 배우자 설난영,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배우자 김혜경 여사 등 대통령 후보 배우자 TV 토론을 제안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尹, 주요 선거 때마다 전면 등장…결과는 '역대급 참패'
윤 전 대통령이 선거 국면에서 직접 전면에 등장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당선된 뒤부터 주요 선거 때마다 굵직굵직한 행보로 선거에 영향을 미쳐왔다. 문제는 그때마다 당은 '대참패'를 했고, 그 핵심 원인으로 윤 전 대통령이 꼽힌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2023년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다. 해당 선거는 당시 국민의힘 소속이던 김태우 구청장이 당선 1년도 채 되지 않아 공무상 비밀 누설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되면서 치러진 보궐선거다.
때문에 당내에선 후보 무공천 등 자성론을 비롯해 쇄신의 이미지를 가진 후보의 필요성 등이 제기됐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김 구청장을 특별 사면·복권시켰고 이후 국민의힘 후보로 재공천 되면서 문제를 키웠다.
여론에 귀를 기울인 당시 국민의힘 지도부는 보궐 사유가 자당에 있다는 이유로 '무공천'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윤 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유죄 확정 약 3개월 만에 김 구청장의 피선거권을 복권시켜주는 등 힘을 실어주자 기류가 '김태우 재공천'으로 바뀌었다. 당의 공천에 사실상 '윤심'(尹心)이 작용한 셈이다. 결과는 17.15%p 격차라는 역대급 패배였다.
지난해 22대 총선도 유사했다. 당시는 윤 전 대통령이 '의대 2천명 증원'을 고집하면서 의료대란이 일어난 탓에 민심이 좋지 않았다. 이에 당 안팎에서는 정책전환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오히려 윤 전 대통령은 총선을 9일 앞두고 갑자기 기존 입장을 그대로 유지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민심을 살피거나 유연한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51분간 본인 주장만 일방적으로 내세우는 모습이 '불난 유권자 표심에 기름만 끼얹었다'며, 총선에 악영향만 줬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결과는 집권 여당의 '108석 확보'라는 전무후무한 패배였다.
구여권 관계자는 "지난 총선 서울에서 5%p 이내 격차로 패배한 곳이 10곳 정도 되는데, 의료개혁 이슈만 아니었으면 국민의힘에서 이길 수도 있었던 지역들"이라며 "최소 10석은 더 건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대통령이 담화를 한다길래 기대했다가 탄식했던 기억이 난다"며 "계속 고집 부리는 모습이 선거 패배의 핵심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가 21일 오전 경기 고양 MBN미디어센터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황진환 기자국힘 "말려달라" 읍소에도 김문수 "선관위가 해명"
이같은 전례에 비춰볼 때 이번 윤 전 대통령의 등장 역시 대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에서 뒤늦게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지우기'에 돌입했는데, 윤 전 대통령이 부각되기 시작하면 모두 허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당은 공식적으로 선을 그었기 때문에 왈가왈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선거일까지 얼마 남지 않아 이를 수습할 시간도 부족하다.
문제는 윤 전 대통령의 행보가 여기서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전 대통령은 정치에 뛰어든 지 9개월 만에 첫 선거였던 대선에 승리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선거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 같다"며 "이번 영화 관람 행보도 지지층 결집 등 선거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것 같다. 또 다른 행보에 나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 단체대화방에서는 윤 전 대통령의 영화 관람 소식이 전해지자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판단한다. 가능하신 의원님들께서 간곡하게 만류해 달라"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좀 자중하시면 좋겠다", "벌써 사전투표는 100% 부정선거가 된다는 문자가 난무하고 있다"는 등 우려 섞인 목소리도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김문수 후보가 부정선거 음모론과 단호히 절연한다고 선언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은 사전투표를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한다. 국민의힘이 그런 부정선거 음모론과 단호하게 선 긋지 못하면 민주당은 3일간, 우리는 하루만 투표하는 것"이라며 "그러면 이길 수 없다"고 호소했다.
정작 대선의 핵심 인물인 김 후보는 이 같은 기류와 온도차를 보였다. 그는 이날 진행된 한국방송기자클럽(BJC) 초청 토론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행보에 대한 질문에 "저는 그 영화도 못 봤다. 부정선거 부분에 대해서 어떤 영화인지는 모르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선거가 공정하게 (진행)돼야 한다"며 "어떤 경우든지 간에 유권자 중에 누구라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해명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부정선거 의혹 제기를 멈춰달라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오히려 이 같은 의혹에 선관위가 답을 하라며 의혹 제기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김 후보는 더 나아가 "앞으로 저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관리나 부정선거 의혹을 완전하게 일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겠다"고도 말했다.